‘10만이 참가하는 대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이 진행되는 한 달 내내

평양 양각도 호텔은 남쪽 손님들로 시끌벅적 했다.

남과 북의 풍속과 생활습성이 달라,얼마나 많은 일들이 발생했는지....

 

그 중 하나가 욕실 사용 문제였다.

남쪽 손님들이 묵은 객실마다 욕실 바닥의 물이 넘쳐

침실 양탄자가 물에 흠뻑 젖는 일이 비일비재 발생하였고,

제때 갈아주지 못한 양탄자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풍겨났다.

 

사실 내가 처음 평양에 왔을 때도, 이런 실수를 했었다.

무심코 머리를 감고 나니 욕실 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평양 욕실에는 바닥에 배수구를 아예 설치하지 않은 탓이다.

물난리가 나고 나서야 배수구 문제를 알게 되었고

‘북한이 얼마나 돈이 없으면 배수구 시설조차 아껴야 했을까’ 싶어 내놓고 투덜거리지도 못하고

넘친 물을 수건으로 연신 빨아내어 가까스로 수해(?)를 막았었다.

 

그날 저녁 식사 때 그 이야기를 하자.

 

함께 왔던 신부님께서 평양만 그런 게 아니라, 유럽에도 욕실에 배수구가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유럽 사람들은 욕조 안에서만 물을 쓰는 것이 습성화 되어있어,

욕실 바닥에 배수구를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단다.

남한이 미국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러시아, 동구라파의 풍습에 영향을 받고 있다.

 

서울 목욕탕의 풍경이 생각났다.

우리 어머니는 뜨거운 물이 풍성한 동네 목욕탕에 가면

속옷 한 가지라도 더 빨아치우려고 아둥바둥했고,

더운 물을 팍팍 퍼부어 대면서 목욕비 투자 대비 만족도를 최대한 높이려고 하셨다.

우리네 욕실 풍습은 바닥에 편하게 앉아 때를 밀면서 물을 펑펑 부어내는 것이 아닐까?

점차 샤워부스나 욕조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지만,

욕실바닥에 배수구가 당연히 있는 조건에서 욕

조에 커튼을 안으로 드리우고 조심조심 샤워를 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림. 서영준 화백

 

하루 1000명 이상의 남한 손님들이 빚어내는 욕실 사고는

양각도 호텔 측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사고일 수밖에 없었다.

양각도 호텔 측의 빗발치는 항의가 우리 상황실로 쏟아져왔다.

남쪽 손님들이 모든 호텔 객실을 물바다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난감 난감... ㅠㅠ

 

남쪽 분들에게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다고 조심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북한이 후지다고 투덜거릴 것이 뻔하다.

나름 비싼 돈을 내고 관광을 왔는데,

국제급 호텔이라고 해놓고 시설이 낙후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별로 기분 좋을 일이 아니다.

그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남쪽에 내려가서 입소문으로 풀면,

힘들게 마련된 평양관광의 붐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른다.

또 남쪽 사람들의 투덜거림을 북측에서 듣는다면 그 또한 기분이 좋을리 없다.

그러니 단순히 조심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남쪽 사람들이 북한의 시설낙후문제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 이런 문제를 아무리 사전교육 한다고 하더라도 몸에 밴 목욕 습성을 고칠 수는 없을 것 같아

방방마다 욕실 문 앞에 대문짝만하게 큰 글씨로 인쇄물을 써 부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양각도 호텔은 유럽식이라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습니다.

욕조 안에서만 물을 사용해 주십시오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라는 내용의 인쇄물을 만들어 상황실 직원 8명이 팔을 걷어 부치고 해결할 결심을 하였다.

호텔 프론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층층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방을 따고 들어가 인쇄물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북측 도움 없이 상황실 직원들의 힘만으로

수 백 개의 방에 인쇄물을 붙이는 일을 조용히 해결한 우리의 열정에 스스로 감탄, 만족해하는 순간

갑자기 민화협 담당 선생이 달려오더니 목청을 높였다.

양각도 호텔 측에서 남측 상황실 일꾼들이 자기들의 동의도 없이 객실마다 헤집고 돌아다닌다고

항의가 들어왔다는데 ‘이경 선생이 이렇게 제멋대로 질서를 어지럽힐 줄 몰랐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 또 어떻게 설명하나?

양각도 호텔 측에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을 설명하기가 좀 난감하다.

할수 없이 또 장황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설명하자 점차 눈꼬리가 부드러워지더니

급기야 ‘정말 수고가 많다. 그렇게까지 사려 깊은데 놀랐다’는 치하(?)의 발언까지 해주며 돌아갔다.

 

아! 정말 평양에서의 모든 상황은 그 자체로 돌발 변수다,

물을 욕조 안에서 쓰는가 아닌가 같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까지

한바탕 소동을 피워야 할 줄이야 차마 예상치 못했다.

 

인쇄물을 붙인 뒤로 욕실 바닥에 고인물이 침실로 범람하는 소동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인쇄물의 효용이 크다고 판단한 양각도 호텔 측에서는  그 인쇄물을 그 뒤로도 1년 이상 수거하지 않고 붙여 두었고,

덕분에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가 마치 양각도 호텔에 상설적으로 사무실을 두고 있는 듯한 착시효과가 있었다.

 

광고비 내지 않은 우리 단체의 홍보효과가 최고! 남과 북 민간의 갈등해결사 겨레하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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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