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징용노동자역사 기행]


강제징용노동자들의 역사를 기억하다 - 하시마섬, 기타규수 


안혜영(겨레하나 조직국장)


경남노동자겨레하나와 울산겨레하나 회원, 18명이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로 일제강제징용노동자역사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기행은 MBC 무한도전에서 언급되었던 지옥섬 ‘하시마’섬을 시작으로 후쿠오카까지 일제시대때 조선인 노동자들이 끌려와 강제노역을 당했던 현장을 중심으로 역사기행을 진행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기행에는 일제강점기때 하시마섬으로 강제징용되었던 아버지를 따라 하시마섬에서 9살부터 15살까지 6여년을 사셨던 ‘구연철’선생님께서 함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구연철 선생님 :  일제강점기 시절 지옥섬 ‘하시마’에서 광부인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다 해방후 한국전쟁을 맞이하면서 빨치산 활동을 활동을 하심, 이후 20년의 장기복역후 현재까지 민족의 통일을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기무라’ 선생님


후쿠오카공항에는 멀리 나가사키에서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신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기무라 선생님이 반갑게 저희 기행단을 맞이해주셨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하시마섬과 원폭자료관 등 나가사키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 현장을 안내를 맡아주셨습니다.

기무라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계시다가 정년퇴임후‘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방송을 보며 우리말을 독학으로 공부해 유창하게 우리말을 사용하실 수 있어 통역 없이 이번 기행단의 안내를 맡아주셨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기무라‘ 선생님>



지옥섬 ‘하시마’


도착 첫날 일본의 3대 야경중 하나인 나가사키의 야경을 보며 호텔에서 강제징용노동자 역사기행을 맞이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지옥섬 ‘하시마’를 가기 위해 나가사키항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하시마섬으로 들어가는 관광유람선엔 많은 관광객들로 혼잡했습니다. 하시마섬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면서 관광객이 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피를 흘렸던 곳이 누군가에겐 관광 상품화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하시마섬으로 들어가는 관광유람선 - 이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는 몇 달전부터 예약을 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다.>



<관광유람선을 타고 나가사키 항을 빠져나오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미쓰비시의 나가사키 조선소’ 사진에 보이는 옥색으로 된 크레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고 한다.>



<하시마 섬을 바라보고 계시는 ‘구연철’선생님 - 하시마섬에서 힘든 탄광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 9살 소년은 80이 넘은 백발노인이 되어 다시 하시마섬을 찾았다.>




하시마- 군함의 모양을 닮았다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리운다. 일본의 침략전쟁 당시 이곳에는 5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지하 600미터를 따라 내려가 45도의 고온에서 좁고좁은 갱도안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누워서 석탄을 캐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노동착취를 당했던 곳입니다. 위험한 해저터널에서 수많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노동자가 공식적으로 122명이었다고 합니다. 


구연철 선생님의 증언으로, 하시마섬 옆에 나카시마라는 작은 무인도에서는 하루에도 두세번씩 연기가 올라왔다고 합니다. 강제노동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화장시킬 때 피어오르는연기였다고 합니다. 


하시마섬에 발을 내딛자마자 이 땅에서 죽어간 조선인 노동자들의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하시마섬에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들은 관광객들에게는 하시마섬에서 얼마나 호화롭고 풍족하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합니다. 이곳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가혹하게 노동착취를 당했는지,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말한마디 조차 없습니다. 일본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하시마섬 고층 건물 앞에서 겨레하나 회원들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역사를 가슴깊이 세기며 ‘평화와 통일’을 외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쟁의 가해자 일본을 이야기 하는 곳 ‘오카 마사하루 평화 자료관’




나가사키에서 유명한 나가사키짬뽕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오카 마사하루 평화 자료관을 찾았습니다. 오카 마사하루 평화 자료관은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이야기 하는 일본의 유일한 자료관입니다.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 지배 그리고 세계침략전쟁까지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곳입니다. 

평화자료관은 강제 징용 조선인 노동자들, 조선인 피폭자 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의 자료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황민화 정책 등으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시마섬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먹었던 콩깻묵 식사를 모형으로 전시해 두었다. 



평화자료관은 평화운동가로 자신의 모든삶을 보낸 오카 마사하루목사님을 추모하고 그 뜻에 동참하는 일본의 시민들의 순수한 열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못하고 있는 일들을 양심적인 몇 명의 일본인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고마웠습니다. 




평화자료관을 나와 나가사키 원푝 자료관을 관람하고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답사했습니다. 추도비는 위에서 언급했던 평화운동가 오카 마사하루 목사님이 1957년 7월 10일 나가사키 오우라 모토마치의 죠우코인 지하 납골당에서 153명의 조선인 유골을 발견하게 된 후 시민 중심의 모금 운동으로 건립을 했습니다.


추도비 뒤쪽에는 “강제 연행 및 징용으로 중노동에 종사한 피폭사한 조선인과 그 가족을 위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평화자료관에서 느꼈던 놀라움을 추도비 앞에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추도비 앞에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역사기행 참가자들



병기 제작소 <수미요시 터널 공장>


해가 질 무렵 나가사키에서 마지막 강제징용현장인 수미요시 터널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미요시 마을과 아카사코 마을을 관통하는 굴을 6개 뚫어 군수물품인 어뢰를 만들었던 곳으로 이 터널 공사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차가운 터널입구에 들어섰을 때 이 터널을 뚫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을까 생각하니 숙연해졌습니다. 다행이 터널 입구에 이 터널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또 한번 양심적인 일본인들에게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일제강제징용노동자 2세 배동록 선생님


나가사키에서의 역사기행을 마치고 후쿠오카의 구로사키로 이동 후 강제징용노동자 2세 “배동록 선생님”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평생을 조선인 강제징용 관련 사업에 매달린 재일 조선인 배동록 선생님은 한복 차림으로 우리를 반겨주셨습니다.


배동록 선생님, 구연철 선생님과 역사기행 참가자들



배동록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야하타 제철소입니다. 배동록 선생님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던 곳입니다. 야하타 제철소 안내판에는 동양 최대의 제철소 였으며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자랑만 있을뿐, 그곳에서 목숨걸고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철강석을 가공하고 위험한 노동을 해야만 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가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다가와 지방의 ‘휴가묘지’



일본 사람의 가족묘지인 ‘휴가묘지’에 작은 돌조각들이 널려있었습니다. 아무도 이것이 조선인 묘지라는 생각조차 못했고, 양심 있는 일본인과 재일 조선인 강제 연행 진상 조산단에서 조사를 실시하면서 이 작은 돌 조각들이 조선인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봉분ㄷ 비석도 없는 작은 돌덩이 밑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유골이 묻혀있다고 생각하기 가슴이 아프도 통탄스러워습니다. 기행참가자들은 배동록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강제징용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신세타령가’를 들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추모가 끝나고 난 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휴가묘지의 작은 돌덩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여기에 묻혀 있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어갔을까... 

그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큰 숙제를 안고 휴가묘지를 떠나왔습니다.



일제강제징용역사기행을 마무리하며..


일제강제징용피해자들은 아직 제대로 된 일본의 사죄와 보상도 없이 고통속에서 죽어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만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었습니다.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 조선인 노동자들의 아픔과 애환, 고통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결심과 함께 일제강제징용역사기행단들은 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기행은 마무리 되었지만 일제강제징용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과 삶을 위한 실천의 시작일것입니다.


노동자겨레하나와 겨레하나여행사업단 더하기 휴에서는 더욱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 일제시대 선배 노동자들의 역사를 찾기 위한 기행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절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역사입니다!




Posted by _겨레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