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 사무총장


갑자기 성큼 찾아온 가을이 낯설지만 반가운 요즘입니다. 덥고 습했던 여름이 유난히 길기도 했던 터라, 과연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난여름, 기대했던 8.15 광복 72돌이 아쉽게 지나가고, 이제 다가오는 가을엔 10.4 남북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 발표된 10.4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관계 발전, 평화번영의 청사진이 생생하게 담겨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2008년 정권이 바뀌고 단 한 조항, 한 구절도 이행되지 못한 비운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지난 10년의 후퇴가 뼈아픈 만큼, 국민의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새 정부와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그러나 과연 10.4선언 10주년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난망하기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이후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의 입구로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의 호응은 없었습니다.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또다른 ‘코리아패싱’, 북한으로 하여금 ‘선미후남(先美後南)’ 토록 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양상입니다.  


최근 북미 간에 팽팽한 말폭탄이 오갔고,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과 이에 대응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연이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할 만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 압박’이라는 말을 동원하고 대응훈련을 진행한들, 한반도 긴장상황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재와 대화의 병행”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선 핵문제 해결”이라는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답습하는 꼴인 지금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부터 되짚어야 합니다.  


북미간의 대결과 북핵문제 해결은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관계정상화를 통해 상호신뢰를 조성하여 평화를 보장하는데 있습니다. 군사적 압박과 제재로 일관해 온 미국의 대북정책이 실패했음에도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한걸음도 진전되지 않았으며, 또 여기에 우리 정부마저 보조를 맞추겠다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심지어 트럼프가 ‘전쟁은 한반도에서 할 것’이라는 막말까지 쏟아내는 지경에도 정부는 아무 얘기도 못하다가 중국과 유럽연합까지 나서서 상황이 톤 다운된 시점에서야 대통령이 ‘우리 동의 없이는 전쟁은 안 된다’고 했을 뿐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미국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무색하지 않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우리 정부가 “대북제재는 실패했다고 미국에 말할 수 있어야”라고 한 것이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을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분리해 추진해야 한다”고 하는 등 최근 작심한 듯 이어진 전임 통일부장관들의 이야기를 우리 정부는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10.4선언의 정신과 의미를 복원할 수 있는 10주년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대북정책으로는 어떤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정부는 ‘제재’를 내려놓고 진정한 의미의 ‘대화’, 조건없는 대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전직 장관들의 말마따나 미국에 쓴소리 할 용기,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되겠다는 각오만이 남북관계의 담대한 전환을 이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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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겨레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