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연(평화연구센터 사무국장)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해 평화연구센터(이하 ‘센터’) 연구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높이의 남북관계 개선을 준비하는 6.15~ 8.15의 흐름에 센터도 기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겨레하나 지역지부 부문에서 연구센터를 초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화통일 시민강좌 연속기획 센터는 겨레하나 지역본부와 함께 공동으로 시민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가자분들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라 충격을 받았다는 분부터, 이런 강사(연구위원)들을 방송에 내보내야 국민들 의식이 많이 바뀔거라는 칭찬 섞인 반응까지 있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나서 자기의 삶과 일상에서어떻게 평화통일을 실천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과 토론도 이어졌습니다.


6.15를 맞이하여 진행한 겨레하나 회원교육 겨레하나 각 지역지부에서는 6.15를 맞이해 평화통일 교육이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와 과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특히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대한 관심과 토론도 많았습니다. 정세전망부터 한반도의 미래전략까지, 앞으로 평화연구센터에서 겨레하나 회원들과 더 많이 연구, 토론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이 확인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입소문으로 확대되는 평화통일 교육 겨레하나 회원들의 추천, 강연을 기존에 들으신 분들의 추천으로 여러 유관단체, 지역연대단체들에서도 문의와 강연요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연문의가 많은 건 기쁜 일이겠죠? 남북관계에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 센터에서도 교육사업은 물론, 연구사업과 언론 기고 등도 더 활발히 하면서 평화통일운동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산겨레하나 회원교육 장창준 상임연구원


서울겨레하나 학교통일교육 강호제 센터소장


경주겨레하나 시민강좌 이준규 객원연구원



대전지역 평화통일리더쉽아카데미 변학문 상임연구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_겨레하나

북한, 더디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어

[북한 신년사분석③] "과학기술 앞세워 경제발전 추진하겠다"

 

강호제 (NKTech.net 큐레이터,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ㅣ 오마이뉴스 2017.01.10

북한은 신년사에서 과학기술을 제일 앞세운다는 의미에서 과학기술 부문의 정책이 새해 구호 바로 다음에, 자세하게 제시했다.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원료와 연료, 설비의 국산화에 중심을 두고 공장, 기업소들의 현대화와 생산 정상화에서 나서는 과학 기술적 문제들을 푸는 데 주력하여야 합니다. 생산단위와 과학연구기관들 사이의 협동을 강화하며 기업체들에서 자체의 기술개발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활발히 벌려 생산확대와 경영관리개선에 이바지하는 가치 있는 과학기술성과들로 경제발전을 추동하여야 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대략 5가지 정책으로 1)원료와 연료, 설비의 국산화에 중심을 두고 2)공장, 기업소들의 현대화와 생산 정상화에서 나서는 과학 기술적 문제들을 푸는 데 주력 3)생산단위와 과학연구기관들 사이의 협동을 강화하며 4)기업체들에서 자체의 기술개발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5)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활발히 벌인다 등으로 요약된다.

과학기술 관련 정책은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미래전략을 밝힌 7차 당 대회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부분 제시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 신년사에서는 2) 와 같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과학기술을 제1순위로 올린 2015년 신년사에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였는데 전반적인 내용은 2) 와 같은 원론적 수준에서 현대화, 정보화를 강조하는 데 그쳤다. 과학기술의 순위가 뒤로 밀린 2016년 신년사에서도 역시 2) 와 같은 원론적 수준의 이야기와 함께, 생산현장에 '과학기술보급실'을 새로 꾸려 노동자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향상할 것을 조금 더 요구하였다.

1) '국산화' 관련 정책은 최근 북한 정책의 핵심 화두인데, 7차 당 대회에서 각 부문별 과제로 대부분 언급되었는데 이번에 과학기술 부문의 중심 과제로 제시되었다. 이와 관련한 연구 주제를 중점 지원하겠다는 정책적 방향성과 함께, 생산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와 관련한 활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기술혁신은 일차적으로 생산현장에서 자체적으로 전개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관련 연구기관에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국산화를 위한 생산현장의 기술혁신 수준이 어느 정도 단계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3)과 같은 정책이 강조된 이유라 할 수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은 목적이 명확하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실제 생산, 즉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학기술 정책은 생산에 도입되어 도움이 되는 정도, 즉 기술혁신에 기여한 정도로 평가된다. 그래서 2) 와 같은 정책은 항상 강조되는 것이다. 2016년에 강조한 과학기술보급실을 만드는 것도 결국 5) 와 같이 생산을 직접 담당하는 대중(노동자)를 중심으로 '기술혁신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교육 부문에서 올해를 '과학교육의 해'라고 강조하면서 과학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시설과 환경을 새롭게 바꾸라는 요구가 나온 것도 이런 흐름에서 파악할 수 있다.

4) 와 같이 기업체가 자체의 '기술개발역량'을 튼튼히 꾸리라는 요구는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의 구체적인 내용 중에 이와 관련한 것이 들어 있다. 기업의 자율성을 높이면서도 계획경제의 틀을 깨지 않는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그 내용에 기업의 인재육성권도 들어 있다. 단순한 기술지원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정도로 수준을 높이려는 듯하다. 중앙과 지방, 전문연구기관과 생산 현장의 역할 분담을 강조하면서 생산현장 자체적인 연구역량을 좀 더 강화하자는 4) 와 같은 정책으로 이어진 듯하다.

전력 부문
7차 당 대회에서 "전력문제를 푸는 것은 5개년 전략수행의 선결 조건이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의 중심고리"라고 규정될 정도로 북한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5개년 전략수행 기간 당에서 제시한 전력생산목표를 반드시 점령"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래서 이번 신년사에서도 중요하게 전력 부문 정책이 중요하게 취급되었는데 대략 4가지 정책이 제시되었다.

1)발전설비와 구조물 보수를 질적으로 하고 기술개조를 다그쳐 전력생산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여야 합니다.

2)국가통합전력관리체계를 실속있게 운영하고

3)교차생산조직을 짜고 들어 전력생산과 소비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4)다양한 동력자원을 개발하여 새로운 발전능력을 대대적으로 조성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1)과 4)는 이전 신년사에서도 계속 언급되던 내용이고 2)와 3)이 이번 새롭게 들어간 내용이다. 이들 내용은 모두 7차 당 대회에서 제시되었던 정책이다. 북한의 전력 시스템은 전쟁의 피해를 대비하여 지역별로 따로따로 조직되어 왔다. 지역별 발전소와 생산공장을 직접 연결시키는 체계였다. 그러다가 이제 국가 전체적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를 실시간으로 장악하는 '국가통합전력관리체계'를 꾸리고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각종 기술적 해결책을 작년에 많이 완성하였다.

2016년 11월에 개최된 '제27차 전국정보기술성과전시회'에 참가한 전력 공업성은 '국가적 통합전력관리체계'에 대한 성과들을 전시하였다고 한다. 이 전시물에 의하면, "이미 마련된 지역 단위전력관리체계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자료통신망 구성에 선진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을 실시간적으로 감시 조종할 수 있게 되였다. 이와 함께 1차,2차변전소들을 통하여 전국의 모든 소비단위에서의 전력소비량도 실시간적으로 감시 조종할 수 있게 되였다"고 한다. 이는 "국가적인 전력의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하는 것이고 향후 "유연 송전기술" 도입을 위한 토대로 작용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재료공학부에서 개발한 '우리 식 이종금속 단자의 국산화' 성공은 서로 다른 재질의 전선을 통해 전력을 송전할 때 전력 누수가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개되었다. 이를 만들기 위한 필수 기술인 "세계적인 첨단기술의 하나인 마찰교반용접기술"도 동시에 개발하였다고 한다. 또한, 발전소에 들어가는 터빈 등 각종 설비를 개보수, 혁신하기 위한 성과도 여러 건 작년 말에 발간된 로동신문에 소개되었다. 이들 기술에 대한 수준 평가는 동의하지 못 하더라도 적어도 필요한 기술을 차곡차곡 확보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듯하다.

북한의 전력은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산량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위성에서 찍은 북한 지역의 밤 풍경을 보면 여전히 남한보다 어둡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밝은 점들이 더 많이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교차생산'의 의미가 턱없이 부족한 전기를 나눠쓰는 수준을 넘어, 생산과 소비를 효율적으로 조절하여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에서 전력 사정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연구에서 '교차생산'은 전력 부족 사회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부분 에너지를 전력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산업 체계에서 교차생산 체계 도입은 당연하다. 아래에 보이는 2010년 기사는 현대자동차에서 교차생산을 도입한다는 소식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연구 도입하려는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와 같은 개념으로 북한에서는 '교차생산 조직'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 운반, 소비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체계를 갖추려는 것이 북한의 '교차생산 조직'을 꾸리는 목적이다.

 
 현대-기아차 미국서 교차생산
ⓒ 강호제

관련사진보기


기계공업 부문
신년사만으로 해석했을 때, 북한의 공업 부문이 정상화, 분화되고 있는 근거가 화학공업과 기계공업 부문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다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화학공업 부문은 자연 상태의 연료, 원료를 확보하는 석탄공업이나 채취공업과 달리 새로운 원료, 원료를 직접 만들어내는, 자원 공급과 관련된 부문이다. 화학공업 부문에서 만든 연료, 원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생산현장에서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한다.

자연 상태의 원료로 만든 각종 금속을 만들어 내면, 이를 다시 다양한 기계를 만들어 생산현장에 공급하면 새로운 제품을 생산된다. 이 두 부문은 생산현장에서 필요한 직접적인 재료인 원료, 원료, 설비를 공급하는 영역이다. 산업 인프라를 만드는 4대 선행 부문을 넘어 이제는 화학공업과 기계공업 부문의 발달이 필요한 경제 상황이 된 것이다. 나름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계공업 부문의 정책 과제는 많지 않다. 

"기계공장들에서 현대화를 다그치고 새형의 뜨락또르와 륜전기재, 다용도화된 농기계들의 계렬생산공정을 완비하며 여러 가지 성능 높은 기계설비들을 질적으로 생산 보장하여야 합니다."

7차 당 대회에서 뒤떨어진 부문이라고 거론된 농기계 보급률을 높이려는 조치에 집중하고 있는 흐름이다. 아마도 '새 형의 뜨락또르'는 7차당 대회 끝나고 바로 개최된 기계장비전시장에서 소개된 금성뜨락또르공장의 80마력짜리 뜨락또르 '천리마-804'일 것이다. 이는 2016년 12월 계열생산을 위한 담보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북한의 주장으로는 100% 국산화된 트랙터라고 한다.

본보기 공장이 마지막 단계인 무인화까지 완성되었으니 공장들의 상황에 맞추어 본보기 기술들을 받아들여 혁신할 것이다. 그러면서 올해 새로운 과제로 작년에 개발한 트랙터, 운전 기재, 농기계 등을 대량생산할 체계를 만드는 것이 제시된 것이다.

화학공업 부문
화학공업은 특별히 "공업의 기초이며 경제의 자립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위상을 새롭게 정립되면서 정책이 제시되었다.

"2.8비날론련합기업소의 생산을 활성화하며 중요화학 공장들의 능력을 확장하고 기술공정을 우리 식으로 개조하여 여러 가지 화학제품생산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탄소하나화학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사업에 힘을 넣어 단계별과업을 제때에 원만히 수행하여야 합니다."

현대 생활에 쓰이는 대부분의 제품은 자연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화학공업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물질을 이용한다. 이때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크게 2가지인데 석유와 석탄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석유에서 추출, 분리한 물질을 바탕으로 각종 화학물질을 만드는 석유화학공업 체계가 발달했지만 북한은 자체 생산할 수 없는 석유보다 풍부한 매장량을 확보한 석탄을 기반으로 하는 화학공업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를 상징하는 기업소가 바로 동쪽에는 함흥시의 2.8비날론련합기업소, 서쪽에는 안주시에 있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이다. 그런데 안주에는 북한 최대의 석유화학공업 시설도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석유가 개발되면 동쪽의 함흥보다 안주가 더 커질 듯하다. 7차 당 대회에서 '원유'를 적극 개발하겠다고 했고 2016년 하반기부터 중국의 석유시추선이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거의 확신할 수 있는 서해안에서 시추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생산 단계가 아닌지 이번 신년사에서는 빠졌다.

사실 2.8비날론련합기업소는 1990년대 중반 가동이 중단되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에 다시 정상화해내고 2011년에는 관련자들을 평양으로 불러 환대해주는 일명 '평양 정치'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다. 2.8비날론련합기업소는 이름에도 있는 '비날론(석유로 만든 나일론과 함께 석탄으로 만드는 비날론은 인류가 만든 중요 합성섬유이다. 면과 가장 비슷한 합성섬유이면서 방탄, 방염 섬유 등 특수 섬유를 만드는 데 쓰인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료, 염료, 농약 등 각종 화학 재료들도 기본공정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다. 남한이나 외부의 비료 지원이 줄어들었음에도 북한의 식량 생산이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 동서쪽의 대규모 화학공장들에서 비료를 직접 생산하게 된 것이 있다.

화학공업 부문의 정책 과제 첫 번째인 "2.8비날론련합기업소…" 부분은 석탄화학공업 체계를 더욱 강화하자는 의미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비날론 생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생산 과정에서 전력소비가 많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인 전력 소비가 크다는 것은 화학공업 체계를 갖추려다가 다른 공업체계들이 생산에 지장을 받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탄소하나(C₁)' 화학공업을 창설한다는 정책이다. 이는 7차 당 대회에서 "석탄 가스화에 의한 탄소하나 화학공업을 창설"하자는 말로 제시된 정책이다.

석유를 이용하거나, 석탄을 이용하거나 다른 물질을 만드는 출발은 탄소 2개짜리인 에틸렌(C₂H₂)과 탄소 3개짜리인 프로필렌(C₃H₃) 등이다. 탄소하나 화학공업이란 이들 출발 물질을 석유나 석탄을 가공, 정제하여 만들 것이 아니라 탄소를 하나 포함한 물질 즉 일산화탄소(CO), 메탄, 메탄올, 포름알데히드(CH₂O) 등을 이용하여 합성해내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석탄에서 출발물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전력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므로 북한으로서는 매력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특수 촉매'를 써서 반응시켜 탄화수소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서 합성 휘발유, 합성 경유 등을 만드는 것이 바로 탄소하나 화학공업이다. 이는 북한에서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우리나라의 성균관대 배종욱 교수 연구팀이 2016년에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합성하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였다고 한다. 제철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가스 속에 일산화탄소와 수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기술만 완비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폐기되는 가스를 활용하여 적은 비용으로 원료, 연료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혼합 가스에서 액체 연료 생산
ⓒ 강호제

관련사진보기


북한의 공식 문헌 분석은 항상 조심스럽다.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 않을 수 있고 정치적 수사도 많이 들어가 있으며 더욱이 긴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봐야만 그나마 조금씩 변화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은 글로서, 현실 일부만 반영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그 자체의 변화를 찾고 그 의미, 배경 등을 캐보려 한다면 나름 의미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면 왜곡하고 있는 이유나 방법이라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북한
지난 10년 동안 남북 왕래가 거의 끊어졌기 때문에 북한에 직접 가보고 실상을 판단할 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유일한 합리적 추론 방법은 문헌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신년사를 이렇게 꼼꼼하게 분석해본 이유는 북한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는 가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최대한 정보를 캐보기 위한 노력이었다.

최근 5년 동안 발표된 신년사만 놓고 보더라도 북한의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후퇴보다는 전진, 나빠지는 것보다는 좋아지고 있는 방향이었다. 게다가 정책의 정밀함이나 세밀함이 조금씩 강화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로동신문에 나오는 기사들과 연결해 분석하면 신년사 본연의 목적, 즉 지난 1년을 평가하고 다가올 1년을 계획하는 것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올해에도 북한 핵 혹은 미사일(로켓)로 인한 소동은 계속될 듯하다. 북한은 핵을 폐기할 수도, 아니 폐기한다고 해도 믿어줄 수 없는 상황(stage 2)으로 들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돌아올 다리가 없다. 다만, 우리 정부와 미국이 전격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여 최소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개최 장소만이라도 조정하거나 평화공존을 위한 모색을 시작한다면 소동이 잦아들 수 있겠다는 변화의 여지가 약간은 엿보였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전략과 적극적인 실천 의지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식경제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북한은 과학기술을 앞세워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이번 신년사에서 명확히 밝혔다. 명시적으로 과학기술을 제1순위로 내세운 것부터가 그렇다. 또한, 이전과 달리 자세한 과학기술 정책을 바탕으로 부문별 경제정책을 마련한 것도 과학기술 중시 정책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생산현장을 CNC 기술로 자동화하여 궁극적으로 무인화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선언도 인상 깊게 보았다. 이제 북한의 변화, 좁게는 북한 경제의 변화를 읽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내용과 흐름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과학기술 관련 내용을 완전히 배재하고 북한 문제를 분석하던 기존의 북한연구 관행이 변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제시된 계획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북한 경제의 변화는 눈에 띄게 빨라질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계획대로 현실 상황이 얼마나 따라와 주느냐이다. 또한 이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충분한 자본과 자원을 어떻게 확충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북한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인 군사적 긴장감을 어떻게 완화할 것이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상이 제시되지 않아 이번 신년사의 계획을 꼼꼼히 분석해보아도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게 남는다. 모쪼록 이러한 불확실성이 불안정보다는 안정 쪽으로, 전쟁이나 분쟁보다는 평화 쪽으로 점차 변해갔으면 하고 바란다.

 

오마이뉴스 http://omn.kr/m2c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_겨레하나

 

요즘같이 추운 날, 따뜻한 국물이 필요할 때,

따뜻하게 속을 풀어줄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

이미 아주 특별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랍니다!!

 

신촌의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는

신촌 현대백화점 뒤쪽, 창천 어린이공원을 가로질러 카페베네 부근 왼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게 내부입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한국적인 분위기가 풍깁니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는데요.

신발벗고 들어간 방안쪽으로 9개의 테이블과 외부에 2개의 테이블,

총 11개의 테이블이 있습니다.

 

이미 근처 대학생들에게도 입소문이 나있는 곳이라

사람이 많을땐 기다려야 합니다.

 

겨레하나 중앙본부 사무실이 작년에 신촌부근으로 이사를 와서

점심을 먹으러 종종 들리는데~

저희 겨레하나 식구들은 따끈따끈한 방에서 먹는 걸 선호합니다 ^^

 

 

자, 그럼 메뉴를 볼까요?

 

 

이곳의 대표메뉴는 누구든 짐작하듯이 '조선의 육개장'입니다.

명품막걸리 한잔 + 육개장 + 칼국수 + 밥 반공기가 5,500원!

처음 방문하시면 꼭 육개장 칼국수를 먼저 드시길 추천합니다.

 

 

식사를 주문하면 기본 반찬과 막걸리가 먼저 나옵니다.

 

반찬 종류가 많진 않지만

깍두기와 무짱아지 맛에서 정성스러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몇번을 더 달라고 해서 먹곤합니다.

특히 저 새콤달콤한 무짱아지는 집에 데려가고 싶다는.... ^^;; 

 

그리고, 도수는 낮지만 달달한 막걸리 또한 반주로 그만입니다. 

 

 

대표 메뉴가 등장합니다.

면이 불지 않도록 저렇게 따로 담아 주시는 것 같은데,

먼저 익혀나온 쫄깃한 면을 말아 후루룩 맛있게 먹고

그 다음 밥을 말아서 먹으면 됩니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밥보다는 면이 더 맛있어요! ㅎㅎ

 

매번 소식하려고 다짐하지만...

이 얼큰한 맛앞에서는 한그릇 뚝딱 과식을 하고 맙니다 ㅠㅠ

 

 

이건 사골국물에 칼국수가 나오는 영양만점 곰칼국수에요~!

담백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육개장 칼국수 만큼이나 인기메뉴인 감자전입니다. 강추!!

겉은 바삭한데 속은 부드럽고 고소합니다.

집에서는 아무리해도 이런 맛이 안나오는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

 

 

다음은 '왕할머니 누룽지'입니다

겉은 딱딱한데 안은 말랑한, 꿀이 뿌려진 달달한 누룽지에요.

 

간식으로 먹게 싸가고 싶지만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해서...

이미 가득찬 배 속에 꾹꾹 눌러담아 먹고 옵니다 ㅋㅋ

 

 

얼마전, 겨레하나 새식구가 된 대외협력국 이용헌 활동가(왼쪽)와

'신촌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를 운영하는 백준현 회원(오른쪽) 사진입니다.

 

주인장님께서 인심 좋게 생기셨죠?

 

신촌 부근에 오시면 뭘 먹을까 고민하지 말고,

겨레하나 회원이 운영하는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에 들러주세요~!

 

맛도, 영양도, 서비스도 보장해드립니다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 57-61번지 B1

02-336-1577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마포의 맛집으로도 소문난 칵테일바&사케바

싱싱한 안주에 부드러운 사케 한잔이 생각날 때 들러주세요!!

 

마포 공덕역 인근에 위치한 '주주바(ZUZUBAR)'

1층은 '칵테일 웨스턴바'로, 2층은 '이자카야 사케바'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겨레하나 중앙본부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회식 등 특별한 날에 종종 가는 곳이랍니다.

1층에선 유명한 칵테일 쇼도 볼 수 있고 각종 칵테일과 맥주, 양주 등을 즐길 수 있다는데,

저희는 주로 2층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 때문에 2층으로 고고씽!!!

 

 

 

입구에 보이는 현수막은 점심식사 메뉴같아요.

 

 

계단을 올라서면 보이는 추천메뉴!!

모듬사시미, 나가사키짬뽕 -> 요 두가지 추천메뉴답게 맛이 완전 끝내줍니다!

아쉽게도 글쓴이는 모듬참치회를 먹어보진 못했네요. 다음번에 맛보아야겠어요 ^^

 

 

 

실내로 들어가면 요런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뭐랄까~ 잠시 복잡한 도시를 벗어난 느낌으로 분위기 좋은 술자리를 만들어 준답니다~

 

 

자~!

이제 '주주 사케바'의 메뉴를 살펴볼까요?

 

 

메뉴가 참 다양하죠?

그런데 메뉴판의 절반밖에 찍지 못했다는 사실....

 나머지 메뉴에는 짬뽕류, 볶음류, 고기류 및 식사로 가능한 초밥, 알밥 등도 있답니다.

 

 

 

사케 종류도 여러가지~!

그밖에 병맥주, 소주도 마실수 있어요 ^^

 

 

이날 저희는 모듬사시미와 미소탄탄라멘, 사케

그리고... 사케는 마셔도 취하지 않아서 불만인 사람을 위해 소주도 주문했어요 ㅋㅋ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중.

 

배가 고파옵니다...

 

 

 

드디어~!

 

탄탄미소라멘이 먼저 나오고, 모듬사시미가 나왔는데

허기졌던 우리는 먹느라 바빠 아쉽게도 미소라멘 상세컷을 찍지 못했습니다 T.T

 

해물 듬뿍들어간 칼칼한 맛의 미소라멘이였는데,

식성좋은 저희는 면을 한번 더 추가해서 먹었답니다 ^^;;

 

모듬사시미는 그때그때마다 나오는 회의 종류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이번엔 전복회도 보이고 성게회도 보이네요 ㅎㅎ

 

 

시간은 흐르고... 평화통일에 대한 고민과 수다는 깊어지고...

소주도 추가하고 안주도 추가하고~ ㅋ

 

 

 

새우튀김입니다.

이렇게 큰새우는 첨봤어요 ^o^

왕새우튀김에 피망, 양파, 오징어, 단호박튀김도 곁들여주시고 아주 푸짐합니다.

사장님께서 겨레하나 식구들이라고 더 잘 챙겨주시는 것 같아요

 

 

 

도톰한 연어에 싱싱한 야채가 듬뿍 연어샐러드!

 

여성들이 많아서인지 다크서클에 좋다는 연어샐러드도 순식간에 뚝딱 사라졌어요 ㅎㅎ

 

 

 

그리고 마지막에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주신 타코와사비!

 

낙지와 와사비, 야채를 버무려먹는 젓갈 비슷한 안주인데요

처음 맛보았는데, 쌉싸름한 와사비와 물컹한 낙지가 만나서

은근 중독성있는 맛이에요~!

 

저희에겐 너무 생소했는데 인기메뉴라네요... 고뤠~?

 

 

 

'주주바(ZUZUBAR)'는 직원들이 출자를 해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가족같은 분위기, 편하고 친절함이 느껴져요~. 

 

뿐만아니라 '주주바(ZUZUBAR)'의 민성원 사장님은 겨레하나를 비롯해

평화통일운동에 여러모로 든든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착한 운영, 착한 사장님이 계시는 '주주바(ZUZUBAR)'에 자주 들러주세요~(^^)/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172-18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남한 관광객을 가득 태운 전세 비행기가 서울과 평양을 날마다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평양을 관광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늘은 그때 평양 관광이 시작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소개하겠다.

 

2005년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겨레하나는 평양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는 민간교류가 무척 활발하던 시절이었고 우리 팀 말고도 많은 대북지원단체들이 호텔마다 북적거렸다.

또 백두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6차 장관급회담의 장소가 평양으로 변경되어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평양에 있었다.

15일 저녁 갑자기 북한 안내원이 능라도 5.1경기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10만이 참여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자고 했다.

 

그때까지 남한 정부가 금기시하던 <아리랑>공연이라 관람해도 좋을지 걱정했지만

VIP석에 앉아있는 정동영 장관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리랑>공연 기간 동안 남측 사람들의 평양 관광을 허용하며,

각 지원단체들에 모집 참가권을 주겠으니 최대한 많이 참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남한 정부의 승인여부를 걱정하는 내게 정동영 장관이 정부차원에서 적극 도와주기로 했으니 걱정 말란다.

 

 

 

그러면 잠시 아리랑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2000년 10월, 대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공연에 왔던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인공위성 발사장면과 ‘우리를 건드리는 자 이 행성 위에 살아남을 자리 없다’는 카드섹션을 보고 기가 질렸다고 했던가?

그때보다 훨씬 다채롭고 부드러워진 내용으로 바뀐 대집단체조 <아리랑>은

10만 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치는 대 집단체조 군무와 카드섹션으로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당시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대화를 중단하고 ‘악의 축’ 발언을 하는 등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아리랑> 준비과정을 대내외에 공개하면서 서방 세계 관광객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즉 북한은 '아리랑' 공연을 통해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 메시지'를 보내려고 의도했던 것 같다.

<아리랑> 관람에 남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참가한다면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의 여파는 더욱 커질 것이다.

자연히 북한은 그때까지 절대 불가하다던 남한 사람들의 평양관광을 한시적으로나마 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무나 신청만 하면 가능한 평양 관광은 남북관계 발전과 민간교류에 있어서 또 한번의 도약이었다.

남쪽에서는 그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던 평양임에도 불구하고,

문턱이 너무 높아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일반 여행사에게 모집권을 줄 수도 있지만

북한은 아직 상시적인 관광이 아니어서 서로간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북과의 민간 교류경험이 많은 지원단체들을 중심으로 이사업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했다.

 

겨레하나로서는 남한 방문객을 엄격히 제안하던 그 시절에

무작위적 관광을 허용한다는 제안도 무척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때마침 아리랑 공연을 한번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어서

로또가 당첨된 심정으로 이 제안을 적극 수용하였다.

 

<아리랑>에 대한 남측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리랑>은 집단주의 사회인 북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일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을 혹사시키는 반인권적 요소가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예술성과 대담한 스케일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리랑>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다양하지만 우리와 화해 협력해야 할 동반자인

북한의 특징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쪽 사람들도 꼭 한번은 보아야할 공연이다.

특히 그동안 남쪽 사람들이 인도지원 물품 분배 현장 확인 차 방북하여

북의 경제적 어려움만을 목격해 왔다면,

아리랑 공연 관광길에서는 북한의 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얼마나 모집해 올수 있겠냐는 북 민화협의 질문에

직항 비행기로 약 15회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당장 20일부터 첫 관광을 시작하잔다.

 

아이쿠.... 그 무슨 번개 불에 콩 구워 먹을 소리를!

우리가 서울에 도착하면 17일 저녁이며 그날부터 대한민국은 이미 추석휴가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 다음날 18일 일요일이 추석이므로 모든 업무는 이미 중단되어 있으며

빨라야 20일이나 되어야 출근과 모든 공적 업무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회의절차와 실무적인 일이 하루 만에 끝날리도 없거니와 더 큰일은 비행기를 구하는 일이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에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과연 비행기가 있을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화를 치는 북한의 심정이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있던 겨레하나 임원들도 직감적으로 이 사업은 무조건 빨리 내질러야 될 사업이라는 느낌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아리랑>의 내용을 둘러싸고 보수언론의 집중 선제공격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아직 남쪽은 그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한명이라도 더 많이 보게 하여 시민들의 입소문으로 평양 관광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대적인 평양 관광, 그것을 가능케 하기위해 북한에 무엇을 요청해야 할까?

그때 불현듯 생각난 것은 평양에 임시 상황실을 개설하고 남북 직통 전화와 팩스선을 설치하는 문제였다.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 명단과 초청장을 주고받는 일,

사전에 차량과 호텔 객실을 배정하고, 확인되지 않은 신원에 대해 남북이 협의하는 등

모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남북의 직접 대화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은 대대적이고 신속한 평양 관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동의해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그날부터 정신없이 준비 작업을 몰아쳤다.

겨레하나 직원 한 명이 아예 아시아나항공에 눌러 앉아 없는 비행기를 내어달라고 생난리를 쳤다.

다행히 그때 장기 예약되어 있던 비행기 한 대가 예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좀처럼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던 전세비행기 계약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진행된 대규모 관광객 유치와 그에 따른 실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수십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전화기 수십 대를 설치했다.

또한 관광 리플렛 제작, 관광객 교육 및 서류정리 등으로 겨레하나 사무실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다.

 

드디어 9월 26일!

겨레하나는 약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한 달동안 계속된 평양역사문화유적과 아리랑 참관 사업의 첫발을 떼었다.

평양에서 제안을 받은 지 10일만이었고,

가운데 추석 연휴를 고려한다면 1주일도 채 안되는 기간에 전광석화 같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후 한 달 넘는 기간에 겨레하나를 비롯하여, 평화자동차, 지원단체들은

만 명이 넘는 인원으로 평양 관광과 아리랑 공연 관람의 붐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양각도호텔에 사무실을 내고

상황실장을 맡아 5명의 상근자와 함께 상주했다.

 

양각도호텔에 도착하여 가지고 간 팩스기를 연결하고, 전화가 개통되는지 점검부터 시작하였다.

그 시간이 아마 9월 26일 오후 1시경이었던 것 같다.

통화연결음 소리가 들리고, “여보세요. 여기는 평양인데요”하는 순간

전화기 저쪽에서 들리는 겨레하나 사무실의 엄청난 환성소리 “ 야 ! 평양이란다. 전화가 된다. 우와!”

서로서로 통화를 해보겠다는 아우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앞으로 닥쳐올 고생길이 구만리 같은데,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전화기에 매달려 천진한 어린애들 마냥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했다.

 

남한 사람들의 대규모 평양 관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언제 다시 그런 평양관광을 갈수 있을까?

 

우선은 금강산 관광재개가 시급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다시 재개된다면 그다지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아리랑 공연에 대한 남쪽의 평가와 관광을 둘러싼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다음번에 소개하겠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민중의소리] “이명박 정부가 나를 슬기롭게 만들었다”

                     인터뷰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이경 사무총장

 

 

“정말 재미없어요.”
남북관계를 주로 다루는 기자와 민간 대북지원 단체 사무총장이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눈 대화다.

남북관계가 안 풀린 지도 너무 오래됐고 경제협력이나 민간 차원의 교류, 대북지원 등 모든 분야의 활동이 ‘스톱’된 지도 오래됐다. “정부는 전향적으로 나서라”고 외치기도 입에 군내 나도록 했고, 해도 해도 안 되니 자포자기 심정이 들기도 했다.

기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재작년 기사도, 작년 기사도, 또 올해 쓰는 남북관계 기사도 “얼어붙은 남북관계” 운운,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으니 “정말 재미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 말이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졌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사무총장을 6일 만났다.

“친정 식구보다 자주 만났었는데...”

51개 민간 대북지원단체가 모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를 비롯해 민간지원단체의 숫자는 꽤 많다. 지원 대상, 내용, 방식 등도 다양하다.

영유아 등 취약계층 대상 긴급구호를 주되게 하는 단체부터 공장 짓기 사업 등 중장기 개발협력 방식으로 나아가는 단체 등. 대북지원사업이 10여년 이상 이어지면서 그 내용도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의 ‘5.24조치’ 이후 ‘취약계층 대상 인도지원’만 선별적으로 허가가 나면서 이러한 ‘다양성’은 사라지고 과거로 퇴행한 상태다.

 

겨레하나 김이경 사무총장 (사진출처. 민중의소리)


 

“지난 정권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졌다. 긴급구호 성격에서 공장을 지어준다거나 개발협력으로 가는 추세였는데 이 모든 게 이명박 정권 들어 중단됐고, 밀가루 같은 경우 나가던 것조차 올초부터 완전히 중단됐다. 그러면서 나온 게 북측의 분배계획서를 승인조건으로 내세운 거다. 그걸로 대북지원을 반대하는 보수언론의 목소리나 정권 내부의 사람들을 진정시켰던 듯하다.

그러니까 북에서도 어느 정도 해주다가 갈수록 ‘이런 식의 지원은 해서 뭐하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민간도 ‘이런 지원 더 이상 하지 말자’ 이러다가 국방위원장 사망 후 완전히 ‘올스톱’된 거다.

대북지원 단체들이 문도 닫고 위축되고 지원양도 비교 안 되게 줄었다. 우리도 전에 평균 1년에 40억 넘었는데 작년에 몇천만원 수준이었다.”

한창 땐 한 달에 세 번도 만나고 “친정 식구들보다 자주 만났던” 사람들과도 못 만난 지 오래다.

공장사업 등 협력사업이 ‘스톱’된 상황도 마음의 짐이다.

“병원 지어주다 지붕 못 덮어서 물에 젖고 밀가루 빵공장 같은 데는 밀가루 보급이 끊어져 피해가 엄청나고 우리 쪽 사정으로 인한 손실액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하겠나. 앞으로 공장사업 지속하자고 말하기도 미안한 상황이다. 북측이 부담스러워 하는데 공장 짓는 게 더 좋다고 설득해서 추진했는데 우리가 책임을 못 진 거니까...”

김 총장은 이처럼 민간단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후원자들은 줄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반출이 안 되고 있을 뿐. 경색된 남북관계를 답답하게 바라보다가도 힘을 잃지 않는 동력이다.

“사람들이 참 따뜻하다. 폭이 넓진 않아도 꾸준하게 늘 마음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왜 기죽어야 하냐”

그는 “이명박 정부에 고마운(?) 게 단체들이 단결이 잘 된다”고 말한다.

“단체들 특성상 각자 창구를 유지해야 하고 주된 협력 파트너가 누구냐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다양성이 민간의 특성이기도 하고. 그런 특징 때문에 ‘헤쳐모여’가 잘 안 됐었다.”

‘단결이 잘 된다’는 말은 재작년 무렵부터 북민협 등을 중심으로 정부를 향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한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대북지원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면서 정부가 ‘대북제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작년에 제일 많이 목소리를 냈다. 작년에도 그랬고. 근데 아무리 해도 정부가 요지부동이고, 국회의원을 만나봐도 표 안 되고 ‘퍼주기’ 문제 이런 것들 때문에 못 하고, 단체들도 지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김 총장은 ‘위풍당당’을 외친다.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위축되고 자포자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싸워도 안 되니까 포기하는데 그러지 말고 모금도 하고 우리 주장을 하자, 그게 여론사업이고 국민을 설득하는 거다. 우리가 기가 죽을 필요가 뭐가 있냐. 당장 물자를 보낼 수 있든 없든 뭐가 그리 중요하냐. 우리 마음이 중요하다.”

올해 봄가뭄과 큰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이어지고 국제곡물가 상승이 예상되는 등 북측 식량난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올 가을 곡물 생산량이 60만t 가량 줄어들 것으로 통일부는 추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단체들이 ‘캠페인’을 통해 범국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긴급 수해지원의 의미는 크다. 오는 11일 밀가루 500t이 처음으로 북측에 전달된다.

“특히 북민협이 개성을 방문해 수해지원에 합의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처음 만난 거니까 의미가 남다르다.”

그럼에도 그는 대북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로 ‘북이 어려우니 도와주자’ 라고만 접근하는 것보다 “우리 주장이 틀리지 않은데 위풍당당 이야기하자”고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 정권 내 강경세력의 입장은 북이 어려울수록 더 압박해야 무릎 꿇고 나온다는 것 아닌가. 그들은 현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달리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폈고 성공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김 총장이 ‘위풍당당’을 외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다. 겪고 또 겪다보니 오히려 중심, 원칙을 단단히 잡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나를 슬기롭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 총장은 “어떤 식으로든 민간교류를 해야 한다. 공장사업이 좋을지 밀가루가 좋을지 서로 생각도 다양하지만 남북이 민간의 필요성을 찾아가면서 자꾸 만나면서 통일의 주체역량이 강화되고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다”라고 말한다.

대북지원사업이 성장하면서 장기적인 구상도 다양해졌다. 겨레하나는 이후 방향이 ‘전문교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사업이 진행되면 갈수록 긴급 구호성 인도지원은 줄어들 거라고 본다. 이후에 전문 분야별 교류 쪽으로 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농업교류라면 농민 교류가 아니라 전문학자 간 만남을 통해 북과 우리의 농업이 상생할 수 있는 조건, 서로의 경제체제에 조응하면서도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민간의 역할을 찾아가려는 고민이다. 또 전문교류 할 때 북이 필요로 하는 기자재나 실험장비를 지원하면서 그 성과를 공유하는 형태로 가지 않겠나, 그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남과 북의 청춘남녀의 결혼이 가능할까?

2007년도 가을 어느 날, 평양 양각도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부회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남북 중매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정식 제안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였지만, 한번 생각해봄직한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발단은 민화협 여성 안내원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고려대학교 교수님 한 분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민화협 부회장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북측 민화협과 남측 겨레하나가 결혼 중매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만일 결혼이 성사되어 평양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평양에 아파트를 선물로 준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북한 민화협의 부회장이라면 실제 남북화해협력사업을 총괄하는 막강한 영항력을 갖는 분인데

그런 부회장님의 말씀이 그저 실없는 농담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귀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워 “정말이요? 진짜요?” 하며 당장 합의서를 쓰자고 했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던 민화협 안내원들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부회장님! 그건 안됩니다. 남북관계가 아직 거기까지 발전하지 못했는데 결혼중매라니요?

통일이 되면 그때 가서 하시지요”하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안내원들은 ‘존경하는 부회장님이 왜 저런 무리한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나에게도 연신 눈짓과 고갯짓으로 불가능하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내원들이 상급자의 말에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처음보는 장면이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때 부회장님께서 안내원들을 만류하시며 꺼낸 말씀은 더욱 뜻밖이었다.

“이 사람들아! 통일이 된 다음에야 겨레하나와 우리 민화협이 결혼중매사업을 뭣하러 하겠나?

그때 가면야 중매사업 없이도 실제로 결혼하는 일들이 많지 않겠나?

지금 우리가 결혼 중매사업을 하자는 것은 남북화해협력을 앞당기자는 뜻에서 하자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은 것이지 않겠나?

어떤가! 총장선생, 실제 우리 이 사업을 한번 해보자고!”

 

물론 이 모든 내용은 당장은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남북의 결혼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중매 운운 하다가 자칫 견우직녀를 만들 셈인가?

 

그런데 나는 이 사업이 당장 실현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보다도,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한 부회장님의 발상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북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니!

그것도 젊은 사람이 아닌 민화협의 최고 높으신 분이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소신이 더욱 강해졌다.

 

무슨 소신이냐고?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남북민간교류사업을 하는 이유와 방안에 대한 것인데

‘남북민간교류에 왕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은 인도지원을 통해 민간교류를 하고 있지만 이과정이 유일한 정석은 아니다.

특히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재개되면 인도지원보다 더 다양한 교류아이템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며

기상천외한 다양한 생각 속에서 적절한 아이템들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 발전, 혹은 통일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이며

창조적이고 개성있는 교류 사업제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남북민간교류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겨레하나 역시 지난 10년간

남과 북을 잇는 학술토론회, 영상교류, 풍물공연, 남북교수학생 한마당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오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실적 흐름을 배우고 성장해왔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분단 60년 만에 만나

서로 상대의 특성과 정서를 잘 모르니 좌충우돌을 겪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남북민간교류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민간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남북민간교류라고 볼 수 있다.

남북민간교류 영역에 제도화된 것은 실상 아무것도 없으며,

민간의 열정과 추진력이야말로 남북관계를 앞당기는 중요한 원천일 것 같다.

 

남과 북에 절절히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생겨나고 그들을 맺어주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면,

특별법 제정부터 시작하여 일을 추진하다보면

어쩌면 정말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첫발을 어떻게 떼나?

그 무슨 정략결혼을 위한 중매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청춘남녀 개별이 데이트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갈수 있을까?

아, 정말 이런 생각은 즐거운 공상이다.

그러나 단지 공상만이 아닌 정말 실현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남북교류협력을 무어냐고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말을 말한다.

“그거야 남쪽에서 구체적 이해를 놓고 남북협력을 절절히 원하는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자기의 소원을 푸는 것이지요.

아니면 분단상황이 너무 갑갑하여 남북관계의 발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다양한 꿈을 꾸는 과정이 아닐까요?

저는 두번째 경우에 속한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교류협력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민간교류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머지않아 열리게 될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부터 꿈을 꾸고 실력을 키워봄이 어떠할까!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2004년 인천에서 개최된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계기로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시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꿈꾸게 되었다.

인천시는 북한 개풍군과 인천을 있는 평화의 연육교를 건설하여,

인천경제 활성화를 모색하려는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한 이벤트로 다음해인 2005년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초청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인기가 좋았었고,

그들이 오면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인천시가 주도하는 인도적 대북지원부터 고민 되었는데,

물론 그 이면에는 인도지원 과정에서 인천시와 북한과의 독자적 파트너쉽을 만들자는 의중이 깔려있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는 이 사업의 중재역을 맡았다.

거의 10개월 가까이 걸린 오랜 협의 끝에

인천시는 당시 평양 거리 정비를 위한 도로 포장 원료인 피치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인천시장을 비롯한 대규모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여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인천에 오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런데 마지막 실무 절차를 마무리 점검하기위한 개성 회의에서 북한은 갑자기 돌발치 않은 내용을 통고하였다.

선수단은 보내주겠는데 응원단을 보내는 것은 취소하기로 결정되었느니 양해를 바란다는 것이다.

몇 일 전에 열린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지도부의 최종 결정 회의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육상 선수권대회가 축구처럼 구기종목도 없는데 길어봤자 10여 초면 끝나는 육상경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응원하느냐’는 내용이었단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의견이 제기되자 그 누구도 답을 내리지 못했으며,

응원도 못하는 곳에 응원단을 파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단 파견이 취소된 것이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애초에 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육상대회에서 화려한 집단 응원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왜 처음부터 하지 못했을까?

북한의 대대적인 인천방문의 효과를 올리자는 생각으로 당연히 응원단을 제기한 것이었으며,

그 과정까지 워낙 큰 쟁점들을 처리하느라 응원단의 활동이라는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허를 찔린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그 때 상황은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제기가 적절한가 아닌가를 떠나,

어렵게 이루어진 합의가 깨질 경우 벌어질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했다.

응원단이 오지 않으면 북한 선수들은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북한’에게 대북지원까지 하며 일을 추진한 인천시장에게 비난 여론이 쏟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다음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재선 역시 어려워질 것이고,

앞으로 다른 지자체들의 대북사업에도 좋지 않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뿐인가.

그 파장은 겨레하나로서도 감당하기 어렵다.

북과 합의를 한 당사자는 인천시이지만, 인천시는 겨레하나의 대북협상력을 의지해 일을 추진했고

협상의 고비마다 겨레하나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대북교류협력중재자로서의 겨레하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어휴!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나는 당장 평양으로 달려가 직접 이 사태의 심각성을 민화협 지도부에 직접 호소하고,

결정을 바꿀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던 인천시 공무원도 새파랗게 질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한번 내린 결정을 바꿀 수 있을까?

그 결정의 이유가 틀린 것도 아닌데...

응원할 것이 없다는 문제제기를 어떻게 설득하지?

 

서울로 돌아와 겨레하나 회의를 열어 장고의 논의 끝에,

별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겨레하나의 처지를 봐서 재고 해달라는 것’으로 호소하자고 입장을 정리하였다.

 

당시 인천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있는 대북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겨레하나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때문이고,

무려 14번씩이나 인천시와 북의 협의가 결렬될 때마다 겨레하나의 중재로 다시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북이 인천시장과의 약속을 깰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겨레하나이며,

북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겨레하나에

이렇듯 엄청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가를 묻고,

응원할 것이 없다는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여파를 고려해 결정을 번복해달라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절박하게 북에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개성에서 결과를 통보 받고 닷새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일주일 내에 다시 민화협 지도부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그전까지는 도착해서 겨레하나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결정을 번복할 마지막 기회를 갖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민화협 안내원의 귀띔 때문이었다.

평양에 간 나는 거의 죽을 듯한 심정으로 민화협 지도부에 겨레하나의 사정과 관련된 호소를 전하였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나는 태어나서 가장 긴 시간을 경험한 것 같다.

회의 결과를 가지고 민화협의 김선생이 나를 만나러 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림. 서영준 화백

 

“총장 선생, 대단합니다.

총장선생의 호소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응원을 할 것이 없다는 민화협의 결정을 살려

응원단이 아닌 ‘청년학생협력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북의 결정을 바꾸다니 겨레하나 대단한 실력인데요?”

 

이게 무슨 뜻일까?

그러니까 응원을 한다는 뜻인가 아닌가?

‘청년학생협력단’이라니 그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게 있었나?

무슨 뜻인지 감을 잡지 못하여 어리벙벙한 내게 김선생은 말을 이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은 응원단이 아닙니다.

한번 응원단 파견을 취소한 이상 이것이 번복될 수는 없습니다.

‘청년학생협력단’이 응원을 하기는 합니다만, 주요 임무는 응원이라기보다는

겨레하나와 협력하여 남북화해협력 분위기를 앞당기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초청한 것이 인천시와 겨레하나이니

인천시의 육상선수권대회에 북의 참가를 축하하는 축하공연도하고 남북공동응원도 합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라 겨레하나 청년학생 회원들과 협력하여 연환모임과 만찬을 열고 공연도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청년학생협력단’은 겨레하나의 호소를 듣고 겨레하나와 협력하기위해 인천에 가는 것입니다.”

 

와~!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됐구나, 이제 살았구나!’라는 심정이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겠다는 결심이었지,

결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의 호소를 받아들여 주다니...

마치 기적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당시 민화협에서 인천 동아시아육성선수권대회에 파견한 조직이 바로

금성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청년학생협력단’이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은 기존부터 있던 조직이 아니라 그때에 긴급 구성한 모임이라고 한다.

참 졀묘한 결정이었다.

응원단을 보낼 수 없다는 결정의 취지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인천시의 입장과 겨레하나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충분히 고려하여

훨씬 더 의미가 있는 ‘청년학생협력단’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

정치는 명분이라고 했던가?

결정을 번복하면서도 모두를 감복시키는 방안을 만들다니, 무척 절묘했다.

 

또 북의 민화협은 나에게 생색내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총장선생을 믿고, 금성학원 학생들을 보냅니다.

그 애들은 워낙 순수하고 또 민감한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혹시 인천에서 공화국과 장군님을 힐난하는 사람들이라도 접하면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겨레하나가 책임지고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온 ‘청년학생협력단’에 리설주양이 있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이 인천에 머무른 내내 나는 그 호텔에서 숙식을 같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고,

남한의 관계기관원들의 별의별 눈총을 다 받고 간신히 호텔에 눌러있었지만,

그 학생들을 지켜달라는 북측 민화협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마음이라도 보이며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연환모임 행사장 앞에서 청년학생협력단이 춤추는 모습

 

만찬에 참석한 리설주의 모습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는 무사히 잘 진행되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의 응원은 생동감있었고, 청년학생협력단의 2차례 축하 공연도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겨레하나’와 ‘청년학생협력단’의 연환무대였다.

남북의 청년학생들이 인천전문대의 캠퍼스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도시락 먹으며 어울려 놀았다.

말그대로 우리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남쪽 땅 한복판에서 이처럼 자유롭고 신명나는 통일 축제가 벌어질 수 있을까?

여타의 남북공동행사처럼 의전이나 딱딱한 연설도 없고 격식도 없이

남북의 미래인 청년학생들이 함께 추는 춤이야말로

앞으로 어쩌면 또다시 기대하기 힘든 감격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때 도시락과 함께 먹은 맥주 탓인지 나는 연실 눈물이 흘렀다.

이런 장면을 보려고 그렇게 마음을 졸였었나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가보다.

 

그 뒤 행사를 마치고 겨레하나가 다시 평양에 갔을 때,

북측의 민화협은 우리를 금성학원으로 초청하여 겨레하나만을 위한 특별공연을 마련해주었다.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북한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리설주씨를 꼭 한번은 만나러 가야겠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연환모임 행사장 앞에서 청년학생협력단이 춤을 추는 모습

 

최근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응원단으로 남쪽을 방문했을 때 찍힌 사진들이 공개되고 있는데요.

그 행사에 청년학생협력단이 응원단으로 초청한 단체가 겨레하나인 걸 아시나요?

 

청년학생협력단은 2005년 8월 28일 입국하여 8일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겨레하나와 2차례의 행사를 가졌습니다.

9월 4일 오전 10시 인천전문대 체육관에서 열린 연환모임과,

같은날 저녁 8시 인천 파라다이스호텔에서의 만찬이 바로 그것입니다.

 

겨레하나의 2005년 사진첩을 뒤적이다 발견한 당시의 리설주 사진 2장을 공개합니다~^^

 

연환모임 행사장 안에서.

 

 

만찬장에서.

 

함께 만나서 손잡고 이야기하며, 웃으며 함께 춤추었던 그때 그시절이 무척 그립습니다.

하루 속히 남과 북이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겨레하나가 평양에 <우리겨레푸른숲> 양묘장을 준공하고, 단체 방북했을 때, 백두산을 올라 찍은 사진입니다.

 

9월 하순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맑아서 시원하게 천지를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겨레하나보다 하루 먼저 백두산을 올랐던 팀은 눈보라와 안개때문에 천지를 보지 못했대요.

백두산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며 변화무쌍하다고들 하죠.

구름한점 없는 파란 하늘의 백두산 천지,

엄청난 행운을 누렸던 그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요즘엔 방북길이 꽉 막히다보니

다시 중국을 거쳐 백두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우리땅을 통해 백두산을 오를 날이 오겠지요?

저작자 표시
신고

'자료실 > 포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에서  (0) 2012.06.22
금강산에 오른 남쪽의 아빠와 아이  (0) 2012.06.22
평양의 김성희 어린이  (0) 2012.06.22
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