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지 4년이 지났습니다.

고성에서 금강산으로 관광객을 실어나르던 버스는 멈춰섰고,

관광중단으로 인한 기업들의 손실은 9200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보루인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되어야 합니다.

내년 이맘때는 금강산관광중단 5주년이 아니라,

관광재개를 기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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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말,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이 왔을 때

겨레하나에서 금강산관광을 지키자는 취지로 1만 2천 금강산기행사업을 추진했었습니다.

그때, 금강산에 함께 올랐던 아이와 아빠의 다정한 사진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언제 다시 재개될까요?

부디 빨리 그날이 와서 금강산의 장관을 다시보고, 온천도 즐기고,

금강산에서만 맛볼수 있었던 그 노란빛깔 막걸리(이름이 가물가물하네요^^;;)도 시원하게 들이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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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이 중단된지 햇수로 5년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1989년 1월 23일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방북해
북한과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8년 6월,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른바 '소떼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은 뱃길로 현실화되었습니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 첫 출항에 나선 '금강호' 




바닷길로 시작한 금강산 관광은 2003년 9월 육로길로 바뀌게 됩니다.




금강산 관광을 위해서 군사분계선이 열렸고, 비무장지대의 지뢰가 제거되었습니다.
잠수함 기지가 있던 장전항에는 해상호텔이,
북한군 포진지가 있던 자리에는 골프장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장전항의 해상호텔


 


금강산에 조성된 골프장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직전인 2008년 7월 11일까지
금강산을 찾은 남측 관광객의 숫자는 총 195만 6000 여 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여 년 동안 금강산은
남북당국간의 회담장으로, 때로는 남북이산가족들의 상봉장으로, 민간단체들의 통일행사장으로
그야말로 남북경협의 상징을 넘어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금강산에서 열렸던 남북적십자회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남북이산가족상봉




2004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농민대회




금강산 관광이 언제 다시 재개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는
'6.15공동선언'가 '10.4선언'의 존중과 이행이라는 전제 아래
남과 북의 진정성있는 대화가 이루어질때 가능할 것입니다.


하루빨리 남과 북의 대화채널이 열리고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
화해와 평화의 소망을 갖고 금강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다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눈 덮인 겨울의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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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북과 처음 부딪친 문제; 여성 흡연과 여성활동가를 처음 본 북 선수들!


2001년 4월 초 중순 무렵 금강산에서 이루어진 북 민족화해협의회 선생들과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당시 나는 갓 출범한 ‘통일연대’의 사무처장이었고,
남북접촉의 목적은 ‘6.15공동선언 1주년 기념 금강산 민족통일대토론회’ 개최를 위한 실무협의였다.)

지금은 친구처럼 친근한 사이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난생 처음 만나는 북한 사람들,
그것도 민간교류의 방향 문제를 놓고 이루어진 만남인 터라, 사실 적지않게 부담스러운 만남이었다.
북과의 실무협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상문제를 내어 놓기도 힘든,
‘설레임’ 보다는 '새 역사를 열어가는 중요한 만남‘이라는 생각에
마치 시험공부를 전혀 안한 수험생처럼 불안하고 초조한 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했을 뿐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 쭈뼛쭈뼛 했던 것 같다.
그때 여성은 나 혼자였던가? 나중에 대한 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낸 이현숙 선생님이 같이 계셨던가?
북측 사람들은 나를 보며 더욱 안절부절 못하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말을 했다.

'진보를 대표하는 대(?)통일연대 사무처장이 여자라고는 상상도 해보질 않았다'는 둥
'이럴 줄 알았으면 여자선생 한명을 데리고 나올 걸 그랬다'는 둥
아마도 그 어색한 처지에 대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배려의 말들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때, 그 말 덕택에 적지않게 당황했다.


민족의 중요한 문제를 협의하러 나온 실무대표자에게 갑자기 여성 안내원을 붙였어야 한다고?...
서로 직책으로 이야기하면 되었지, 같은 급의 북측 대표가 아닌 여성 안내원이라니 가당키나 할까?...
북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정상적인 업무협의가 불가능 하다는 뜻일까?...
북은 이미 오래전에 여성해방이 완료(?)되었다는데, 북
을 대표하는 민화협 관계자의 입에서 남쪽의 완고한 어르신에게나 들을 수 있는 말이 왜 튀어나올까?...

북측 선생들은 배려를 한 이야기였지만 내게는 마치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들렸고, 갑자기 풀이 죽었다고나 할까?
보자마자 <여성 문제> 같은 이번 실무협의의 의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문제로 따지기도 어려워
속앓이를 하면서도, 아무튼 ‘여자는 여자 안내원이랑 이야기해야 한다’며 안타까워 하는 분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기는 애초에 글렀다는 생각에 맥이 빠졌던 것 같다.



그 뒤 10년간 북측 선생들과 나름 친해진 이후
북의 여성문제를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입씨름을 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북쪽 분들은 남쪽의 여성 활동가들이 성차별적인 문제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도통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북쪽 노래 "여성은 꽃이라네" 를 우리를 배려한다고 들려줄 때마다
남쪽의 여성 활동가들은 질색 팔색을 해도 소용이 없다.
'공화국은 이미 여성들이 해방되었다'만 주장할 뿐
아직도 남쪽에서 여성문제로 투쟁해야 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전투적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는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공감해주려 하지 않는다.

이런류의 논쟁은 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기회를 갖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는 각설하고.
다시 금강산 만남으로 돌아 가보자.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 더 할 말이 없었다.
(함께 간 남자 실무 대표들... 그들은 모두들 나의 상사였고, 선배들이어서,
사실 나는 진보진영을 대표하여 온 실무책임자이긴 했지만 사실 발언권이 그닥 없었다.)
그래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는데...

무심코 처음 담배를 꺼내 들었을 때, 일순 분위기가 싸아 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북측 사람들의 표정은 <당황>을 숨기려는 듯 어색함 그 자체였다.

여성 흡연을 처음 보는 듯!!!

그런 것은 남쪽 영화에 나오는 타락한 여성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이해했던 듯,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 북측 인사들의 그 어색한 표정을 같이 간 선배한 분이 이렇게 표현하였다.
'60년대 말에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처음 김포공항에 나타났을 때 우리 국민들의 충격과도 같은!'

물론 북측 선생들은 곧이어 아주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챙겨주었지만
할머니가 아닌 젊은 여성의 흡연은 거의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우리가 북측 사람들을 생각할 때 자칫 머리에 뿔이 났는지 안 났는지를 궁금해 한다면,
북쪽 분들은 담배피우는 남쪽의 여성 활동가를 보면서,
이것을 어떻게 정서적으로 어떻게 수용해야할지, 체증에 걸린 듯 했다고나 할까?

북쪽 분들은 중요한 협의에 나와
남쪽의 여성 활동가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자신들의 생각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할 뿐!

그러나 나는 그 당시 금강산 협의에서 처음 담배 피는 여성 활동가를 본 그들의 그 놀란 눈망울을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실무협의 사이사이 휴식시간에 북측 선생들은 내게 통일연대 사무처장 맞냐며,
그러면 데모하다가 감옥도 갖다 왔냐며 많은 것을 묻고 궁금해 했다.
그러면서도 '남측 민화협 분들이야, 정부랑 친한 인사이니 우리와 이야기해도 괞찮겠지만,
운동권 출신 통일연대 실무자가 이렇게 북측 인사와 이야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 걱정스러워,
선뜻 다가오기를 주저주저 했다.

우리가 '통일부의 허락을 득하고 온 것이므로 상관없다'고 조금 뻐기면서 이야기해도
남쪽의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상황의 엄중함을 철저히 교육받았는지,
경각심(?)을 버리지 못한 듯 우리 근처로 와 말을 거는 것조차 조심 또 조심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게 시작하였다. 남과 북의 민간 실무대표들의 첫 만남은!.
그 무슨 통일담론이니 6.15공동선언이니 하는 거대 담론에 대해서 열띤 토론들이 있었지만,
사이사이 서로의 차이에 화들짝 놀라고, 
채 이해되지 않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그 것이 <배려>로 느껴지지 않아 또 당황하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코드가 어떤 것인지를 조심스레 찾아나서는 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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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