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가야 할 길

 

 

지난 MB정부 5년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특히 나에게 아프게 다가온 것은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단절이었다. 후보 시절, 그리고 당선인 시절 MB는 전임정권들의 대북정책 성과들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햇볕정책의 유지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MB는 행동과 말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언행일치가 불가능한 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북에게도 잘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MB는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 내버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한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를 이어 노무현 대통령은 늦은 감이 있었지만, 2차정상회담을 통해 10·4선언을 만들었다. 만약 10·4선언의 내용이 그대로 이행되었다면, 연평도 포격, 천안함 사건 등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울러 이번 대선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NLL 분쟁도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이번 대선 과정을 보며 안타까웠던 점은, 통일, 남북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철학이 어느 누구에게서도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두들 빤한 이야기만 했고, 빤한 해법만을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 측이 제시한 플랜들이 신선하기는 했지만, 북의 의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묻지마’ 로드맵이었고, 박근혜 후보 측의 대북정책 역시 빤한 소리였다. MB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단 북이 먼저 고개를 숙이면 그 다음 생각해 보겠다는.

 

한편 이정희 후보의 코리아연방 제안은 매우 타당하고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계의 노골적인 무시와 배제로 그의 제안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도대체 분단된 나라에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이들이 왜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인 통일과 남북화해,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을까.

 

이렇게 비판하면 곧장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각자 나름 심사숙고하고,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해법을 마련했다고.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MB정부 5년의 퇴행을 다시 되돌릴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하지만 국민이 선택해 주지 않았다고.

 

나는 문재인 캠프에서 통일, 외교, 남북관계 정책을 만들고 이끌어나간 이들을 얼추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누구이며, 어떤 분들이라는 점을 안다는 소리다. 모두 존경받을 만한 분들이고, 통일과 남북 화해를 위해 애써 오신 분들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울러 모두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런데 선거가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왜 그랬을까? 이제 생각해보니, 그것은 너무나 많은 사공, 그리고 독단적으로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사공, 또한 5년 동안 맺힌 한을 풀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사공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뭐, 지난 이야기 다시 꺼내봐야 가슴만 아프지만, 아무튼 이번 과정을 통해 민주당이나 또한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던 분들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한풀이나 복수, 독단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나 정치인, 학자들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도 또 패배할 것이다. 분명 확실하다.

 

김연철 박사는 대학원 시절, 교재로 사용했던 논문으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그 후 기자 생활을 하며 인터뷰를 몇 번 했고, 토론회나 행사 때 만나면 인사를 드리는 정도였다. 참여정부 시절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써 많은 활동을 한 분이다.

 

이 책은 일생을 남북의 통일과 평화, 화해를 위해 연구하고, 실무적으로 참여하고, 이제 다시 코리아연구원장으로 통일담론의 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가 보여주는 남북의 분단사다. 과거 냉전 시기 남과 북이 주고받았던 저주와 증오, 대화와 소통의 역사들이 담겨져 있다.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고, 눈물 나게 슬픈 일도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도 있었고, 남북이 하나가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이 모두가 우리가 만들어온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냉전의 추억을 넘어 평화의 미래를 그려가자고 제안한다. 많은 이들이 분단을 고민하고, 증오대신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말한다.

 

분단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개인의 영달을 이어가는 사람들. 증오를 통해 생명력을 이어가는 언론들, 기억의 망각을 통해 미래를 어둡게 하는 세력들. 저주의 이분법으로 여전히 대한민국을 1953년에 멈추게 하는 사람들. 이들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남북의 평화와 화해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기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 했으며, 어떻게 해야 남과 북이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더 많은 약속을 할 수 있는지 매일 같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분단이라는 기형적 상황을 마치 당연한 현실처럼,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사회. 더 이상 이런 정신적 변태의 사회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허리 잘린 불구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 비정상을 정상으로 간주한다. 비극이다.

 

책은 그동안 남과 북의 만남을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통일학이나 북한학, 남북관계 및 동북아 정치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쏠쏠한 참고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막연히 북한이 싫은 사람, 혹은 막연히 좋은 사람 모두가 읽어도 분명 또 다른 ‘깨달음’을 전해 줄 책이다.

 

알아야 떠들 수 있다. 알아야 비판할 수 있고,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잘못알고 떠드는 인간, 모르고 떠드는 인간, 일부러 알려 하지도 않고 떠드는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떠드는 인간들이 부와 명예를 얻었다. 이런 병신 같은 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면, 이게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차근차근 색연필로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몰랐던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쉽고도 재미있게 남북의 대결과 대화의 역사를 소개했다. 흔치 않은 소중한 책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다. 원칙과 균형에 바탕을 둔 ‘신뢰 프로세스’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 원칙과 균형이 남과 북 모두에게 해당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무모함은 이제 MB정권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반드시 이산가족상봉을 다시 추진해서 오늘도 고향을 그리다 돌아가시는 실향민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이산가족상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MB정부는 정부의 자격이 없는 집단이었다.

 

뉴라이트도 좋고 쌍라이트도 좋다. 이제 새롭게 권력을 잡을 그대들이 행여 부정하게 권력을 차지하고 언론을 더럽히며 민족 간의 증오를 부추기는 추잡한 죄악을 저질러도 난 그것을 막을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다. 하지만 단 하나,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산가족상봉이다. 금강산을 다시 여는 것이다. 일단 그것만 해도 그대들은 MB보다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뭐 비교 상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책의 제목처럼 지난 MB정부 5년은 냉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새로이 평화를 만들어가야 했던 소중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것을 우린 몽땅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거꾸로 간 5년이었다.

 

이제 다시 5년이 시작된다.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 모두가 리더십 교체를 이룬 지금,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오고 있다. 자,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해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50대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땅값, 집값’이 안정화될 수 있을까.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지금의 세계적 경제위기는 신도 풀 수 없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오직 남과 북의 협력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경제전문가이신 MB는 그걸 어설픈 이념과 바꿔, 결국 날려버렸다. 이제 ‘민생 대통령’, ‘15년 동안’ 대통령을 준비했다는 박근혜 당선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당선인의 아버지가 7· 4공동성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기억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7·4공동성명은 커다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박 당선인도 부디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그를 반대한 이 중 하나로써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것이다. 긴장하시라. 5년.

 

부디 박 당선인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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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살펴보았고, 탐욕과 공포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해가 될 수 있는 결과, 다시 말해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서로 협력할 때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는 사슴사냥게임의 형태로 게임을 변화시키면 된다고 보았다.

 

국제관계를 논할 때 자주 이용되는 게임이론이 하나 더 있는데 치킨게임이다. 치킨은 겁쟁이를 뜻하는데, 서로 누가 더 용감한지 내기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서로의 용기를 겨루고 싶었던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각각 자동차를 몰아서 서로를 향해 돌진하기로 했다. 만약 핸들을 돌려서 피하면 겁쟁이가 되고, 그대로 돌진하면 용감한 자로 인정받는다. 물론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돌진한 사람은 용감한 자가 아니라 무식한 자이다.

 

아무튼 여기 무식한데 용감한 줄 아는 A와 B가 치킨게임에 참여했다.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협력(C)이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것이 배반(D)이다. 보수는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달리는 경우, 결국 둘 다 죽는 경우가 (1,1)이다.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는 경우는 둘 다 목숨은 건졌지만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3,3)이다. A가 핸들을 돌리고, B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2,4), B가 핸들을 돌리고 A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4,2)이다.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가 되었으니 2의 보수를 얻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게임에서 이겨 용감한 자로 인정받았으니 4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나 사슴사냥게임을 볼 때처럼 균형을 찾아보자. B가 협력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3을 얻고, 배반하면 4를 얻는다. 따라서 A는 배반하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B가 배반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2를 얻고, 배반하면 1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협력하고 핸들을 돌린다. 남이 협력하면 나는 배반하고, 남이 배반하면 나는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B가 핸들을 돌릴 것 같으면 A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해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B가 너무 무식한 놈이어서 절대 핸들을 돌릴 것 같지 않다면 A는 핸들을 돌려서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다.

 

균형은 (4,2)와 (2,4)에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둘 중 어떤 놈이 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식한 인간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치킨게임에서는 미친놈이 이긴다고 말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로를 향해 차를 모는 경우라면 나는 핸들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핸들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자신의 손을 묶어서, 나는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핵무기 경쟁을 할 당시 미국의 닉슨(Ric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내 전략은 미친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핵무기가 가져올 엄청난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리는 것은 치킨게임과 같다. 그리고 닉슨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인식하면, 다시 말해 언제라도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도 치킨게임으로 많이 설명된다. 여기서 미친놈은 북한으로 상정된다. 남한 정부도 별로 나을 바는 없지만, 남한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쉽게 미친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북한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남한 정부는? 남한 정부는 미친놈보다는 바보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협력할 것이고, 이 때 너희도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을 주는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의 이득을 제시하여 협력할 때 북한이 얻는 이득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혹은 적어도 협력할 때 이득이 많아진다고 북한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상호주의 전략은 이를 다시 치킨게임으로 되돌려 놓았다. 상호주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협력과 응징이다. 문제는 협력보다는 응징에 방점이 찍혀서 북한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전략만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니 나도 응징을 하겠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방도 다시 나를 응징한다.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협력할 때보다 배반할 때 이득이 더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치킨게임이 되는 것이다.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게임을 이렇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보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꿀 수 있는 대통령이 당선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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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NLL 공세는 정말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 NLL의 실체를 왜곡하고, 공개할 수도 없고 공개해서도 안 되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문제 삼는 것 때문만이 아니다. 얄밉다고 말하는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토선 포기 발언’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뭐랄까, 너무도 말초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중도 유권자를 결집하고 흔드는 효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성과 합리성의 바깥에서 오감을 주무르는 관능미를 인정할 지경이다.

 

새누리당이 NLL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이유는 이 이상으로 섹시한 캐치프레이즈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 이 구태의연한 정치. 구태의연함은 구태의연함 나름의 생존력이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결과물은 이성보다는 감성 수준에서 도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성이 충만한 사람들은 괴롭다. 민주주의가 모순덩어리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 민주주의! 이런... 글이 점점 감성으로 충만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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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대선후보 주요 3인의 대북정책을 비교했다. 다른 정책들은 모르겠지만 대북정책에서만큼은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햇볕정책의 계승자’임을 자임하며 가진 것이 많음을 과시하듯 정치-경제 양면에서 과감한 공약을 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정치적 접근을 최소화하고 ‘혁신경제와 평화의 선순환’이란 논리로 북방경제론에 방점을 찍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기존의 남북합의를 존중하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축하겠다고는 했지만 특유의 공허한 원칙론의 반복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솔직히 야권의 두 후보 공약을 꼼꼼히 살피며 ‘이렇게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떨치기 힘들었다. 문재인 후보의 남북경제연합과 한반도 평화구상, 그대로 실현된다면 이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북방경제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하나하나의 공약들은 한반도의 냉전질서를 뒤흔드는 변화를 동반하기에 충분하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라는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야권의 대북정책은 대륙을 달리는 꿈에 부푼 기관차처럼 후끈후끈 들썩들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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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역을 치르듯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음을 대선 전에 이미 실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룬 뒤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이렇게 일찍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게 될 줄이야. 원칙적으로는 질타하고 싶지만 과거에도 NLL을 고수했으며 앞으로도 고수하겠다고 말하는 문재인 후보의 처지도 이해가 된다. NLL이 뭐가 대수냐고 대응했다가는(문재인 후보의 공약으로 볼 때 NLL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 역풍은 예측불가일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토선 포기’라는 것은 다분히 말초적이라서 어딘가 인간 근원의 공포를 자극하는 면이 있다. 특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그 공포는 더욱 예리하게 정치적 판단을 파고든다.

 

그래서 NLL 논란을 보며 조금 생각이 복잡해졌다. 정권교체를 이룬 뒤 새 정부는 남북관계의 속도를 어떻게 잡는 게 바람직할까.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성적 판단으로 충만한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핵 등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게 바람직할까. 과감한 정책 이행으로 국민 합의를 주도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돌다리 두들기듯 하나하나 국민 합의를 거쳐 나아가는 게 좋을까. 귀로 듣기에는 후자가 무난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전자를 주문하자니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간만에 다시 띠운 통일호가 침몰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정권이 바뀌고 들떠 흥분하지 않고 대북정책은 항상 난제임을 인정하고 차분히 숙고하며 매 순간 올바른 결정을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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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하기 전, 남과 북 정권은 어떤 위기 상황 속에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남과 북이 각각 자신이 맞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남북기본합의서를 이용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전술적 행동의 개시, 남북 대화

 

당시 남한 정권은 <남북기본합의서>가 남측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1992년 통일원 자료에는 “1988년 12월 18일 강영훈 총리가 북한 정무원 총리 연형묵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였고, 이에 대해 1989년 1월 16일 연형묵 총리가 「남북고위 정치․군사회담」개최를 수정․제의하면서, 이를 위한 예비회담 개최를 수락함에 따라 성립되었다”라고 적시되어 있다.[각주:1] 강영훈 총리의 서신 제안 이전에도 1988년 6월 3일 이현재 국무총리 명의로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제의했었고,[각주:2]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7․7 대통령 특별선언>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해 사전 분위기 조성에 나선 상태였다. 남북대화를 선제적으로 제의했다는 점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정당성에서 우위를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실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가동되어 왔던 남북 간의 비밀 대화 라인을 통해 기본합의서 논의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한 정권은 이 부분을 강조한다.

 

남북 회담을 제의함에 있어 남한 정부가 또한 중요하게 방점을 찍었던 부분은 남북 회담권의 정부 독점이었다. 즉 “대북제의 및 접촉 창구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로 일원화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각주:3] 정부가 남북 회담의 창구를 독점한다는 것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고려한다면 이는 국내적으로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남한에서는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198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독자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회에 남북학생회담을 제의했고, 전대협 대표 임수경과 전민련 대표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 통일운동 단체들의 약진 등은 남한 정권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북 회담을 제안하면서 협상 통로의 정부 독점을 강조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내적으로 정권에 도전적인 세력을 공식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정부가 나서니 민간은 가만히 있으라’는 명제를 근거로, 정권에 도전적인 세력에 압력을 가하는 공안정국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민정당과 합당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키는 이른바 3당합당을 달성하며, 당시 남한 정권에 가장 문제였던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한다. 이로써 남한의 집권 세력은 5공 중간평가에 대한 압력과 군사정권의 후신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데 유리한 조건을 형성한다.

 

‘맞잡은 손, 분단의 벽을 넘다!’ 1989년 8월15일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가 손을 맞잡고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오고 있다.(사진출처.한겨레)

 

또한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남북 회담의 성사라는 동인이 동반된 북방외교는 큰 성과를 내며 남한 정권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돌파구 역할을 한다.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급속한 수교를 진행시켜나가고, 1991년 4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만난 제주 정상회담에서는 고르바초프로부터 남한의 UN가입 지지의사를 얻어내고, 1992년 3월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사찰을 용인하는 러시아의 협력 의사를 확인하는 등 북방외교의 결과물은 남한 정부가 단기간에 이뤄낸 큰 외교적 성과였다. 결과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국면은 당시 남한 정권으로 하여금 위기 극복의 돌파구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남측의 제의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국면으로 진입한다.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협상전략을 구사하며 이른바 밀고 당기기를 진행하지만 어쨌건 꾸준히 회담을 지속시킨다.[각주:4] 그런데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국면으로 진입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정치․군사 고위급회담과 더불어 민간급 교류 역시 중요하게 주장해왔다.[각주:5] 북한에게 있어 통일전선전술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대남 사업기조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남한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및 각계각층 민중들을 대상으로 제휴하는 하층 통일전선전술이 중심이었고,[각주:6] 이 전술은 남과 북이 대화하는 자리에는 북한이 늘 가지고 등장하는 논의의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남북고위급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3차 예비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입장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9년 10월 12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3차 예비회담에서 북측은 방북 건으로 수감되어 있었던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임수경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남측은 허가 없는 방북은 남한 실정법 위반이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남한 내부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각주:7] 이를 두고 매우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석방’이라는 북측의 기본 입장에 대한 ‘불가’라는 남측의 명백한 거부라는 논의의 구도에서 본다면, 3차 예비회담이 결렬되는 것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3차 예비회담은 다음 예비회담의 날짜를 정하는 등 성과를 보이며 “좋은 분위기”에서 마무리된다.[각주:8]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전략인 통일전선전술보다 불가침 조약 체결, 적어도 회담 기간만큼은 군사적 위협을 줄일 수 있는 ‘회담의 지속’을 바랐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은 군사 분야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1990년 1월 30일에 있었던 6차 예비회담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 중지에 대해서 먼저 토의하자고 제안하고, 이 자리에서 대전차용 방벽 철거까지 주장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회담이 결렬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회담 날짜를 잠정적으로 합의하는 데에서 그친다.[각주:9] 또한 1990년 2월 8일 팀 스피리트 훈련을 이유로 2월 22일에 개최하기로 한 11차 남북국회회담 준비회담 개최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불가침협정에 대한 내용을 <남북기본합의서>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된다. 비록 미국과의 불가침협정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1989년 미국 정부에 제출되고 1990년 공식 발표된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East Asia Security Initiative)’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안보 수요에 맞춰 미군 지상군과 공군 병력 일부를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기로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는 주한미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계획대로 주한미군의 철수가 진행된다면 북한으로서는 군사적 위협을 덜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남북기본합의서>와 거의 동시에 진행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및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 계획까지를 포함해서 고려한다면 북한이 느끼는 군사적 위협은 꽤 많이 감소되었을 것이고, 이는 곧 경제 분야로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기회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협상의 성과물 자체, 즉 <남북기본합의서>에 자신의 의도인 군사적 안보 위협 축소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따라서 북한의 협상 전략이 시간 벌기와 측면 돌파의 차원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제반의 상황이나, 이후 <남북기본합의서>보다 더 적극적으로 군사적 안보 위협을 보장받을 수 있는 북미 직접 대화 국면이 열리자 바로 회담의 테이블을 바꾼 것은 북한의 전략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남북기본합의서? 신사협정일 뿐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남과 북의 집권 세력이 고조된 위기 국면을 측면으로 우회해서 돌파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면, 합의서 체결 이후 결과물을 바라보는 남과 북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합의서의 이행이 어려워지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남한 집권 세력에게 있어 <남북기본합의서>는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한 합의가 아닌 국내 정치적 안정을 위한 합의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합의서 체결 이후 남한이 내놓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태도와 발언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통해 남한의 집권 세력은 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외교적 업적의 확보라는 1차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를 현실화시키는 국면에서는 태도가 변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법적 성격의 문제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한과 북한 상호 간에 맺은 합의로 이것이 법적인 구속력을 지니려면 조약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한은 자국법의 절차에 따라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으로 비준하고 승인하는 공식적인 작업을 거쳤지만, 남한에서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남한 정부는 최초 <남북기본합의서>를 법적 효력이 없는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이라고 규정했다가, 이후 조약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각주:10] 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로 더욱 힘을 얻게 된다.

 

남북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각기 정치적 책임을 지고 상호 간에 그 성의 있는 이행을 약속한 것이기는 하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국가 간의 조약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대법원 1999.7.23)[각주:11]

 

남북합의서는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 간 합의로서 남북 당국의 성의 있는 이행을 상호 약속하는 일종의 공동성명 또는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가짐에 불과하다. (헌재 2000.7.20)[각주:12]

 

우리나라의 법제상 사법부의 판례는 법원(法源)이 될 수 없으므로 법적 판단에 있어 판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정치적인 고려나 판단에서 벗어나 법리적인 측면에서만 검토되지 않는다는 점과, 그로 인해 대법원과 헌재의 판례가 가지는 정치적 권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체결 과정에서 남한 집권 세력의 위기 극복이라는 목표를 달성시켜주었지만, 정작 남북 관계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잃었다. 곧이어 발생한 북미 간 핵대결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남북 관계를 전개시켰고, 그 결과 북미 제네바 합의라는 다른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남한에서 박정희의 유신 헌법 개정에 도움을 준 이후에는 폐기된 것과 유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10월 21일 체결된 북미 제네바합의

 

 

남북기본합의서?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맺기 위한 한 계단일 뿐이다

 

북한도 상황은 비슷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핵심 요지 가운데 하나는 남북 관계에 있어 당사자 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전통적인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 기조였던 <7․4남북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나지만, 북한은 남북 관계에서 외세의 개입, 특히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적어도 체제 경쟁이 진행된 1970년대만큼은 외세 배격을 중심에 놓는다. 하지만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이에 따른 경색 국면이 펼쳐지자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에 기반한 해결보다는 북미 간 협상으로 선회한다.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국면에서 북한은 꾸준히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주장을 강조했으며, 이는 남한을 통해 미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려는 전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남북기본합의서> 시스템을 가동해보기도 전에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협상에 들어간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공식화시키는 작업을 구체화하기는 하였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이를 실천할 의지가 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역시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당면한 정권의 위기 극복 우회 수단으로 여겼다는 증거로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쓸려고 만든 문서인가, 아니면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던 문서인가

 

남북 관계를 일종의 국제 관계로 파악한다면, 남한과 북한이 갈등 국면에서 벌이는 체제 경쟁과 화해 국면에서 벌이는 협상은 민족적 유대감이나 도덕적 규범의 잣대로만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오히려 남북 관계를 국제 관계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론적인 측면에서 좀더 쉽게 설명되는 부분이 생겨난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둘러싼 남한과 북한의 행동은 전술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각자 집권 세력이 당면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 시간을 벌거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술적인 측면 돌파의 성격이 강했다. 남한은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내 정치에서 획득하지 못했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견제하고, 가시적인 치적을 쌓아 정권 재창출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북한의 경우 증가된 안보 위협에 맞서 시간을 확보하며 현실적인 이득을 챙기기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문제는 이들의 현실적인 목표가 달성되자 곧바로 다른 종류의 현실적인 목표로 다시 이동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남북기본합의서>라는 국면을 민족적인 관점, 통일의 관점에서 남과 북의 집권 세력이 접근했다면 이런 결과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 1) 통일원, 「남북기본합의서」해설(서울: 통일원 통일정책실, 1992), 8쪽. [본문으로]
  2. 2) 양무진, 「북한의 대남협상전략 유형」(경남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1), 108쪽. [본문으로]
  3. 3) 배광복, 「남북관계의 경로의존과 구성-7․4 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까지 남북회담분석」(고려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8), 223쪽. [본문으로]
  4. 4) 양무진은 이 시기의 북한이 대남협상전략 가운데 ‘절충형 타결’ 유형이 6건으로 가장 많았고, 북한이 일방 양보한 것 1건, 대안제시형 타결 1건, 의견일치형 타결 3건이었다고 분석했다. 결렬의 경우는 남측의 일방적 거부가 3건, 북측의 일방적 거부가 4건, 전제조건형 결렬이 4건이 있었지만 ‘완만한 합의 추구’ 유형에 가깝다고 정리하고 있다. 양무진, 앞의 논문, 143~145쪽. [본문으로]
  5. 5) “가까운 시일안에 평양에서 북과 남의 각 당, 각 파, 각계각층의 의사를 대표할수 있는 지도급인사들로 북남정치협상회의를 가질것을 정중히 제의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남조선의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총재들과 김수환추기경, 문익환목사, 백기완선생을 평양에 초청하는바입니다.” 김일성, “신년사(발취) 1989년 1월 1일”, 「련방제조국통일방안에 대하여」(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365쪽. [본문으로]
  6. 6) 따라서 제 사회단체로 구성되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나 대학생, 청년단체들로 구성되는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은 통일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며, 통일전선 차원에서 추진되는 범민족대회와 같은 사업들 역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제성호, 「남북한 관계론」(파주: 집문당, 2010), 121쪽. [본문으로]
  7. 7) 양무진, 앞의 논문, 115쪽. [본문으로]
  8. 8) 양무진, 위의 논문, 115쪽. [본문으로]
  9. 9) 양무진, 위의 논문, 117~118쪽. [본문으로]
  10. 10) 도회근, 「남북한관계와 헌법」(울산: 울산대학교출판부, 2009), 116쪽 [본문으로]
  11. 11) 이장희․유하영․문규석, 「남북 합의 문서의 법적 쟁점과 정책과제」(서울: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2007), 124쪽. [본문으로]
  12. 12) 이장희․유하영․문규석, 위의 책, 12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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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9일, 오늘은 566번째 한글날입니다.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 가장 아름다운 문자로 알려진대로

2차례 열린 1차, 2차 세계문자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수상하였습니다.

 

최근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제정되는냐로 관심이 높습니다.

위대한 글자이니만큼 공휴일 제정뿐아니라,

한글을 기리고 아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도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한글을 반포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1월 15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념일이 조금 다르면 어떻습니까?

지구상에 유일하게 우리과 함께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 통일도 함께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남북관계 악화로 60% 진행과정에서 3년째 중단된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도 빠른시일안에 재개되어

갈라져 서로 달라진 한글도 하나의 한글이 되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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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에 서명한 후 악수를 하는 모습입니다.

 

이 선언대로만 남북관계가 발전되어왔다면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의 평화가 우리에게 찾아왔을텐데요...

 

베이징올림픽에는 남북응원단이 서해선 열차를 타고 베이징에 가 공동응원을 했을테고,

서해에선 남북의 어민이 함께 고기잡이를 하고, 서울에서 백두산까지 직항로로 여행도 가고,

남과 북의 교류협력사업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졌겠죠.

 

안타깝게도 지금 서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이 흐르고 있고,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더니,

평화로 나아가자는 남북간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 쳐지고

대결과 긴장만 갈수록 더해집니다.

 

이제 채 100일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는

남북의 갈등을 해소시킬수 있는 사람, 평화를 앞당길 수 있는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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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포럼’이란 단체가 있다. 꽤 비중 있는 인사와 원로들이 모인 곳이다. 월례토론회에 가면 임동원, 정세현,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과 백낙청 교수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 올해 초 그들을 한꺼번에 가까이서 봤을 때 약간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위에 거론한 인사들 중에 솔직히 가장 말씀을 유창하게 한다고 인상을 주는 분은 이종석 전 장관이다. 그게 대체적인 평가인지 이종석 전 장관이 월례토론회에서 사회나 진행을 맡는다. 이번 달에는 그의 논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논문은 ‘북중 경제협력’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됐다. 9월 초에 세종연구소에서 발간했다. 제목은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중국 관계의 변화와 함의>이다. 직접 읽고 싶은 분들은 한반도평화포럼 http://www.koreapeace.co.kr/ 로 들어가서 [한반도의 아침 제236호]를 클릭하시면 된다.

 

정말 재밌다.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근 몇 년간 북한과 중국 사이에 어떤 일이 오갔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한반도 북쪽의 대륙 상황이 모호해서 이런저런 주의주장에 휘둘려왔다고 스스로 판단하시는 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재밌는 논문’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

 

논문의 요지는 이렇다. 2009년 북의 2차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는 달라졌다. ‘전략적 협력관계’인 점은 변함이 없으나 그 성격은 핵실험 전후가 다르다. 핵실험 전에는 ‘실용적 성격’이 컸지만 핵실험 후에는 ‘동맹적 성격’이 커졌다. 중국은 동맹의 입장에서 북한을 편들기로 결정한다. 중국은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결의안 1874호 통과에 동참해 놓고, 돌변한 태도로 북한을 편들며 결의안을 무력화시켰다.

 

 

논문은 중국이 왜 북한의 동맹으로 복귀했는지, 북의 《핵 포기》가 아닌 북의 《체제 안정》을 중시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거기에는 자신들과 같은 공산당 통치의 북한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본질적인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 중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 미국의 대중국 압박과 한미일 동맹에 대한 반발 등이 작용을 한다.

 

북한이 ‘중국 의존’을 선택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 남한을 포함한 서방과의 협력에 대한 심각한 회의감, 경제성장의 내적 요구가 그것이다. 대국에 의존하다가 정치적 예속을 초래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북한이지만 정권의 안정적 계승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측면도 없지 않았을 듯하다.

 

논문의 후반부는 북한과 중국의 고위급 접촉을 다룬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인데 출발점은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평양 방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3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북중 간의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 합의는 크게 세 가지로 1)고위급 교류 유지 2)호혜적 경제협력 확대 3)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로 알려진다.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야기이다. 자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는 북의 지도자, 그는 전에 없이 자주 중국을 찾으며 자신의 아들이 계승할 정권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중국의 옛 동지들과 지도부를 만나 혈맹의 역사를 언급하며 양국이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리고 그의 노력은 분명한 성공을 거둔 듯하다. 그의 사후 중국 지도부는 곧바로 김정은 체제를 확고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하는 등 최상의 예를 갖췄다. 2009년부터 이어져온 북중 간의 교류가 정치적 이해관계의 일치를 넘어 벗과 벗 사이의 친밀함으로 발전된 모습이다.

 

남북관계는 최악인데 북중은 밀착하니 불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름의 조건에서 생존을 위해 길을 찾는 북방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게 나쁘지 않다. 한미일 관계 일변도에서 지난 5년 동안 보수진영만 역동적으로 살며 호기를 누렸다. 앞으로는 남북중 관계에서 그동안 소외 받았던 계층들이 역동적으로 살며 호기를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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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청춘남녀의 결혼이 가능할까?

2007년도 가을 어느 날, 평양 양각도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부회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남북 중매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정식 제안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였지만, 한번 생각해봄직한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발단은 민화협 여성 안내원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고려대학교 교수님 한 분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민화협 부회장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북측 민화협과 남측 겨레하나가 결혼 중매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만일 결혼이 성사되어 평양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평양에 아파트를 선물로 준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북한 민화협의 부회장이라면 실제 남북화해협력사업을 총괄하는 막강한 영항력을 갖는 분인데

그런 부회장님의 말씀이 그저 실없는 농담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귀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워 “정말이요? 진짜요?” 하며 당장 합의서를 쓰자고 했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던 민화협 안내원들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부회장님! 그건 안됩니다. 남북관계가 아직 거기까지 발전하지 못했는데 결혼중매라니요?

통일이 되면 그때 가서 하시지요”하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안내원들은 ‘존경하는 부회장님이 왜 저런 무리한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나에게도 연신 눈짓과 고갯짓으로 불가능하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내원들이 상급자의 말에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처음보는 장면이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때 부회장님께서 안내원들을 만류하시며 꺼낸 말씀은 더욱 뜻밖이었다.

“이 사람들아! 통일이 된 다음에야 겨레하나와 우리 민화협이 결혼중매사업을 뭣하러 하겠나?

그때 가면야 중매사업 없이도 실제로 결혼하는 일들이 많지 않겠나?

지금 우리가 결혼 중매사업을 하자는 것은 남북화해협력을 앞당기자는 뜻에서 하자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은 것이지 않겠나?

어떤가! 총장선생, 실제 우리 이 사업을 한번 해보자고!”

 

물론 이 모든 내용은 당장은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남북의 결혼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중매 운운 하다가 자칫 견우직녀를 만들 셈인가?

 

그런데 나는 이 사업이 당장 실현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보다도,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한 부회장님의 발상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북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니!

그것도 젊은 사람이 아닌 민화협의 최고 높으신 분이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소신이 더욱 강해졌다.

 

무슨 소신이냐고?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남북민간교류사업을 하는 이유와 방안에 대한 것인데

‘남북민간교류에 왕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은 인도지원을 통해 민간교류를 하고 있지만 이과정이 유일한 정석은 아니다.

특히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재개되면 인도지원보다 더 다양한 교류아이템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며

기상천외한 다양한 생각 속에서 적절한 아이템들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 발전, 혹은 통일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이며

창조적이고 개성있는 교류 사업제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남북민간교류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겨레하나 역시 지난 10년간

남과 북을 잇는 학술토론회, 영상교류, 풍물공연, 남북교수학생 한마당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오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실적 흐름을 배우고 성장해왔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분단 60년 만에 만나

서로 상대의 특성과 정서를 잘 모르니 좌충우돌을 겪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남북민간교류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민간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남북민간교류라고 볼 수 있다.

남북민간교류 영역에 제도화된 것은 실상 아무것도 없으며,

민간의 열정과 추진력이야말로 남북관계를 앞당기는 중요한 원천일 것 같다.

 

남과 북에 절절히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생겨나고 그들을 맺어주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면,

특별법 제정부터 시작하여 일을 추진하다보면

어쩌면 정말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첫발을 어떻게 떼나?

그 무슨 정략결혼을 위한 중매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청춘남녀 개별이 데이트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갈수 있을까?

아, 정말 이런 생각은 즐거운 공상이다.

그러나 단지 공상만이 아닌 정말 실현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남북교류협력을 무어냐고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말을 말한다.

“그거야 남쪽에서 구체적 이해를 놓고 남북협력을 절절히 원하는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자기의 소원을 푸는 것이지요.

아니면 분단상황이 너무 갑갑하여 남북관계의 발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다양한 꿈을 꾸는 과정이 아닐까요?

저는 두번째 경우에 속한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교류협력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민간교류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머지않아 열리게 될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부터 꿈을 꾸고 실력을 키워봄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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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오늘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지 4년이 지났습니다.

고성에서 금강산으로 관광객을 실어나르던 버스는 멈춰섰고,

관광중단으로 인한 기업들의 손실은 9200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보루인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되어야 합니다.

내년 이맘때는 금강산관광중단 5주년이 아니라,

관광재개를 기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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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6.15 유감

시대공감 2012.06.19 14:30

분단 6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몇 번 되지는 않지만, 그나마도 다행스런 남북의 합의와 약속이 있었습니다. 분단 이래 첫 남북합의였던 7.4 남북공동선언과 91년 남북합의서가 그 대표격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중하고도 역사적인 합의들은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어느덧 12년이 지났습니다. 6.15공동선언이 각별히 애틋하고 소중한 이유는 분단사상 처음 남북 정상이 만나 이룬 합의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 약속이 7년 여간 꾸준히 지켜져 왔다는데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수십 수백차례의 장관급회담, 차관급회담...... 남과 북 종교인, 문화예술인, 노동자, 농민, 여성의 만남들. 그리고 남북 철도운행 재개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습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 어려움도 많았고,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가야 할 정치·군사·외교 문제들이 길을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이기고 중단없이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였냐 싶게, 현재의 남북관계는 최악의 위기상황입니다. 북한은 ‘사죄냐, 성전이냐’의 최후 선택을 이야기하고 있고, 남한은 ‘수십 분내 응징’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연평도 사건과 같은 충돌이 언제 다시 일어날 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황입니다.

 

이에 더해 MB정부는 우리안의 ‘종북’이 더 문제라며 색깔론까지 꺼내들었습니다. 독재시대에나 통용될 법한 빨갱이 논리를 휘두르며 온 사회를 자기검열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습니다.

 

8만여 이산가족의 아픔은 물론이거니와, 개성공단에서 금강산에서 좌절된 남북경협의 꿈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북의 치킨게임이 행여 작은 전쟁의 불씨라도 일으켜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면...... 이 모든 역사적인 책임을 과연 누가 질수 있을 지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6월 15일 오전, 남쪽에서는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12주년 기념식 및 '색깔론' 극복과 남북평화를 위한 각계 시국회의를 열었다. (사진출처. 뉴시스)

 

금강산에서 함께 기념하자던 약속도 하릴없이 6.15 12주년은 남북이 따로 기념했습니다. 이남에서는 전재위기 해소와 한반도 평화, 남북의 화해를 바라는 시민사회와 정치권, 종교인들이 한 마음, 한 뜻을 모았습니다. ‘위기 타개를 위한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하고, 국회차원의 ‘5.24조치 해제결의안’과 금강산 관광재개를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마련을 결의했습니다. 시민사회는 6.15공동선언실천 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민간차원의 노력을 다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남북이 비록 한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공동선언을 기리고 살려내자는 마음만은 같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마음과 마음들이 6.15공동선언을 반드시, 다시 살려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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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