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변화

 

<기획연재> 2017 대선, 한반도 평화를 말한다 ③

 

강호제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ㅣ 통일뉴스 2017.04.18

 

연재 순서

분단과 혐북: 또 하나의 적폐 – 변학문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혐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⓷ 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변화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⓸ 북미 핵과 미사일 공방, 어디까지 왔는가 – 장창준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⓹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언 - 평화연구센터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현실의 북한일까, 아니면 가상의 북한일까? 우리는 ‘오늘날의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북한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위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수준이다. 분단 체제로 인한 적대적 인식과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혐북' 인식 때문에 북한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정보로 업데이트된 것들도 대부분 적대적 측면만 강조하는 것이고 평화, 공존을 위한 측면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핵무기 등을 만들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평화, 공존을 위해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모습은 낯선 모습으로 평가되고, 무시되기 마련이다.(북한의 평화, 공존을 위한 제안을 포함하여 동북아 전체의 평화 정착을 위한 제언은 이 연재의 마지막 글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언”에서 다룰 예정이다.) 무기와 전쟁 준비에 전력 질주하는 모습은 여러 번 강조되었지만 평양, 신의주 등 도시 재생 사업에 집중하며 나라 전체의 외관을 급격히 바꾸고 있는 최근의 모습은 별로 강조되지 않는다. SLBM 등 첨단 무기의 등장을 전쟁 미치광이 이미지로 포장하기만 할 뿐, 그 속에 숨은 첨단 기술의 근원, 혹은 원천 기술의 첨단화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다.

이런 외눈박이 현상은 대북 적대적 정책을 펼쳤던 지난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야권에서도 북한을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 능동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주체로 바라보지 못하였다. 특히 남북교류협력을 강조하는 정책에서조차 ‘풍부한 지하자원, 값싼 노동력’ 외에 북한의 가치를 인정하는 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풍부한 지하자원, 값싼 노동력과 함께 철도, 가스관, 석유 수송관 연결 등의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남북 교류협력을 강조하는 주장은 벌써 15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는 21세기에 15년 전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할지도 의문이고, 이는 인식 수준이 발전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쨌든 북한은, 우리의 인식 여부와는 별개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정일 시기부터 준비한 전략이 김정은 시기 들어서면서 멈추거나 후퇴하지 않고 더욱 급진적인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북한에서는 새 세기 산업혁명?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이 많이 거론된다. 사람마다 정의가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IT기술의 발달이 물리학, 생물학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하나로 통합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북한에서도 이런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김정일 시기인 1990년대 말부터 정보산업 혁명과 지식경제 시대라는 개념으로 정리되던 것이 2011년경부터 ‘새 세기 산업혁명’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단순한 부문별 산업발전 전략을 넘어, 노동의 종류 및 가치 생산 방식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사회주의 경제의 핵심인 계획 경제의 변화 등 사회 전반적 변화에 대해 연구한 결과가 새 세기 산업혁명이란 이름으로 정리되었던 것이다. 김정은 시기까지 이어진 이러한 변화들은 대부분 김정일 시기에 준비하던 새 세기 산업혁명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낙후했던 것은 1990년대 북한이 처한 국내외 모든 상황이 안 좋아서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군사력 강화에 상당히 많은 경제 역량이 집중되었던 탓에 민수 부분의 발달이 지연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민수 지체 현상은 2009년경부터 바뀌기 시작하였다. 2009년 8월 11일 ‘첨단을 돌파하라'라는 로동신문 정론에서는 ‘CNC기술’을 그 변화의 앞부분에 내세웠다. IT기술과 기계기술이 결합된 CNC기술은 국방부문에서 확보된 다음 민수로 이전(스핀오프, spin-off)되는 핵심 기술이었다.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친 핵시험과 2009년 은하 2호 시험발사 결과에 고무된 북한은 2009년부터 CNC기술을 앞세워 스핀오프 전략을 본격 실행시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앞선 군수 공업 부문의 기술이 민수 부문으로 이전되면서 북한의 산업 현장은 급속히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하였다. 생산 현장의 개선 목표는 현대화, 자동화를 넘어 무인화까지 제시되고 있다. 요즈음 가방공장, 산소공장, 화장품공장, 김치공장, 기계공장, 버섯공장 등 중공업 부문뿐만 아니라 경공업 부분에서도 최신 설비로 마련된 본보기 공장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북한 경제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많다.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 대규모 건설 사업들이 하나씩 마무리되고 있고 시장이나 상품점에 중국산 제품보다 국산 제품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부문별 상품 생산 공장들이 다양하게 설립되어 정상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에 경제난을 겪고 난 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던 선행부문, 즉 전기, 석탄, 금속, 철도 부문이, 더디지만 정상화되기 시작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기간 산업들이 어느 정도 안정화됨에 따라 다른 산업 부문까지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부터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하던 ‘최고 생산년도 수준', ‘최고 생산액' 돌파 선언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는 북한 경제가 전반적으로 상승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최고 생산년도 수준이란, 부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198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가 급격히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한 경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대표적인 징후 중 하나가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져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긴 것이었다. 이때 생긴 영양실조, 아사 현상은 지금까지도 북한의 대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런데 2010년경부터 식량난과 관련한 이야기는 거의 없어졌다. 일부 수입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식량 자급에 큰 무리가 없는 듯하다. 이는 2000년대 초반 남한 등에서 지원하던 비료공급이 끊어졌음에도 2010년경부터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가 정상화되어 자체적으로 비료생산이 가능해진 것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등에서 부족한 비료를 일부 수입하기는 했지만 자체 생산 공장의 정상 가동이 더욱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북한 경제의 변화에 대해 정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즉 아직도 북한 경제는 199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발표되는 정식 간행물과 북한을 다녀온 여러 여행자의 경험 등은 북한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흐름을 많은 부분에서 뒷받침한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소위 ‘거짓보고’를 없애는 것을 집권 초기부터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였다고 하니 공식 보도물을 완전히 거짓 선전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즉,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경제 추세는 분명이 '호조세'에 가깝다는 것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밝힌 5개년 전략도 이런 변화의 연속선 상에서 파악되는 수준이었다.

 

북한 교육의 변화

북한 경제가 바닥을 친 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고 좀 더 폭넓게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 교육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북한은 남한의 과학고등학교처럼 영재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제1고등중학교를 운영하였다. 새로운 세기는 정보산업 시대이자 지식경제 시대라고 판단한 북한 지도부는 2000년대 들어서 제1고중 개혁부터 시작하였다. 약 20년 동안 너무 많이 늘어난 제1고중의 개수는 대폭 줄이고 전반적인 고등중학교의 교재와 학습 수준을 상향 조정하였다. 제1고중의 경험을 토대로 상향평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2012년 즈음을 기점으로 급격히 변하였다. 전반적인 학제도 개편되어서 12년 의무교육제가 도입되었다. 교과 내용도 대폭 바뀌었으며 교과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지식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호기심을 자극하여 관찰, 토론, 글쓰기 능력을 기르도록 유도하였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남한과 같은 문과, 이과 구분을 폐지했는데 ‘전민과학기술인재화'라는 지향에 맞추어 수학,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였다. 그 결과, 고급중학교 과정에서 수업시수가 가장 많은 5개 과목은 영어를 제외하면 모두 수학, 과학(물리, 화학, 생물 등) 과목이 차지하고 있다.

의무교육뿐만 아니라 대학교육과 성인교육, 직장인 교육 체계도 대폭 손질되었다. 대학은 부문별, 지역별로 통폐합되면서 종합대학화되었고 원격교육이 강화되었다. 기존에 있던 공장대학, 농장대학 등, 일하면서 배우는 체계가 강화되었다. 2015년에 완공된 평양의 과학기술전당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존재하는 미래원 그리고 생산현장의 과학기술보급실 등이 인터넷망으로 연결되어 과학기술 관련 문답, 자료 등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었다.

북한의 과학기술 강조 경향은 교육이나 생산현장뿐만 아니라 국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2000년대 이후 2010년까지 북한 과학자들의 국제 학술지 게재 논문은 다른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작성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대략 한 해에 10여 편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0년에 접어들면서 논문 수는 28편으로 늘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는 매년 20~30편 정도가 꾸준히 발표되었다. 2013년부터는 협력 논문과 함께 단독연구 논문도 발표되기 시작하여 2015년 단독연구논문 수는 21편이나 되었다. 2015년에는 협력논문 편수도 급격히 늘어나 단독, 협력을 모두 합한 논문 수는 65편이나 되었다. 절대량은 아직까지 매우 작지만 그 변화가 급격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학술논문은 투고 이후 정식 게재가 결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2010년경을 기점으로 대외 학술교류와 국제학술지 투고가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국방 과학기술의 변화

최근 북한의 변화 중에서 객관적 자료로 명확히 드러난 것은 역시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 부문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핵시험은 대략 3년을 주기로 모두 5차례 진행되었다. 그 내용도 핵분열탄뿐만 아니라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탄까지 시험되었고 단순한 핵반응 시험을 넘어 핵탄두와 핵무기 운용 관련 시험도 진행되었다. 미사일은 액체 연료 엔진뿐만 아니라 고체 연료 엔진도 시험되었고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까지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게다가 잠수함에 장착할 수 있는 SLBM까지 개발되었음이 영상 자료로 공개되었다. 이제 최첨단의 무기기술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기술들은 모두 쉽게 얻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개발하기에도 매우 힘든 것이다. 외국에서 도입했는지 아니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인지는 지금 수준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미사일의 형태나 모양에서 중국제, 혹은 러시아제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냥 베낀 것이라 폄하할 수도 없다. 어찌되었건 간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제작, 발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기술들은 국방 부문에서 스핀오프된 것이다. 정보통신 혁명의 핵심인 인터넷 기술은 핵전쟁 이후를 대비하는 기술로 개발되었고, 요리 기술의 혁명을 가져온 전자레인지도 레이다 기술에서 스핀오프된 것이다. 휴대전화 기술 중에서 CDMA 기술도 무선통신 암호화 기술로 처음에 개발되었던 것이 민간에서 활용된 것이다. 이렇듯 국방 과학기술의 발달 수준은 민간 부문의 기술 발달을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평가를 인정한다면 북한의 국방 과학기술 수준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북한의 민간 과학기술 수준은 일반적인 통념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했거나 혹은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할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이 일단 완성되면 개발 당시보다 더 적은 자원과 자금이 투입되어도 유지 가능하다. 북한의 핵무기 관련 시스템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수록 군수에서 민수로 전환할 수 있는 여력은 점점 많아질 것이고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이다.

 

남북교류협력 2.0 제안 : 북한의 기술 적극 활용해야

과학기술은 굳이 경제적 효과가 있어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도 문명의 발전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경제적 효과는 꼭 최첨단, 최고수준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기존의 생산방식이나 문제점을 조금씩만 개선할 수 있어도 그 효과는 충분하다. 아니 기존 제품과 차별성만 가져올 수 있어도 상품으로 가치는 생겨난다.

북한의 경제 수준은 아직도 남한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다. 이는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뒤떨어진 북한 내부에도 쓸만한 기술은 상당히 많이 있다. ‘세계 수준’에 필적할 만하다고 자화자찬하는 기술도 있을 테고,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현장 밀착형 기술’도 상당할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새 세기 산업혁명을 준비하면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상당히 오랫동안 노력했기 때문에 쓸만한 과학기술이 예상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최근에 공개한 북한의 국방 과학기술 수준을 보더라도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 수준은 상당히 쓸만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와 종북 논란, 급기야 혐북 담론에 빠져 북맹이 되어 북한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사이에도, 북한은 나름 변화,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조금씩 더디지만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혐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북한의 가치 역시 단순한 ‘노동력, 지하자원 공급처’를 넘어설 것이다. 의외로 높은 수준의 기술도 있을 것이고 차별화 전략을 펼 수 있는 특이한 기술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기술을 중심으로 남한의 자본, 마케팅 능력을 결합하여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면 남한만 혹은 북한만의 힘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것보다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뛰어난 남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 테니 여기서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시하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하고 있었던 북한의 기술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거둘 수 있는 경제적 성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기술 중심의 교류협력을 원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이성적 판단으로 폐쇄해버린 개성공단도 사실은 2, 3단계 사업에서 중화학공업 및 장치산업 과 첨단산업 부문을 중심으로 운영될 계획이었다. 그런데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인 1단계에서 멈추어버리고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전략적 판단에 의해 매우 낮게 설정되어 ‘값싼 노동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2013년 제정, 공포된 ‘경제개발구'에는 기술 중심의 투자 유치를 위해 ‘첨단기술개발구’와 같은 것도 들어가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 2010년대 들어서면서 적극 운용하고 있는 ‘첨단과학기술교류사 (김일성종합대학)', ‘미래과학기술교류사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국제새기술경제정보교류사’, ‘첨단생물공학기술교류사' 등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중심으로 대외협력을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조직이다. 이 중에서 첨단과학기술교류사나 미래과학기술교류사는 북한의 최고 인재들이 모여 있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시설,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형태이다. 즉 대학 기반의 기술교류협력 기업과 같은 것이다.

 

스포츠 단일팀처럼,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단일팀을 꾸린다면

과학기술교류협력의 출발로, ‘단일팀’은 어떨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스포츠 분야에서 공동 응원단이나 단일팀 구성은 서먹서먹하던 사이를 급속히 가깝게 만든다. 1991년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우승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과학기술을 통한 남북 교류협력은 기술 유출이나 상업적 이익 배분 방식, 나아가 국제 제재 관련 문제로 쉽게 추진되기 힘든 점이 있다. 그렇다면 스포츠 분야에서 했듯이,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국제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출전해보는 것에서 시작해보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수학,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천문, 정보) 부문에서는 매년 국가대표를 선발하여 실력을 겨루는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가 열린다. 중고등학생이 참가하는 대회도 있고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회도 있다. 만일 남과 북이 각각 선발한 국가대표들을 ‘함께’ 가르쳐서 국제 올림피아드 대회에 단일팀으로 출전하게 되면 스포츠 분야의 단일팀만큼이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국제 대회에서는 영어로 된 문제를 풀기 때문에 남북의 언어나 용어 차이 또한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남북이 서로 다르게 발전시켜온 교수·학습 방법이 남북의 똑똑한 학생들에게 새로운 자극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따로 참가하여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대리전을 시키는 것보다 국제 무대에서 서로 협력하는 경험을 갖게 하면 앞으로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은 더욱 빨리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북한이 ‘과학교육의 해'로 선포할 정도로 과학교육에 집중하는 시기이다. 남북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다면 국제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단일팀 구성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올림피아드 단일팀은 어찌 보면 작은 아이디어중의 하나일 뿐이다. ‘북한의 존재, 나아가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남북교류협력사업은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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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_겨레하나

[민중의소리] “이명박 정부가 나를 슬기롭게 만들었다”

                     인터뷰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이경 사무총장

 

 

“정말 재미없어요.”
남북관계를 주로 다루는 기자와 민간 대북지원 단체 사무총장이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눈 대화다.

남북관계가 안 풀린 지도 너무 오래됐고 경제협력이나 민간 차원의 교류, 대북지원 등 모든 분야의 활동이 ‘스톱’된 지도 오래됐다. “정부는 전향적으로 나서라”고 외치기도 입에 군내 나도록 했고, 해도 해도 안 되니 자포자기 심정이 들기도 했다.

기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재작년 기사도, 작년 기사도, 또 올해 쓰는 남북관계 기사도 “얼어붙은 남북관계” 운운,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으니 “정말 재미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 말이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졌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사무총장을 6일 만났다.

“친정 식구보다 자주 만났었는데...”

51개 민간 대북지원단체가 모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를 비롯해 민간지원단체의 숫자는 꽤 많다. 지원 대상, 내용, 방식 등도 다양하다.

영유아 등 취약계층 대상 긴급구호를 주되게 하는 단체부터 공장 짓기 사업 등 중장기 개발협력 방식으로 나아가는 단체 등. 대북지원사업이 10여년 이상 이어지면서 그 내용도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의 ‘5.24조치’ 이후 ‘취약계층 대상 인도지원’만 선별적으로 허가가 나면서 이러한 ‘다양성’은 사라지고 과거로 퇴행한 상태다.

 

겨레하나 김이경 사무총장 (사진출처. 민중의소리)


 

“지난 정권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졌다. 긴급구호 성격에서 공장을 지어준다거나 개발협력으로 가는 추세였는데 이 모든 게 이명박 정권 들어 중단됐고, 밀가루 같은 경우 나가던 것조차 올초부터 완전히 중단됐다. 그러면서 나온 게 북측의 분배계획서를 승인조건으로 내세운 거다. 그걸로 대북지원을 반대하는 보수언론의 목소리나 정권 내부의 사람들을 진정시켰던 듯하다.

그러니까 북에서도 어느 정도 해주다가 갈수록 ‘이런 식의 지원은 해서 뭐하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민간도 ‘이런 지원 더 이상 하지 말자’ 이러다가 국방위원장 사망 후 완전히 ‘올스톱’된 거다.

대북지원 단체들이 문도 닫고 위축되고 지원양도 비교 안 되게 줄었다. 우리도 전에 평균 1년에 40억 넘었는데 작년에 몇천만원 수준이었다.”

한창 땐 한 달에 세 번도 만나고 “친정 식구들보다 자주 만났던” 사람들과도 못 만난 지 오래다.

공장사업 등 협력사업이 ‘스톱’된 상황도 마음의 짐이다.

“병원 지어주다 지붕 못 덮어서 물에 젖고 밀가루 빵공장 같은 데는 밀가루 보급이 끊어져 피해가 엄청나고 우리 쪽 사정으로 인한 손실액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하겠나. 앞으로 공장사업 지속하자고 말하기도 미안한 상황이다. 북측이 부담스러워 하는데 공장 짓는 게 더 좋다고 설득해서 추진했는데 우리가 책임을 못 진 거니까...”

김 총장은 이처럼 민간단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후원자들은 줄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반출이 안 되고 있을 뿐. 경색된 남북관계를 답답하게 바라보다가도 힘을 잃지 않는 동력이다.

“사람들이 참 따뜻하다. 폭이 넓진 않아도 꾸준하게 늘 마음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왜 기죽어야 하냐”

그는 “이명박 정부에 고마운(?) 게 단체들이 단결이 잘 된다”고 말한다.

“단체들 특성상 각자 창구를 유지해야 하고 주된 협력 파트너가 누구냐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다양성이 민간의 특성이기도 하고. 그런 특징 때문에 ‘헤쳐모여’가 잘 안 됐었다.”

‘단결이 잘 된다’는 말은 재작년 무렵부터 북민협 등을 중심으로 정부를 향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한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대북지원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면서 정부가 ‘대북제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작년에 제일 많이 목소리를 냈다. 작년에도 그랬고. 근데 아무리 해도 정부가 요지부동이고, 국회의원을 만나봐도 표 안 되고 ‘퍼주기’ 문제 이런 것들 때문에 못 하고, 단체들도 지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김 총장은 ‘위풍당당’을 외친다.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위축되고 자포자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싸워도 안 되니까 포기하는데 그러지 말고 모금도 하고 우리 주장을 하자, 그게 여론사업이고 국민을 설득하는 거다. 우리가 기가 죽을 필요가 뭐가 있냐. 당장 물자를 보낼 수 있든 없든 뭐가 그리 중요하냐. 우리 마음이 중요하다.”

올해 봄가뭄과 큰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이어지고 국제곡물가 상승이 예상되는 등 북측 식량난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올 가을 곡물 생산량이 60만t 가량 줄어들 것으로 통일부는 추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단체들이 ‘캠페인’을 통해 범국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긴급 수해지원의 의미는 크다. 오는 11일 밀가루 500t이 처음으로 북측에 전달된다.

“특히 북민협이 개성을 방문해 수해지원에 합의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처음 만난 거니까 의미가 남다르다.”

그럼에도 그는 대북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로 ‘북이 어려우니 도와주자’ 라고만 접근하는 것보다 “우리 주장이 틀리지 않은데 위풍당당 이야기하자”고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 정권 내 강경세력의 입장은 북이 어려울수록 더 압박해야 무릎 꿇고 나온다는 것 아닌가. 그들은 현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달리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폈고 성공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김 총장이 ‘위풍당당’을 외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다. 겪고 또 겪다보니 오히려 중심, 원칙을 단단히 잡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나를 슬기롭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 총장은 “어떤 식으로든 민간교류를 해야 한다. 공장사업이 좋을지 밀가루가 좋을지 서로 생각도 다양하지만 남북이 민간의 필요성을 찾아가면서 자꾸 만나면서 통일의 주체역량이 강화되고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다”라고 말한다.

대북지원사업이 성장하면서 장기적인 구상도 다양해졌다. 겨레하나는 이후 방향이 ‘전문교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사업이 진행되면 갈수록 긴급 구호성 인도지원은 줄어들 거라고 본다. 이후에 전문 분야별 교류 쪽으로 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농업교류라면 농민 교류가 아니라 전문학자 간 만남을 통해 북과 우리의 농업이 상생할 수 있는 조건, 서로의 경제체제에 조응하면서도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민간의 역할을 찾아가려는 고민이다. 또 전문교류 할 때 북이 필요로 하는 기자재나 실험장비를 지원하면서 그 성과를 공유하는 형태로 가지 않겠나, 그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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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나는 수없이 북한을 드나든 몇 안 되는 남한 사람일 것 이다. 한 100번 쯤 될까?


일반 관광이나, 기자로서가 아닌 ‘협력사업자’로서의 방북이었다.
처음에는 3년간은 6.15, 8.15 등 남북공동행사를 준비하기위하여,
그 이후에는 인도적 대북지원단체의 사무총장으로, 인도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화교류를 논의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한달에 서너차례 평양 개성 금강산 등 북한을 찾았다.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를 서로 조정하여 공통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에게 너무 당연한 상식도 상대편에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서로간의 오해가 축적되어, 협력사업이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심정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다보면 상대방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게 되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화가 완전히 단절되고 소통이 먹통되는 순간들도 왕왕 있다.


그럴 때 남쪽 인사들은 북이 남쪽의 실정도 모른 체 너무 많은 댓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협력 등에서 북이 너무 진입단가를 높게 책정해,
남쪽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수를 둔다는 말들이 무성하게 나돈다.
또 사회문화교류에서 북이 남쪽을 외국과 달리 높은 진입장벽을 친다거나,
혹은 제한규정을 강화해서 ‘동포애’ 운운하면서도 오히려 남쪽을 압박하고,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 모두 북이 남북교류협력을 하는 근본 이유는 '물질적 성과' 혹은 '댓가'라고 보는 견해에 속한다.



그러나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과 달리 이윤창출을 목표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다.
즉 ‘사회주의적 이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이다.
‘사회주의적 이념’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북 협력사업에서의 ‘사회주의적 이념’은 때로는 ‘물질적 성과’일수도 있고,
때로는 그들이 말하는 ‘통일전선적 연대의 효과를 고려한 정치적 행위’일수도 있고
또 때로는 ‘역사적 평가와 대중적 시선’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매 상황마다 그들의 판단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남쪽에서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북은 양파처럼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집단이며,
북의 결정방향에 대해서는 늘 예측불허라는 평가가 더 객관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 북한’ 사람들의 사고체계의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내고, <그 차이를 뛰어넘는 합의점 마련의 방도>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협력사업의 성사는 불가능하며, 더 나아가 남북화해협력의 길은 더 멀고 험란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느낀 분단 60년을 훌쩍 넘으며 <협력사업>을 하게된
남과 북의 여러 풍경들을 스케치하고, 갈무리하며,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던 여러 가지 소회들을 축척하기 위함이다.


아직도 썩 자유롭지 않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이를테면 <주적>인지,
아니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인지
그 애매모호한 헷갈림과 이질감을 염두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뜨거운 동포애적 정을 심장으로 느끼면서,
협력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그 어디메쯤 반드시 기록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동안 북한을 오고갈 때마다
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속의 <북한>과 실제 <북>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남북이 함께 창조해야할 새로운 길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했다.
지금도 그 새로운 길을 어찌어찌 개척해할지 명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에피소드를 적어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어쩌면, 사람들이 훨씬 더 명확하게 나에게 길을 일러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다.


각설하고, 남북관계도 가장 최악인 지금, 시간 있을 때, 그저 기록을 적어보자.
글 전체의 체계라든가, 짜임새라든가 그런 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아마 끝까지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생각하는 대로 두서없이, 메모장을 만들어 두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정리는 나중에! 좀 두서없어도 그게 시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아직도 표현의 자유가 그다지 넓지 않은 상황에서,
미처 쓰지 못한 내 마음자리의 어수선함까지 이글을 읽는 네티즌들은 헤아려주지 않을까?

이글을 읽는 분들의 피드백을 기대하며, 하나씩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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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