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들이 채택된 8차 남북고위급회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3장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3장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 데 따라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장 경제교류·협력

제1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현한다. 

① 남과 북은 물자교류와 석탄, 광물, 수산자원 등 자원의 공동개발과 공업, 농업, 건설, 금융, 관광 등 각 분야에서의 경제협력사업을 실시한다. 
  

② 남과 북은 자원의 공동개발, 합영·합작 투자 등 경제협력사업의 대상과 형식, 물자교류의 품목과 규모를 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여 정한다. 

③ 남과 북은 자원의 공동개발, 합영·합작투자 등 경제협력사업의 규모, 물자교류의  품목별 수량과 거래조건을 비롯한 기타 실무적 문제들을 쌍방  교류. 협력 당사자들 사이에 토의하여 정한다. 

④ 남과 북 사이의 경제협력과 물자교류의  당사자는 법인으로 등록된 상사, 회사, 기업체 및 경제 기관이 되며 경우에 따라 개인도 될 수 있다. 

⑤ 남과 북은 교류·협력 당사자간에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쳐 경제협력사업과 물자교류를 실시하도록 한다. 

⑥ 교류물자의 가격은 국제시장 가격을 고려하여 물자교류 당사자간에 협의하여 정한다. 

⑦ 남과 북 사이의 물자교류는 상호성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실현한다. 

⑧ 남과 북 사이의 물자교류에 대한 대금결제는 청산결제방식을 원칙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 쌍방의 합의에 따라 다른 결제방식으로 할 수 있다.

⑨ 남과 북은 청산결제은행 지정, 결제통화선정 등 대금결제와 자본의 이동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항은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다. 

⑩ 남과 북은 물자교류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남북  사이의 경제관계를 민족 내부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를 협의·추진한다. 

⑪ 남과 북은 경제교류와 협력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하여 공업규격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서로 교환하며 교류·협력 당사자가 준수하여야 할 자기측의 해당 법규를 상대측에 통보한다. 

⑫ 남과 북은 경제교류와 협력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분쟁조정절차 등에 대해서는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다. 

⑬ 남과 북은 자기측 지역에서 경제교류와 협력에 참가하는 상대측 인원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편의를 보장한다. 

 

제2조 남과 북은 과학·기술, 환경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현한다. 

① 남과 북은 과학·기술, 환경분야에서 정보자료의 교환, 해당  기관과 단체, 인원들 사이의 공동연구 및 조사, 산업부문의 기술협력과 기술자, 전문가들의 교류를 실현하며 환경보호 대책을 공동으로 세운다. 

② 남과 북은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데 따라 특허권, 상표권  등 상대측 과학·기술상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제3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한다. 

① 남과 북은 우선 인천항, 부산항, 포항항과 남포항, 원산항, 청진항 사이의 해로를 개설한다. 

②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 규모가 커지고 군사적 대결상태가 해소되는데 따라 해로를 추가로 개설하고, 경의선 철도와 문산 - 개성 사이의 도로를 비롯한 육로를 연결하며 김포공항과 순안비행장 사이의 항로를 개설한다. 

③ 남과 북은 교통로가 개설되기 이전에  진행되는 인원왕래와 물자교류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쌍방이 합의하여 임시교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④ 남과 북은 육로, 해로, 항로의 개설과 운영의 원활한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교환 및 기술 협력을 실시한다. 

⑤ 남북 사이의 교류물자는 쌍방이 합의하여 개설한 육로, 해로, 항로를 통하여 직접 수송하도록 한다. 

⑥ 남과 북은 자기측 지역에 들어온 상대측 교통수단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긴급구제조치를 취한다. 

⑦ 남과 북은 교통로 개설 및 운영과 관련한 해당 국제 협약들을 존중한다. 

⑧ 남과 북은 남북 사이에 운행되는 교통수단과 승무원들의 출입절차, 교통수단  운행방법, 통과 지점 선정 등 교통로 개설과 운영에서 제기되는 기타 실무적 문제들을 경제교류. 협력공동위원회에서 토의하여 정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연결하며,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① 남과 북은 빠른 시일 안에 판문점을 통하여 우편과  전기통신을 교환, 연결하도록 하며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정보교환 및 기술 협력을 실시한다. 

②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서 공적사업과 인도적 사업을 우선 보장하며, 점차 그 이용 범위를 확대하여 운영하도록 한다. 

③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의 비밀을 보장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정치·군사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는다. 

④ 남과 북은 우편 및 전기통신교류와 관련한 해당 국제 협약들을 존중한다. 

⑤ 남과 북 사이에 교류되는 우편 및 전기통신의 종류와 요금, 우편물의 수집, 전달방법 등 기타 실무적 문제들은 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여 정한다. 


제5조 남과 북은 국제경제의 여러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 

① 남과 북은 경제분야의 여러 국제행사와 국제 기구들에서 서로 협력한다. 

② 남과 북은 경제분야에서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추진한다. 


제6조 남과 북은 경제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지원·보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경제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구설치문제와 기타 실무적 문제들을 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여 정한다.

 

 

제8조 이 합의서 '제1장 경제교류·협력'부문의 이행 및 이와 관련한 세부사항의 협의·실천은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한다.

 

 

 


제2장 사회문화교류·협력

제9조 남과 북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① 남과 북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 및 연구·출판·보도자료와 목록 등 정보자료를 상호 교환한다.


 

② 남과 북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협력을 비롯한 다각적인 협력을 실시한다.

③ 남과 북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국토종단행진, 대표단 파견, 초청·참관 등 기관과 단체, 인원들 사이의 접촉과 교류를 실시한다.

④ 남과 북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출판·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 조사, 편찬사업, 행사를 공동으로 실시하며  예술작품, 문화유물, 도서출판물의 교환전시회를 진행한다.

⑤ 남과 북은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데 따라 상대측의 각종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① 남과 북은 모든 민족구성원들이 자기 의사에따라 자유롭게 상대측 지역을  왕래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를 공동으로 취한다.

② 민족구성원들의 왕래는 남북 사이에 개설된 육로, 해로, 항로를 편리한 대로  이용하여 하도록 하며, 경우에 따라 국제항로도 이용할 수 있다.

③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이  방문지역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하도록  하며, 신변안전 및 무사귀환을 보장한다.


④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이 상대측의 법과 질서를 위반함이 없이 왕래하고  접촉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⑤ 남과 북을 왕래하는 인원들은 필요한 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하며, 쌍방이 합의한 범위 내에서 물품을 휴대할 수 있다.

⑥ 남과 북은 자기측 지역에 들어온 상대측 인원에 대하여 왕래와 방문목적 수행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한다.

⑦ 남과 북은 자기측 지역에 들어온 상대측 왕래자에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긴급구제 조치를 취한다.

⑧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절차와  실무적 문제들을 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여 정한다.


제11조 남과 북은 사회문화분야의 국제무대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

 ① 남과 북은 사회문화분야의 여러 국제행사와 국제기구들에서 서로 협력한다.


 ② 남과 북은 사회문화분야에서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추진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사회문화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지원·보장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사회문화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구설치문제와 기타 실무적 문제들을 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여 정한다.


제14조 이 합의서 '제2장 사회문화교류·협력' 부문의 이행 및 이와 관련한 세부사항의 협의·실천은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한다.

 

 

제3장 인도적 문제의 해결

제15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①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범위는 쌍방 적십자 단체들 사이에 토의하여 정하도록 한다.

②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왕래와  방문을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  왕래절차에 따라 실현한다.

③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상봉면회소 설치문제를 쌍방 적십자단체들이 협의·해결하도록 한다.

④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추진한다.

⑤ 남과 북은 인도주의 정신과 동포애에 입각하여 상대측 지역에 자연재해 등 재난이 발생할 경우 서로 도우며, 흩어진 가족·친척들 가운데 사망자의 유품처리, 유골이전 등을 위한 편의를 제공한다.


제16조 남과 북은 이미 진행하여 오던 쌍방 적십자단체들의 회담을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열도록 적극 협력한다.


제17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적십자단체들의 합의를 존중하며 그것이 순조롭게 실현되도록 지원·보장한다.


제18조 이 합의서 ‘제3장 인도적 문제의 해결’ 부문의 이행 및 이와 관련한 세부사항의 협의·실천은 쌍방 적십자단체들이 한다.



제4장 수정·발효

제 19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보충할 수 있다.


제 20조 이 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여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부기; 쌍방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왕래에 저촉되는 법적, 제도적 장치 철폐문제를 남북화해공동위원회 법률실무협의회에서 토의 해결하기로 하였다.



                                                                1992년 9월 17일


                                        남 북 고 위 급 회 담           북 남  고 위 급  회  담
                                       남측대표단  수석대표          북 측  대 표 단  단  장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 무 총 리   정원식           정 무 원 총 리   연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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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들이 채택된 8차 남북고위급회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2장

 

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2장 남북불가침'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 데 따라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장 무력불사용

제1조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 일대를 포함하여 자기 측 관할 구역 밖에 있는 상대방의 인원과 물자, 차량, 선박, 함정, 비행기 등에 대하여 총격, 포격, 폭격, 습격, 파괴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무력사용 행위를 금지하며 상대방에 대하여 피해를 주는 일체 무력도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제2조 남과 북은 무력으로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그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일시라도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남과 북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 관할 구역에 정규무력이나 비정규무력을 침입시키지 않는다. 

제3조 남과 북은 쌍방의 합의에 따라 남북 사이에 오가는 상대방의 인원과 물자. 수송 수단들을 공격, 모의공격하거나 그 진로를 방해하는 일체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 밖에 남과 북은 북측이  제기한 군사분계선 일대에 무력을  증강하지 않는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을 하지 않는 문제, 상대방의 영해·영공을  봉쇄하지 않는 문제와 남측이 제기한 서울지역과 평양지역의 안전보장문제를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계속 협의한다.


제2장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계획적이라고 인정되는 무력침공 징후를 발견하였을 경우 즉시 상대측에 경고하고 해명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것이 무력충돌로 확대되지 않도록 필요한 사전 대책을 세운다. 남과 북은 쌍방의 오해나 오인, 실수 또는 불가피한 사고로 인하여 우발적 무력충돌이나 우발적 침범 가능성을 발견하였을 경우 쌍방이 합의한 신호규정에 따라 상대측에 즉시 통보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 대책을 세운다. 

제5조 남과 북은 어느 일방의 무력집단이나 개별적인 인원과 차량, 선박, 함정, 비행기 등이 자연재해나 항로미실과 같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상대측 관할구역을 침범하였을 경우 침범측은 상대측에 그 사유와 적대의사가 없음을 즉시 알리고 상대측의 지시에 따라야 하며 상대측은 그를 긴급 확인한 후 그의 대피를 보장하고 빠른 시일 안에 돌려보내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돌려보내는 기간은 1개월 이내로 하며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제6조 남과 북 사이에 우발적인 침범이나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같은 분쟁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쌍방의 군사당국자는 즉각 자기측 무장집단의 적대행위를 중지시키고  군사직통전화를 비롯한 빠른 수단과 방법으로 상대측 군사당국자에게 즉시 통보한다. 

제7조 남과 북은 군사분야의 모든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쌍방 군사당국자가  합의하는 기구를 통하여 협의 해결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어느 일방이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이 합의서를 위반하는 경우 공동조사를 하여야 하며 위반사건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강구한다.


제3장 불가침 경계선 및 구역

제9조 남과 북의 지상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제10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제11조 남과 북의 공중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지상 및 해상 불가침 경계선과 관할구역의 상공으로 한다.


제4장 군사직통전화의 설치·운영

제12조 남과 북은 우발적 무력충돌과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장 사이에 군사직통전화를 설치·운영한다. 

제13조 군사직통전화의 운영은 쌍방이 합의하는 통신수단으로 문서통신을 하는 방법  또는 전화문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 쌍방 군사당국자들이 직접 통화할 수 있다. 

제14조 군사직통전화의 설치·운영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기술실무적 문제들은 이 합의서가 발효된 후 빠른 시일 안에  남북 각기 5명으로 구성되는 통신실무자접촉에서  협의 해결한다. 

제15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50일 이내에 군사직통전화를 개통한다.


제5장 협의·이행기구

제16조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남북합의서 제12조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제2조에 따르는 임무와 기능을 수행한다. 

제17조 남북군사분과위원회는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하여 더 필요하다고 서로 합의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협의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운다.

 


제6장 수정 및 발효

제18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따라 수정·보충할 수 있다. 

제19조 이 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여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2년 9월 17일

                                     남 북 고 위 급 회 담          북 남 고 위 급 회 담
                                    남측 대표단 수석대표        북측 대표단      단장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총리      정원식          정무원 총리     연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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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들이 채택된 8차 남북고위급회담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 데 따라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장 체제(제도)인정·존중

 제1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체제(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체제(제도)를 소개하는 자유를 보장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 당국의 권한과 권능을 인정·존중한다. 

 제4조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저촉되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의 개정 또는 폐기 문제를 법률실무협의회에서 협의·해결한다.


제2장 내부문제 불간섭

 제5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법질서와 당국의 시책에 대하여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6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대외관계에 대해 간섭하는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7조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저촉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상대방에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제3장 비방·중상 중지

 제8조 남과 북은 언론·삐라 및 그 밖의 다른 수단·방법을 통하여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아니한다.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특정인에 대한 지명 공격을 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상대방 당국을 비방·중상하지 아니한다. 

 제11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며 허위사실을 조작·유포하지 아니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사실에 대한 객관적 보도를 비방·중상의 대상으로 하지 아니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시각매개물(게시물)을  비롯한 그밖의 모든 수단을 통하여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아니한다. 

 제14조 남과 북은 군중집회와 군중행사에서 상대방을 비방·중상하지 아니한다.


제4장 파괴·전복 행위금지 

 제15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테러, 포섭, 납치, 살상을 비롯한 직접 또는 간접, 폭력 또는 비폭력 수단에 의한 모든 형태의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16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파괴·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선전선동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17조 남과 북은 자기측 지역과 상대측 지역 및 해외에서 상대방의 체제와 법질서에 대한 파괴·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테러 단체나 조직을 결성 또는 지원·보호하지 아니한다.


제5장 정전상태의 평화상태에로의 전환

 제18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준수한다. 

 제19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대책을 강구한다. 

 제20조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성실히 준수한다.


제6장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제21조 남과 북은 국제기구나 국제회의  등 국제무대에서 상호 비방·중상을 하지  않으며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긴밀하게 협조한다. 

 제22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상대방의 이익을 존중하며 민족의 이익과 관련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긴밀히 협의하고 필요한 협조조치를 강구한다. 

 제23조 남과 북은 민족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재외  공관(대표부)이 함께 있는 지역에서 쌍방 공관(대표부) 사이에 필요한 협의를 진행한다. 

 제24조 남과 북은 해외동포들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고 보호하며 그들 사이의 화해와 단합이 이룩되도록 노력한다.


제7장 이행기구

 제25조 남과 북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에 관한 합의사항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남북화해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는 따로 작성한다. 

 제26조 '남북화해공동위원회'안에 '법률실무협의회'와 '비방·중상중지실무협의회'를 두며 그 밖에 쌍방이 합의하는 필요한 수의 실무협의회를 둔다. 실무협의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는 '남북화해공동위원회'에서 별도로  작성한다.


제8장 수정 및 발효

 제27조 이 부속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따라 수정·보충할 수 있다. 

 제28조 이 부속합의서는 쌍방이 서명하여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부기: 북측이 제기한 '남과 북은 국제기구들에 하나의 명칭,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남과 북은 국제회의를 비롯한 정치행사들에 전민족을 대표하여  유일 대표단으로 참가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남과 북은 제3국이  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체 행위에 가담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 ' 남과 북은 다른 나라들과 맺은 조약과  협정들 가운데서 민족의 단합과 이익에 배치되는 것을 개정 또는 폐기하는 문제를 법률실무협의회에서 협의 해결한다'는 조항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앞으로 계속 토의한다. 



                                                                 1992년 9월 17일


                                          남 북 고 위 급 회 담         북 남 고 위 급  회 담
                                         남측대표단 수석대표        북측 대표단  단    장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총리    정원식          정무원  총리 연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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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하여 가설된 남북한간의 직통전화

 

남북적십자사 중앙기관 사이의 직통전화 운용절차 합의서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의 합의에 따라 설치된 남북 적십자 중앙기관 사이의 직통전화 운용절차에 관하여 1972년 8월 25일 남북 적십자사 연락관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설치목적

 

역사적인 남북 적십자 회담과 이에 따르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남북 적십자사 중앙기관 사이의 직통전화 2회선을 설치 운용한다.


2. 설치장소 및 통화자

 

본 전화는 쌍방 적십자사 중앙기관사무실에 각각 설치하며, 통자는 쌍방 적십자사 책임자 및 회담대표와 적십자사 책임자가 임명한 3명으로 한다.


3. 운용시간

 

본 전화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10시부터 12시까지, 16시부터 18시까지 사이에 운용하며 쌍방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이상에 지정된 시간과 날짜에 구애됨이 없이 사전에 날짜와 시간을 설정하여 운용한다. 서울 또는 평양에서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매일 24시간 운용한다.


4. 첫 통화

 

본 전화의 첫 통화는 1972년 8월 26일 10시에 한다.


5. 기술적 보장 및 고장수리

 

본 전화선을 원활하게 운용하기 한 기술적보장 및 고장수리는 19728월 16일의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위한 통신기술실무자회의 합의에 따른다.


6. 유  효

 

본 합의서는 서로 서명하여 교환한 때로부터 발효하며 쌍방의 합의에 따라 폐기 수정 또는 보완할 수 있다.


1972년 8월 25일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위임에 의하여

판문점 연락사무소 책임자    최 동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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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원식 총리(왼쪽)와 연형묵 북한 총리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의 상호 발효를 확인하는 통지문을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2년 1월 20일



 남 북 고 위 급 회 담           북 남 고 위 급 회 담 

남측 대표단 수석 대표          북 측 대 표 단 단 장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 무 총 리 정 원 식         정 무 원 총 리 연 형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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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하기 전, 남과 북 정권은 어떤 위기 상황 속에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남과 북이 각각 자신이 맞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남북기본합의서를 이용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전술적 행동의 개시, 남북 대화

 

당시 남한 정권은 <남북기본합의서>가 남측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1992년 통일원 자료에는 “1988년 12월 18일 강영훈 총리가 북한 정무원 총리 연형묵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였고, 이에 대해 1989년 1월 16일 연형묵 총리가 「남북고위 정치․군사회담」개최를 수정․제의하면서, 이를 위한 예비회담 개최를 수락함에 따라 성립되었다”라고 적시되어 있다.[각주:1] 강영훈 총리의 서신 제안 이전에도 1988년 6월 3일 이현재 국무총리 명의로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제의했었고,[각주:2]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7․7 대통령 특별선언>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해 사전 분위기 조성에 나선 상태였다. 남북대화를 선제적으로 제의했다는 점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정당성에서 우위를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실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가동되어 왔던 남북 간의 비밀 대화 라인을 통해 기본합의서 논의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한 정권은 이 부분을 강조한다.

 

남북 회담을 제의함에 있어 남한 정부가 또한 중요하게 방점을 찍었던 부분은 남북 회담권의 정부 독점이었다. 즉 “대북제의 및 접촉 창구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로 일원화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각주:3] 정부가 남북 회담의 창구를 독점한다는 것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고려한다면 이는 국내적으로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남한에서는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198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독자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회에 남북학생회담을 제의했고, 전대협 대표 임수경과 전민련 대표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건, 통일운동 단체들의 약진 등은 남한 정권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북 회담을 제안하면서 협상 통로의 정부 독점을 강조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내적으로 정권에 도전적인 세력을 공식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정부가 나서니 민간은 가만히 있으라’는 명제를 근거로, 정권에 도전적인 세력에 압력을 가하는 공안정국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민정당과 합당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키는 이른바 3당합당을 달성하며, 당시 남한 정권에 가장 문제였던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한다. 이로써 남한의 집권 세력은 5공 중간평가에 대한 압력과 군사정권의 후신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데 유리한 조건을 형성한다.

 

‘맞잡은 손, 분단의 벽을 넘다!’ 1989년 8월15일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가 손을 맞잡고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오고 있다.(사진출처.한겨레)

 

또한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남북 회담의 성사라는 동인이 동반된 북방외교는 큰 성과를 내며 남한 정권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돌파구 역할을 한다.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급속한 수교를 진행시켜나가고, 1991년 4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만난 제주 정상회담에서는 고르바초프로부터 남한의 UN가입 지지의사를 얻어내고, 1992년 3월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사찰을 용인하는 러시아의 협력 의사를 확인하는 등 북방외교의 결과물은 남한 정부가 단기간에 이뤄낸 큰 외교적 성과였다. 결과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국면은 당시 남한 정권으로 하여금 위기 극복의 돌파구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남측의 제의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국면으로 진입한다.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협상전략을 구사하며 이른바 밀고 당기기를 진행하지만 어쨌건 꾸준히 회담을 지속시킨다.[각주:4] 그런데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국면으로 진입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정치․군사 고위급회담과 더불어 민간급 교류 역시 중요하게 주장해왔다.[각주:5] 북한에게 있어 통일전선전술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대남 사업기조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 남한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및 각계각층 민중들을 대상으로 제휴하는 하층 통일전선전술이 중심이었고,[각주:6] 이 전술은 남과 북이 대화하는 자리에는 북한이 늘 가지고 등장하는 논의의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남북고위급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3차 예비회담에서 북한이 보여준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입장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9년 10월 12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3차 예비회담에서 북측은 방북 건으로 수감되어 있었던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임수경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남측은 허가 없는 방북은 남한 실정법 위반이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남한 내부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각주:7] 이를 두고 매우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석방’이라는 북측의 기본 입장에 대한 ‘불가’라는 남측의 명백한 거부라는 논의의 구도에서 본다면, 3차 예비회담이 결렬되는 것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3차 예비회담은 다음 예비회담의 날짜를 정하는 등 성과를 보이며 “좋은 분위기”에서 마무리된다.[각주:8]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전략인 통일전선전술보다 불가침 조약 체결, 적어도 회담 기간만큼은 군사적 위협을 줄일 수 있는 ‘회담의 지속’을 바랐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은 군사 분야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1990년 1월 30일에 있었던 6차 예비회담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 중지에 대해서 먼저 토의하자고 제안하고, 이 자리에서 대전차용 방벽 철거까지 주장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회담이 결렬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회담 날짜를 잠정적으로 합의하는 데에서 그친다.[각주:9] 또한 1990년 2월 8일 팀 스피리트 훈련을 이유로 2월 22일에 개최하기로 한 11차 남북국회회담 준비회담 개최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불가침협정에 대한 내용을 <남북기본합의서>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된다. 비록 미국과의 불가침협정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1989년 미국 정부에 제출되고 1990년 공식 발표된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East Asia Security Initiative)’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안보 수요에 맞춰 미군 지상군과 공군 병력 일부를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기로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는 주한미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계획대로 주한미군의 철수가 진행된다면 북한으로서는 군사적 위협을 덜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남북기본합의서>와 거의 동시에 진행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및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 계획까지를 포함해서 고려한다면 북한이 느끼는 군사적 위협은 꽤 많이 감소되었을 것이고, 이는 곧 경제 분야로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기회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협상의 성과물 자체, 즉 <남북기본합의서>에 자신의 의도인 군사적 안보 위협 축소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따라서 북한의 협상 전략이 시간 벌기와 측면 돌파의 차원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제반의 상황이나, 이후 <남북기본합의서>보다 더 적극적으로 군사적 안보 위협을 보장받을 수 있는 북미 직접 대화 국면이 열리자 바로 회담의 테이블을 바꾼 것은 북한의 전략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남북기본합의서? 신사협정일 뿐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남과 북의 집권 세력이 고조된 위기 국면을 측면으로 우회해서 돌파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면, 합의서 체결 이후 결과물을 바라보는 남과 북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합의서의 이행이 어려워지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남한 집권 세력에게 있어 <남북기본합의서>는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한 합의가 아닌 국내 정치적 안정을 위한 합의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합의서 체결 이후 남한이 내놓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태도와 발언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통해 남한의 집권 세력은 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외교적 업적의 확보라는 1차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를 현실화시키는 국면에서는 태도가 변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법적 성격의 문제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한과 북한 상호 간에 맺은 합의로 이것이 법적인 구속력을 지니려면 조약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북한은 자국법의 절차에 따라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으로 비준하고 승인하는 공식적인 작업을 거쳤지만, 남한에서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남한 정부는 최초 <남북기본합의서>를 법적 효력이 없는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이라고 규정했다가, 이후 조약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각주:10] 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로 더욱 힘을 얻게 된다.

 

남북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각기 정치적 책임을 지고 상호 간에 그 성의 있는 이행을 약속한 것이기는 하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국가 간의 조약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대법원 1999.7.23)[각주:11]

 

남북합의서는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 간 합의로서 남북 당국의 성의 있는 이행을 상호 약속하는 일종의 공동성명 또는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가짐에 불과하다. (헌재 2000.7.20)[각주:12]

 

우리나라의 법제상 사법부의 판례는 법원(法源)이 될 수 없으므로 법적 판단에 있어 판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정치적인 고려나 판단에서 벗어나 법리적인 측면에서만 검토되지 않는다는 점과, 그로 인해 대법원과 헌재의 판례가 가지는 정치적 권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체결 과정에서 남한 집권 세력의 위기 극복이라는 목표를 달성시켜주었지만, 정작 남북 관계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잃었다. 곧이어 발생한 북미 간 핵대결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남북 관계를 전개시켰고, 그 결과 북미 제네바 합의라는 다른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남한에서 박정희의 유신 헌법 개정에 도움을 준 이후에는 폐기된 것과 유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1994년 10월 21일 체결된 북미 제네바합의

 

 

남북기본합의서?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맺기 위한 한 계단일 뿐이다

 

북한도 상황은 비슷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핵심 요지 가운데 하나는 남북 관계에 있어 당사자 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전통적인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 기조였던 <7․4남북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나지만, 북한은 남북 관계에서 외세의 개입, 특히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적어도 체제 경쟁이 진행된 1970년대만큼은 외세 배격을 중심에 놓는다. 하지만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이에 따른 경색 국면이 펼쳐지자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에 기반한 해결보다는 북미 간 협상으로 선회한다.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국면에서 북한은 꾸준히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주장을 강조했으며, 이는 남한을 통해 미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려는 전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남북기본합의서> 시스템을 가동해보기도 전에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협상에 들어간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공식화시키는 작업을 구체화하기는 하였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이를 실천할 의지가 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역시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당면한 정권의 위기 극복 우회 수단으로 여겼다는 증거로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쓸려고 만든 문서인가, 아니면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던 문서인가

 

남북 관계를 일종의 국제 관계로 파악한다면, 남한과 북한이 갈등 국면에서 벌이는 체제 경쟁과 화해 국면에서 벌이는 협상은 민족적 유대감이나 도덕적 규범의 잣대로만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오히려 남북 관계를 국제 관계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론적인 측면에서 좀더 쉽게 설명되는 부분이 생겨난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둘러싼 남한과 북한의 행동은 전술적인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각자 집권 세력이 당면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 시간을 벌거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술적인 측면 돌파의 성격이 강했다. 남한은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내 정치에서 획득하지 못했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견제하고, 가시적인 치적을 쌓아 정권 재창출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북한의 경우 증가된 안보 위협에 맞서 시간을 확보하며 현실적인 이득을 챙기기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문제는 이들의 현실적인 목표가 달성되자 곧바로 다른 종류의 현실적인 목표로 다시 이동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남북기본합의서>라는 국면을 민족적인 관점, 통일의 관점에서 남과 북의 집권 세력이 접근했다면 이런 결과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 1) 통일원, 「남북기본합의서」해설(서울: 통일원 통일정책실, 1992), 8쪽. [본문으로]
  2. 2) 양무진, 「북한의 대남협상전략 유형」(경남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1), 108쪽. [본문으로]
  3. 3) 배광복, 「남북관계의 경로의존과 구성-7․4 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까지 남북회담분석」(고려대학교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08), 223쪽. [본문으로]
  4. 4) 양무진은 이 시기의 북한이 대남협상전략 가운데 ‘절충형 타결’ 유형이 6건으로 가장 많았고, 북한이 일방 양보한 것 1건, 대안제시형 타결 1건, 의견일치형 타결 3건이었다고 분석했다. 결렬의 경우는 남측의 일방적 거부가 3건, 북측의 일방적 거부가 4건, 전제조건형 결렬이 4건이 있었지만 ‘완만한 합의 추구’ 유형에 가깝다고 정리하고 있다. 양무진, 앞의 논문, 143~145쪽. [본문으로]
  5. 5) “가까운 시일안에 평양에서 북과 남의 각 당, 각 파, 각계각층의 의사를 대표할수 있는 지도급인사들로 북남정치협상회의를 가질것을 정중히 제의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남조선의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총재들과 김수환추기경, 문익환목사, 백기완선생을 평양에 초청하는바입니다.” 김일성, “신년사(발취) 1989년 1월 1일”, 「련방제조국통일방안에 대하여」(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365쪽. [본문으로]
  6. 6) 따라서 제 사회단체로 구성되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나 대학생, 청년단체들로 구성되는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은 통일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며, 통일전선 차원에서 추진되는 범민족대회와 같은 사업들 역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제성호, 「남북한 관계론」(파주: 집문당, 2010), 121쪽. [본문으로]
  7. 7) 양무진, 앞의 논문, 115쪽. [본문으로]
  8. 8) 양무진, 위의 논문, 115쪽. [본문으로]
  9. 9) 양무진, 위의 논문, 117~118쪽. [본문으로]
  10. 10) 도회근, 「남북한관계와 헌법」(울산: 울산대학교출판부, 2009), 116쪽 [본문으로]
  11. 11) 이장희․유하영․문규석, 「남북 합의 문서의 법적 쟁점과 정책과제」(서울: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2007), 124쪽. [본문으로]
  12. 12) 이장희․유하영․문규석, 위의 책, 12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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