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이명박 정부가 나를 슬기롭게 만들었다”

                     인터뷰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이경 사무총장

 

 

“정말 재미없어요.”
남북관계를 주로 다루는 기자와 민간 대북지원 단체 사무총장이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눈 대화다.

남북관계가 안 풀린 지도 너무 오래됐고 경제협력이나 민간 차원의 교류, 대북지원 등 모든 분야의 활동이 ‘스톱’된 지도 오래됐다. “정부는 전향적으로 나서라”고 외치기도 입에 군내 나도록 했고, 해도 해도 안 되니 자포자기 심정이 들기도 했다.

기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재작년 기사도, 작년 기사도, 또 올해 쓰는 남북관계 기사도 “얼어붙은 남북관계” 운운,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으니 “정말 재미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 말이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졌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김이경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사무총장을 6일 만났다.

“친정 식구보다 자주 만났었는데...”

51개 민간 대북지원단체가 모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를 비롯해 민간지원단체의 숫자는 꽤 많다. 지원 대상, 내용, 방식 등도 다양하다.

영유아 등 취약계층 대상 긴급구호를 주되게 하는 단체부터 공장 짓기 사업 등 중장기 개발협력 방식으로 나아가는 단체 등. 대북지원사업이 10여년 이상 이어지면서 그 내용도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의 ‘5.24조치’ 이후 ‘취약계층 대상 인도지원’만 선별적으로 허가가 나면서 이러한 ‘다양성’은 사라지고 과거로 퇴행한 상태다.

 

겨레하나 김이경 사무총장 (사진출처. 민중의소리)


 

“지난 정권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졌다. 긴급구호 성격에서 공장을 지어준다거나 개발협력으로 가는 추세였는데 이 모든 게 이명박 정권 들어 중단됐고, 밀가루 같은 경우 나가던 것조차 올초부터 완전히 중단됐다. 그러면서 나온 게 북측의 분배계획서를 승인조건으로 내세운 거다. 그걸로 대북지원을 반대하는 보수언론의 목소리나 정권 내부의 사람들을 진정시켰던 듯하다.

그러니까 북에서도 어느 정도 해주다가 갈수록 ‘이런 식의 지원은 해서 뭐하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민간도 ‘이런 지원 더 이상 하지 말자’ 이러다가 국방위원장 사망 후 완전히 ‘올스톱’된 거다.

대북지원 단체들이 문도 닫고 위축되고 지원양도 비교 안 되게 줄었다. 우리도 전에 평균 1년에 40억 넘었는데 작년에 몇천만원 수준이었다.”

한창 땐 한 달에 세 번도 만나고 “친정 식구들보다 자주 만났던” 사람들과도 못 만난 지 오래다.

공장사업 등 협력사업이 ‘스톱’된 상황도 마음의 짐이다.

“병원 지어주다 지붕 못 덮어서 물에 젖고 밀가루 빵공장 같은 데는 밀가루 보급이 끊어져 피해가 엄청나고 우리 쪽 사정으로 인한 손실액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하겠나. 앞으로 공장사업 지속하자고 말하기도 미안한 상황이다. 북측이 부담스러워 하는데 공장 짓는 게 더 좋다고 설득해서 추진했는데 우리가 책임을 못 진 거니까...”

김 총장은 이처럼 민간단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후원자들은 줄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반출이 안 되고 있을 뿐. 경색된 남북관계를 답답하게 바라보다가도 힘을 잃지 않는 동력이다.

“사람들이 참 따뜻하다. 폭이 넓진 않아도 꾸준하게 늘 마음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왜 기죽어야 하냐”

그는 “이명박 정부에 고마운(?) 게 단체들이 단결이 잘 된다”고 말한다.

“단체들 특성상 각자 창구를 유지해야 하고 주된 협력 파트너가 누구냐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다양성이 민간의 특성이기도 하고. 그런 특징 때문에 ‘헤쳐모여’가 잘 안 됐었다.”

‘단결이 잘 된다’는 말은 재작년 무렵부터 북민협 등을 중심으로 정부를 향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한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대북지원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면서 정부가 ‘대북제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작년에 제일 많이 목소리를 냈다. 작년에도 그랬고. 근데 아무리 해도 정부가 요지부동이고, 국회의원을 만나봐도 표 안 되고 ‘퍼주기’ 문제 이런 것들 때문에 못 하고, 단체들도 지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김 총장은 ‘위풍당당’을 외친다.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위축되고 자포자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싸워도 안 되니까 포기하는데 그러지 말고 모금도 하고 우리 주장을 하자, 그게 여론사업이고 국민을 설득하는 거다. 우리가 기가 죽을 필요가 뭐가 있냐. 당장 물자를 보낼 수 있든 없든 뭐가 그리 중요하냐. 우리 마음이 중요하다.”

올해 봄가뭄과 큰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이어지고 국제곡물가 상승이 예상되는 등 북측 식량난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올 가을 곡물 생산량이 60만t 가량 줄어들 것으로 통일부는 추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단체들이 ‘캠페인’을 통해 범국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긴급 수해지원의 의미는 크다. 오는 11일 밀가루 500t이 처음으로 북측에 전달된다.

“특히 북민협이 개성을 방문해 수해지원에 합의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처음 만난 거니까 의미가 남다르다.”

그럼에도 그는 대북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로 ‘북이 어려우니 도와주자’ 라고만 접근하는 것보다 “우리 주장이 틀리지 않은데 위풍당당 이야기하자”고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 정권 내 강경세력의 입장은 북이 어려울수록 더 압박해야 무릎 꿇고 나온다는 것 아닌가. 그들은 현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달리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폈고 성공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김 총장이 ‘위풍당당’을 외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다. 겪고 또 겪다보니 오히려 중심, 원칙을 단단히 잡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나를 슬기롭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 총장은 “어떤 식으로든 민간교류를 해야 한다. 공장사업이 좋을지 밀가루가 좋을지 서로 생각도 다양하지만 남북이 민간의 필요성을 찾아가면서 자꾸 만나면서 통일의 주체역량이 강화되고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다”라고 말한다.

대북지원사업이 성장하면서 장기적인 구상도 다양해졌다. 겨레하나는 이후 방향이 ‘전문교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사업이 진행되면 갈수록 긴급 구호성 인도지원은 줄어들 거라고 본다. 이후에 전문 분야별 교류 쪽으로 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농업교류라면 농민 교류가 아니라 전문학자 간 만남을 통해 북과 우리의 농업이 상생할 수 있는 조건, 서로의 경제체제에 조응하면서도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민간의 역할을 찾아가려는 고민이다. 또 전문교류 할 때 북이 필요로 하는 기자재나 실험장비를 지원하면서 그 성과를 공유하는 형태로 가지 않겠나, 그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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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한 달 넘게 수해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정부가 지난 3일 북한에 수해지원 의사를 전달했고, 정부가 제의한지 7일만인 지난 10일 북한이 수용의사를 밝혔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남북이 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니 참 다행입니다. 수해지원 이야기가 나오니 벌써부터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간 후속대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출처. 세계일보

 

하지만 안심하긴 이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그렇게까지’하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더없이 악화되기만 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과연, 단초라도 마련할 수 있겠는지 걱정스런 마음이 앞섭니다. 남한이 북한을 ‘돕겠다’는 건데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MB정부가 50억원 상당의 초코파이를 보내려다 무산된 일을 생각하면 이번 일도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7일만에 답변을 보내오면서 북한은 특히 “지난해와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지난해처럼 쌀, 시멘트와 같은 지원품목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초코파이나 라면 등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해도 받지 않은 것을 올해는 받겠다 할리도 만무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남한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던 북한이 남측의 제의를 수용한데는 그만큼 수해사정이 급한 까닭도 있겠으나 공을 우리 정부에 넘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이 어려운 처지에 있어 초코파이나 라면이라도 보내겠다는 것이라면야 다른 문제겠지만 수해복구에 꼭 필요한 쌀이나 시멘트 등의 물품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원할 수 없다니 참 옹색한 노릇입니다. 신뢰하지 못하겠으니 주는대로 받으라는 것은 수혜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일일 뿐 아니라 남북이 한 민족이며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임을 생각할 때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한 달 넘게 ‘검토’만을 거듭했던 데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떠밀려 나왔을 수도 있고, 현 정부의 남북관계 성적표가 신경쓰였을 지도 모릅니다. 또 거기에는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했다가는 아니 한만 못하다는 예상도 있었을 겁니다.

 

기왕에 수해지원을 결정한 바에야 통크게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생색나게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도 스스로 인도주의 원칙을 훼손하면서 결국 신뢰가 바닥난 남북관계를 확인하는데 그친다면 안팎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아니 한만 못한 일로 한층 악화될 남북관계와 긴장의 후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수해지원 제의가 빈말인지 아닌지 지켜보겠습니다. 지난 5년, 위태롭기만 한 한반도 긴장과 높아질 대로 높아진 국민들의 평화피로감을 극복하는 길은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는 것뿐입니다. 정녕 MB정부의 남북관계 해법과 신념이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제대로 된 인도주의 원칙에 입각한 결단이라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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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5, 6월내 봄가뭄이 이어지더니, 7,8월 혹독한 폭염에 이은 폭우, 급기야 태풍, 때아닌 가을장마까지, 이놈의 날씨가 왜 이러나 싶게 고르지 않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변덕스런 날씨에 농민들의 한숨은 늘어가고, 환경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날씨걱정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날씨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북한 수해소식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올해도 북한의 수해가 심각하다 합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8월 4일까지 사망 169명, 실종 400여명, 이재민 21만명이 발생했다고 보도했고 그 이후에도 집중호우가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태풍 볼라벤으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9월 3일 보도된데 따르면 ‘태풍 15호의 영향으로 2일 현재 사망자수는 48명, 부상자와 행방불명자수는 50여 명’이라며 ‘전국적으로 6천 700여 세대(가구)의 살림집(주택)이 완전 및 부분 파괴·침수되고 2만 1천 180명이 집을 잃었다’고 합니다.

 

북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태풍 '볼라벤'의 피해 상황을 신속하게 보도하였다. (사진. KBS)

 

농경지 침수로 북한의 올해 식량생산량이 60만톤 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식량상황이 넉넉지 않아 해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북으로써는 매우 비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의 수해상황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 또한 분주합니다. 이미 평양주재 국제기구들이 피해 실태파악에 나섰고, 세계식량계획(WFP)은 쌀 336톤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3만 4천 달러, 유엔아동기금(UNICEF)이 25만 3천 달러, 국제적십자사가 3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독일과 영국의 NGO 들도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

 

당연히 우리 단체를 포함한 남쪽의 대북지원단체들도 수해지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4일 대북지원단체들을 대표해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 북측 민화협과 수해지원에 관한 실무협의도 진행하고 밀가루 3000톤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지난 8월 24일 북측과 수해지원을 합의하고 돌아온 북민협 대표단의 인터뷰(사진. KBS)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우리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되어 있는 데다, 지난해 수해지원 품목에 대한 이견으로 결국 지원이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50억원 상당의 수해지원 물품을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호응해 북한은 수해지원에 필요한 ‘식량과 시멘트’를 보내달라고 하자, 정부는 북한이 요청한 물품은 북한이 군사적으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며 초코파이와 영유아용 과자를 보내겠다고 주장해 결국 지원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수혜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공한다는 인도지원의 대원칙을 저버린 것도 문제거니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식량과 시멘트 등은 수해복구에 가장 필요한 것들 일텐데 말입니다. 북한이 84년 남쪽에 수해지원을 위해 보내온 물품도 쌀과 시멘트였습니다.

 

올해도 상황은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정부는 민간이 수해지원을 위해 보내려는 밀가루도 북으로부터 미리 분배계획서를 받지 못했다며 반출을 불허했습니다. (분배계획서란 북한에서 남한의 지원 물품을 받아서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얼마만큼씩 나눠주겠다는 계획을 밝힌 문서를 말합니다.) 자연재해로 한시가 급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긴급 구호를 하면서 분배계획서를 내놓으라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전례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사후 모니터링을 할 수도 있는데 굳이 문제를 삼아 반출을 불허하는 것은 결국 ‘하지말자’는 얘기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북한도 ‘꼬리표’가 붙은 남측의 지원은 받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대북지원단체들과 북민협의 수해지원도 무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상정입니다. 어쩌면 북을 돕는 이번 일이 악화된 남북관계를 어렵지 않게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부는 진정 모르는 걸까요? 84년 북한수해지원을 계기로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이 분단 40년 만에 처음 성사됐던 것처럼, 날로 악화되는 남북관계를 지켜보면서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입니다.

 

북한 수해와 수해로 고통받는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나눔이 필요합니다. 인도적 도움의 손길조차 가로막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돕겠다는 우리의 마음이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반드시 가닿기를, 가능한 지원의 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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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을 이것저것 늘어놓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분들은 북측 안내원들이다.

안내원들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분들인데 남쪽 NGO 일꾼들이 이분들을 빼놓고 북한을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쪽에게 북한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코드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북한 민화협에 대한 소개부터 하고 다음 편에 민화협 안내원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민화협의 위상과 관련하여 그분들과 주고받았던 대화가 기억난다.

 

: ‘민족화해협의회’가 민간단체인가요 정부 기관인가요?

: 당연히 민간이지요.

: 남측에서는 민간단체, 시민단체를 NGO 라고 하는데 그것은 비정부기구라는 뜻이지요.

     민화협이 비정부기구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선생들은 공무원인데요?

: 아니 무슨 말씀을! 당연히 NGO지요. NGO구 말구!!! 

     민화협은 북한 정부기관에 속해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쪽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를 상대하니 NGO라고 해야 되겠지요? 

     정부기관이면 민간단체와 이렇게 수평적 대화를 하기는 어렵겠지요?

: 흠..... 말이 되긴 해,

     North Gorvenmental Organization(비정부 기구가 아니라 북의 정부 기구)이라고나 할까.

     하하, 그러면 우리는 SNGO(남한 비정부기구)고 선생님들은 NGO(북조선 정부기구) 겠네요. NGO 선생님들!

 

북한 민화협은 조선노동당의 통일전선부에 속한 대남 화해협력사업을 하는 단체이다.

북한에도 대중단체가 많이 있지만 남한의 NGO와는 다르다.[각주:1]

잠시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북한은 국가권력과 북한 내부 주민들과 밀착되어 있는 편이다.

북한의 대중단체는 그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지만, 정부와 대립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정당도 청우당, 사회민주당이 있지만 조선노동당과 경쟁관계가 아닌 협력적인 관계라는 게 북의 주장이듯이

북한의 정당 사회단체와 정부와의 관계 역시, 서구식 다원주의의 개념으로 보면 안된다.[각주:2]

그러므로 북한에 정부와 일정한 대립각을 생명으로 하는 NGO는 존립할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북한을

고도화된 관료주의, 주민통제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는 거대 감옥이라고 볼지,

아니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일심단결된 사회로 볼지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

시민단체와 국가권력과의 유착을 금기시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 활동해온

남한의 민간단체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단히 심하여,

북한에서는 정권과 주민이 혼연일체라는 말을 믿기는 어렵다.

 

더구나 북한 정권의 수뇌부(?)야말로,

남쪽에서는 가장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므로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북의 민화협 분들도 남측의 이런 정서를 반영하여,

자신들이 민간의 편에서 민간 통일운동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악착같이 NGO라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선배가 있다.

 

“북한 민화협 사람들은 공무원이지 통일운동을 한다고 할 수 없어.

남한 통일운동가들은 정부와 싸우면서 감옥도 불사하고 꿋꿋하게 통일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내공이 민화협의 관료들에게 있을 턱이 있나?

남쪽 통일운동가들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

내공이 없으니 더욱 더 위에서 내려온 방침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거든!

공무원들이 통일운동을 알아?”

 

이런 공격에 대하여, 북한 민화협 분들은 억울한 표정으로 이런 항변을 한다.

 

“남측 분들이 우리의 고난의 행군을 압니까?

90년대, 주석님 사망과 동구권의 몰락, 북에 몰아닥친 엄청난 자연재해로 엄청난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조국이 망하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국 놈들에 맞서,

풀뿌리 캐어 먹으며 자주권을 지키며 투쟁했단 말입니다.

우리는 남측 선생들처럼 정부와 싸우며 민주주의 투쟁을 한 것이 아니지만,

정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논쟁이야 끝이 없을 테고,

문제의 핵심은 남한에서는 민간의 개념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인데 반해

북한에서는 정부와 민간은 서로 돕는 관계라고 보는 차이이다.

 

위상이 어떻든 내가 보기에 북한 민화협 분들은

남측 민간단체들이 북한 사회 내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남쪽 민간단체의 입장을 다 수용해 주지는 않는다.

북쪽 내부에도 사회 질서가 있고, 합의되어 있는 정책방향이 있으며,

남북관계가 자유롭게 교류할 만큼 서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북한 민화협 분들은 비교적 남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남한 민간단체의 요구의 의미도 잘 이해해주는 편이지만

북한 정부의 다른 부처나,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남쪽 민간단체들이 밀가루를 보내려고 할 때,

통일부에서는 적어도 세군데 이상의 영유아 시설에 직접 가서

분배현장을 꼭 확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지원을 승인한다.

남쪽에서는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북한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밀가루를 지원받는 지역의 인민위원회에서 남한에서 보내주는 밀가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려는 순간,

남쪽 단체의 분배 현장 확인 요청 앞에서 뜨악해 한다.

남쪽 민간단체들이 왜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지, 영유아시설을 참관하겠다면 즐겁게 방문을 도와줄 수 있지만,

분배를 확인해야 한다니 ‘손님이 아니라 감시자 아니나?’며 ‘그렇게 못 믿겠으면 뭐 하러 지원은 했는지’ 답답해한다,

 

당연히 분배 현장 방문에 고분고분 협조할리가 없다.

북한 민화협 안내원들은 이 인민위원회 분들을 설득하는데 아주 애를 먹는다.

그럴 때마다 안내원들은 남쪽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해주어야 하느냐는 인민들의 항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민화협 분들로부터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북지원이 실제 북 주민들에게서

이렇게 남쪽을 오해하는 계기가 될까봐 더 전전긍긍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은바 있다.

이런 사례 말고도, 북의 민화협이 우리와 어떤 합의를 하고나서

막상 북한의 내부에서 그 의미를 소통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에서도 이런 사례는 여러번 언급하듯이 말이다.

적어도 아까 그 선배의 말처럼,

북한 민화협이 북한 정부 시책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가끔 남한의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북의 민화협 아무개가 공작원인데, 피고인 누구누구가 그 아무개와 접선하여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식의

주장이 기소내용에 포함될 때가 있다.

통일부의 승인을 다 받고 사후 보고서까지 다 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공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다행히 대부분 민화협 안내원이 공작원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재판결과가 나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북한 민화협 당사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반론을 한다.

 

“우리가 지령을 내린다고요? 오히려 우리를 배후 조종하는 것은 남쪽단체들 아닙니까?

총장선생도 알다시피, 우리 민화협은 남쪽 단체들과 만날 때,

남쪽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우리는 남측의 그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여,

북 내부를 설득하느라 다리품 팔아가며 어렵게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측 민간단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측 민간단체가 우리 북 민화협을 배후조정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틀리는 말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 민간단체가 이렇게 북한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비록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해주기 바란다.

 

 

 


 

  1. 1> NGO 란 서구에서부터 출발한 지역-국가-국제적으로 조직된 <비영리 시민단체>로, 정부의 정책범위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 연대와 공공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인 공식 조직을 의미하며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본문으로]
  2. 2> 이를 자세히 이해하려면 일본제국주의 강점시대의 항일무장투쟁사부터 북 정권의 수립 까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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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남북이 협력사업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양 체제의 차이가 갑자기 드러나는 돌발상황이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남쪽 후원자들 앞에서 남쪽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발언을 하는 공장 지배인들도 있고,

역으로 남쪽 방문객들이 북측을 매우 민망하게 할 질문들을 쏟아내어 여러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북의 안내원이나 남쪽 대북협력사업자들이

슬기롭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임기응변과 기지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 대북사업자들보다는 해당 사업을 하며 방북을 했을 때,

오히려 남쪽 전문가들이 훨씬 더 북의 고민을 빨리 이해하고 답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번 글은 함께 방북했던 기계 제작 납품회사 사장님이 내게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준 이야기이다.

 

평양 룡성구역에 장류공장 설비를 지원할 때였다.

장류공장이란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드는 공장을 말한다.

북이 장류공장을 짓고 싶은데 남측에서는 현대화된 기계와 전기 승압장치 등을 지원해주고[각주:1]

북에서는 공장건물과 노동력을 맡아서 공장건설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방북할 때마다 룡성 장류공장 책임자가 부탁하는 지원 요청 품목이 자꾸 추가되어,

우리는 사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비용이 늘어나면 우리의 예산으로는 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 협력 사업을 할 때마다 발생하는 일이지만

공장에 페인트 칠을 새로 해야 한다던가, 공장을 운영하는 집기나 소모품 등을 추가로 요청하곤 한다.

북에서는 공장 건물과 노동력만 대고 나머지는 남쪽에서 협력하기로 정리된 사업장인지라,

북에서의 자체적인 예산은 받지 못하는 듯 했다.

우리는 기계 설비와 전기공사에 관한 것 빼고 웬만한 것은

다 거절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런 과정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안타까운지...

북의 사정을 보면 해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우리도 처음 후원자를 확보할 때 세운 예산을 초과할 권한과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설비 조립이 거의 완료되고 그 점검 차 방북했을 때였다.

당연히 남쪽에서 기계 설비 설치 전문가가 같이 동행하였는데,

그분은 남쪽에 웬만한 대규모 된장 고추장 회사들의 공장건설을 맡아했다는 <식품가공 기계제작 회사> 사장님이었다.

 

2007년 9월 평양 룡성구역의 장류공장에서 기계설비를 점검하던 모습

 

대략의 설치와 정상가동 상태를 점검하던 중

노동자가 삶은 콩 함지를 얹은 지게를 매고 철 구조물로 만든 계단 몇 개를 올라가

콩을 분쇄기에 쏟아 붓는 부분에서 북측 공장 지배인이 우리 사장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내용인즉 그곳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무거운 콩 지게를 어깨에 매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노동자의 허리와 어깨가 무사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사장님은 갑자기 ‘헉...!’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그러면서 남쪽에서 웬만한 고추장 된장 만드는 대기업의 기계 납품을 해보았는데,

어디에도 그런 설비를 갖춘 것은 없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쪽에서는 그냥 노동자가 하는 일로 일상화 되어 있어서 그 누구도 그런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쪽 사장님의 답변에 북 공장 지배인은 더욱 황당해 했다.

너무 당연한 설비 아니냐고!

남측에 그 크고 화려한 공장들에 그 정도의 자동화 시설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나는 실제 우리 식품회사 대기업에 그런 자동화 설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른다.

사장님 말이 그런 게 없다니 그런가보다 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북측이 좀 심하다는 느낌이었다.

남쪽이 인도지원으로 어렵게 자금을 구해 가까스로 그 사업을 할 경비를 마련하는데

남쪽에도 없는 웬 자동화 설비? 그것까지 주문하는 거는 너무 심하지 않나?

 

그림. 서영준 화백

 

 

쉬는 시간이었다.

사장님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그 설비를 해주고 싶다는 제안을 하셨다.

그 사장님은 이 사업의 실제 후원자인 안성시로부터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고용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돈을 내서 지원을 해주어야할 그 어떤 의무도 없는데 그런 제안을 하시는게 잘 이해 되지 않았다.

 

“아니 왜요? 거절하면 되는데, 사장님이 비용을 내서 하신다고요?”

내가 물끄러미 사장님을 쳐다보자 사장님 말은 더 뜻밖이다.

사장님 본인이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셨다는 답변이었다.

자기가 지금은 사장이지만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 출신인데,

노동자의 어깨와 허리를 걱정해주는 경영인이나 관리인은 없었단다.

작은 문제이지만 남쪽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북이 사회주의라더니 그래서 그런지 남쪽과는 좀 다른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림. 서영준 화백

 

망연자실...

똑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은 말을 듣고 나는 그 사장님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남쪽에도 없는 더 세련된 기계 설비를 요구 하는 것 같아

약간의 짜증까지 난 상태에서 어떻게 거절할지를 고민 중이었는데 사장님은 감동을 받았다니?

 

사장님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책을 통해 관념적으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배웠는데, 노동자들은 힘든 노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 차이인가?

책상에서 배운 이론적 이해와 삶을 통해 얻은 실제적 감수성의 차이인가?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노동자 혹은 노동자 출신이 겪는 고통도, 분노도,

따라서 노동현장이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주견도 없다...!!

 

갑자기 우리 사장님이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장사치인줄만 알았는데,

인정이 있고 사람의 삶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는 철학을 가진 분이었구나!

나는 남북협력사업을 할 때마다 합의안을 이행하기에 급급하여

정작 중요한 자기 성찰의 좋은 계기를 스쳐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일은 갑자기 내가 애초 남북민간교류를 통하여 추구하고자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것은 남쪽과는 전혀 다른 체제인 북녘에서 북쪽 분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서

우리와는 무엇이 다른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이 어떻게 확인되는지,

남북의 협력과정을 통하여 남북 모든 사람들의 분단이 어떻게 함께 치유되어야 하는지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입견과 좁은 틀에 얽매여 있었던 나 스스로를 해방하는 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류공장을 건립하고 준공식 이후 몇 년 동안 그 공장을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로 했으면 가 볼일이 있었으련만

공장 지어주는 것으로 완료된 사업이었기에 그 후 현장에 가볼 기회가 없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 사장님이 지어준 그 자동화 설비를 사진으로 찍어둘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1. 이 지원사업의 주체는 안성시였다. 안성시는 안성시 소속 바우덕이 풍물패의 평양 공연을 성사시킴으로서 바우덕이 풍물패의 우수성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싶어 했고, 북은 장류공장을 지음으로써 그 공연의 성사를 위한 북 내부에서의 명분을 만들자고 했다. 안성시의 장류공장 지원기금은 안성에 있는 기업의 후원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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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북한에 교육기자재 지원을 하고 평양을 방문하였을때 만난 1학년 2반 김성희 어린이의 사진이네요.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는 표정이 너무 귀엽습니다.

이 어린이는 지금쯤 소녀가 되었겠지요? 어떻게 자랐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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