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청춘남녀의 결혼이 가능할까?

2007년도 가을 어느 날, 평양 양각도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부회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남북 중매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정식 제안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였지만, 한번 생각해봄직한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발단은 민화협 여성 안내원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고려대학교 교수님 한 분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민화협 부회장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북측 민화협과 남측 겨레하나가 결혼 중매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만일 결혼이 성사되어 평양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평양에 아파트를 선물로 준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북한 민화협의 부회장이라면 실제 남북화해협력사업을 총괄하는 막강한 영항력을 갖는 분인데

그런 부회장님의 말씀이 그저 실없는 농담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귀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워 “정말이요? 진짜요?” 하며 당장 합의서를 쓰자고 했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던 민화협 안내원들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부회장님! 그건 안됩니다. 남북관계가 아직 거기까지 발전하지 못했는데 결혼중매라니요?

통일이 되면 그때 가서 하시지요”하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안내원들은 ‘존경하는 부회장님이 왜 저런 무리한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나에게도 연신 눈짓과 고갯짓으로 불가능하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내원들이 상급자의 말에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처음보는 장면이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때 부회장님께서 안내원들을 만류하시며 꺼낸 말씀은 더욱 뜻밖이었다.

“이 사람들아! 통일이 된 다음에야 겨레하나와 우리 민화협이 결혼중매사업을 뭣하러 하겠나?

그때 가면야 중매사업 없이도 실제로 결혼하는 일들이 많지 않겠나?

지금 우리가 결혼 중매사업을 하자는 것은 남북화해협력을 앞당기자는 뜻에서 하자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은 것이지 않겠나?

어떤가! 총장선생, 실제 우리 이 사업을 한번 해보자고!”

 

물론 이 모든 내용은 당장은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남북의 결혼을 합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중매 운운 하다가 자칫 견우직녀를 만들 셈인가?

 

그런데 나는 이 사업이 당장 실현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보다도,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한 부회장님의 발상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북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니!

그것도 젊은 사람이 아닌 민화협의 최고 높으신 분이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소신이 더욱 강해졌다.

 

무슨 소신이냐고?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남북민간교류사업을 하는 이유와 방안에 대한 것인데

‘남북민간교류에 왕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은 인도지원을 통해 민간교류를 하고 있지만 이과정이 유일한 정석은 아니다.

특히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재개되면 인도지원보다 더 다양한 교류아이템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며

기상천외한 다양한 생각 속에서 적절한 아이템들이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 발전, 혹은 통일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이며

창조적이고 개성있는 교류 사업제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남북민간교류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겨레하나 역시 지난 10년간

남과 북을 잇는 학술토론회, 영상교류, 풍물공연, 남북교수학생 한마당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오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실적 흐름을 배우고 성장해왔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분단 60년 만에 만나

서로 상대의 특성과 정서를 잘 모르니 좌충우돌을 겪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남북민간교류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민간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남북민간교류라고 볼 수 있다.

남북민간교류 영역에 제도화된 것은 실상 아무것도 없으며,

민간의 열정과 추진력이야말로 남북관계를 앞당기는 중요한 원천일 것 같다.

 

남과 북에 절절히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생겨나고 그들을 맺어주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면,

특별법 제정부터 시작하여 일을 추진하다보면

어쩌면 정말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첫발을 어떻게 떼나?

그 무슨 정략결혼을 위한 중매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청춘남녀 개별이 데이트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갈수 있을까?

아, 정말 이런 생각은 즐거운 공상이다.

그러나 단지 공상만이 아닌 정말 실현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남북교류협력을 무어냐고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말을 말한다.

“그거야 남쪽에서 구체적 이해를 놓고 남북협력을 절절히 원하는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자기의 소원을 푸는 것이지요.

아니면 분단상황이 너무 갑갑하여 남북관계의 발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다양한 꿈을 꾸는 과정이 아닐까요?

저는 두번째 경우에 속한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교류협력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민간교류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머지않아 열리게 될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부터 꿈을 꾸고 실력을 키워봄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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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2004년 인천에서 개최된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계기로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시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꿈꾸게 되었다.

인천시는 북한 개풍군과 인천을 있는 평화의 연육교를 건설하여,

인천경제 활성화를 모색하려는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한 이벤트로 다음해인 2005년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초청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인기가 좋았었고,

그들이 오면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인천시가 주도하는 인도적 대북지원부터 고민 되었는데,

물론 그 이면에는 인도지원 과정에서 인천시와 북한과의 독자적 파트너쉽을 만들자는 의중이 깔려있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는 이 사업의 중재역을 맡았다.

거의 10개월 가까이 걸린 오랜 협의 끝에

인천시는 당시 평양 거리 정비를 위한 도로 포장 원료인 피치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인천시장을 비롯한 대규모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여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인천에 오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런데 마지막 실무 절차를 마무리 점검하기위한 개성 회의에서 북한은 갑자기 돌발치 않은 내용을 통고하였다.

선수단은 보내주겠는데 응원단을 보내는 것은 취소하기로 결정되었느니 양해를 바란다는 것이다.

몇 일 전에 열린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지도부의 최종 결정 회의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육상 선수권대회가 축구처럼 구기종목도 없는데 길어봤자 10여 초면 끝나는 육상경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응원하느냐’는 내용이었단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의견이 제기되자 그 누구도 답을 내리지 못했으며,

응원도 못하는 곳에 응원단을 파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단 파견이 취소된 것이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애초에 좀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육상대회에서 화려한 집단 응원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왜 처음부터 하지 못했을까?

북한의 대대적인 인천방문의 효과를 올리자는 생각으로 당연히 응원단을 제기한 것이었으며,

그 과정까지 워낙 큰 쟁점들을 처리하느라 응원단의 활동이라는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허를 찔린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그 때 상황은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제기가 적절한가 아닌가를 떠나,

어렵게 이루어진 합의가 깨질 경우 벌어질 엄청난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했다.

응원단이 오지 않으면 북한 선수들은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북한’에게 대북지원까지 하며 일을 추진한 인천시장에게 비난 여론이 쏟아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다음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재선 역시 어려워질 것이고,

앞으로 다른 지자체들의 대북사업에도 좋지 않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뿐인가.

그 파장은 겨레하나로서도 감당하기 어렵다.

북과 합의를 한 당사자는 인천시이지만, 인천시는 겨레하나의 대북협상력을 의지해 일을 추진했고

협상의 고비마다 겨레하나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왔는데,

대북교류협력중재자로서의 겨레하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어휴!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나는 당장 평양으로 달려가 직접 이 사태의 심각성을 민화협 지도부에 직접 호소하고,

결정을 바꿀 수 있도록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던 인천시 공무원도 새파랗게 질려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한번 내린 결정을 바꿀 수 있을까?

그 결정의 이유가 틀린 것도 아닌데...

응원할 것이 없다는 문제제기를 어떻게 설득하지?

 

서울로 돌아와 겨레하나 회의를 열어 장고의 논의 끝에,

별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겨레하나의 처지를 봐서 재고 해달라는 것’으로 호소하자고 입장을 정리하였다.

 

당시 인천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있는 대북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겨레하나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때문이고,

무려 14번씩이나 인천시와 북의 협의가 결렬될 때마다 겨레하나의 중재로 다시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북이 인천시장과의 약속을 깰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겨레하나이며,

북과의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겨레하나에

이렇듯 엄청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가를 묻고,

응원할 것이 없다는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여파를 고려해 결정을 번복해달라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절박하게 북에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개성에서 결과를 통보 받고 닷새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일주일 내에 다시 민화협 지도부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그전까지는 도착해서 겨레하나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결정을 번복할 마지막 기회를 갖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민화협 안내원의 귀띔 때문이었다.

평양에 간 나는 거의 죽을 듯한 심정으로 민화협 지도부에 겨레하나의 사정과 관련된 호소를 전하였다.

결과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나는 태어나서 가장 긴 시간을 경험한 것 같다.

회의 결과를 가지고 민화협의 김선생이 나를 만나러 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림. 서영준 화백

 

“총장 선생, 대단합니다.

총장선생의 호소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응원을 할 것이 없다는 민화협의 결정을 살려

응원단이 아닌 ‘청년학생협력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북의 결정을 바꾸다니 겨레하나 대단한 실력인데요?”

 

이게 무슨 뜻일까?

그러니까 응원을 한다는 뜻인가 아닌가?

‘청년학생협력단’이라니 그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게 있었나?

무슨 뜻인지 감을 잡지 못하여 어리벙벙한 내게 김선생은 말을 이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은 응원단이 아닙니다.

한번 응원단 파견을 취소한 이상 이것이 번복될 수는 없습니다.

‘청년학생협력단’이 응원을 하기는 합니다만, 주요 임무는 응원이라기보다는

겨레하나와 협력하여 남북화해협력 분위기를 앞당기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초청한 것이 인천시와 겨레하나이니

인천시의 육상선수권대회에 북의 참가를 축하하는 축하공연도하고 남북공동응원도 합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라 겨레하나 청년학생 회원들과 협력하여 연환모임과 만찬을 열고 공연도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청년학생협력단’은 겨레하나의 호소를 듣고 겨레하나와 협력하기위해 인천에 가는 것입니다.”

 

와~!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됐구나, 이제 살았구나!’라는 심정이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겠다는 결심이었지,

결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의 호소를 받아들여 주다니...

마치 기적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당시 민화협에서 인천 동아시아육성선수권대회에 파견한 조직이 바로

금성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청년학생협력단’이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은 기존부터 있던 조직이 아니라 그때에 긴급 구성한 모임이라고 한다.

참 졀묘한 결정이었다.

응원단을 보낼 수 없다는 결정의 취지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인천시의 입장과 겨레하나의 입장을 전반적으로 충분히 고려하여

훨씬 더 의미가 있는 ‘청년학생협력단’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

정치는 명분이라고 했던가?

결정을 번복하면서도 모두를 감복시키는 방안을 만들다니, 무척 절묘했다.

 

또 북의 민화협은 나에게 생색내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총장선생을 믿고, 금성학원 학생들을 보냅니다.

그 애들은 워낙 순수하고 또 민감한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혹시 인천에서 공화국과 장군님을 힐난하는 사람들이라도 접하면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겨레하나가 책임지고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온 ‘청년학생협력단’에 리설주양이 있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이 인천에 머무른 내내 나는 그 호텔에서 숙식을 같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고,

남한의 관계기관원들의 별의별 눈총을 다 받고 간신히 호텔에 눌러있었지만,

그 학생들을 지켜달라는 북측 민화협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마음이라도 보이며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연환모임 행사장 앞에서 청년학생협력단이 춤추는 모습

 

만찬에 참석한 리설주의 모습

 

인천 동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는 무사히 잘 진행되었다.

청년학생협력단의 응원은 생동감있었고, 청년학생협력단의 2차례 축하 공연도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겨레하나’와 ‘청년학생협력단’의 연환무대였다.

남북의 청년학생들이 인천전문대의 캠퍼스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도시락 먹으며 어울려 놀았다.

말그대로 우리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남쪽 땅 한복판에서 이처럼 자유롭고 신명나는 통일 축제가 벌어질 수 있을까?

여타의 남북공동행사처럼 의전이나 딱딱한 연설도 없고 격식도 없이

남북의 미래인 청년학생들이 함께 추는 춤이야말로

앞으로 어쩌면 또다시 기대하기 힘든 감격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때 도시락과 함께 먹은 맥주 탓인지 나는 연실 눈물이 흘렀다.

이런 장면을 보려고 그렇게 마음을 졸였었나보다.

그리고 이런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가보다.

 

그 뒤 행사를 마치고 겨레하나가 다시 평양에 갔을 때,

북측의 민화협은 우리를 금성학원으로 초청하여 겨레하나만을 위한 특별공연을 마련해주었다.

남북관계가 회복되면 북한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리설주씨를 꼭 한번은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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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을 이것저것 늘어놓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분들은 북측 안내원들이다.

안내원들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분들인데 남쪽 NGO 일꾼들이 이분들을 빼놓고 북한을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쪽에게 북한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코드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북한 민화협에 대한 소개부터 하고 다음 편에 민화협 안내원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민화협의 위상과 관련하여 그분들과 주고받았던 대화가 기억난다.

 

: ‘민족화해협의회’가 민간단체인가요 정부 기관인가요?

: 당연히 민간이지요.

: 남측에서는 민간단체, 시민단체를 NGO 라고 하는데 그것은 비정부기구라는 뜻이지요.

     민화협이 비정부기구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선생들은 공무원인데요?

: 아니 무슨 말씀을! 당연히 NGO지요. NGO구 말구!!! 

     민화협은 북한 정부기관에 속해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쪽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를 상대하니 NGO라고 해야 되겠지요? 

     정부기관이면 민간단체와 이렇게 수평적 대화를 하기는 어렵겠지요?

: 흠..... 말이 되긴 해,

     North Gorvenmental Organization(비정부 기구가 아니라 북의 정부 기구)이라고나 할까.

     하하, 그러면 우리는 SNGO(남한 비정부기구)고 선생님들은 NGO(북조선 정부기구) 겠네요. NGO 선생님들!

 

북한 민화협은 조선노동당의 통일전선부에 속한 대남 화해협력사업을 하는 단체이다.

북한에도 대중단체가 많이 있지만 남한의 NGO와는 다르다.[각주:1]

잠시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북한은 국가권력과 북한 내부 주민들과 밀착되어 있는 편이다.

북한의 대중단체는 그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지만, 정부와 대립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정당도 청우당, 사회민주당이 있지만 조선노동당과 경쟁관계가 아닌 협력적인 관계라는 게 북의 주장이듯이

북한의 정당 사회단체와 정부와의 관계 역시, 서구식 다원주의의 개념으로 보면 안된다.[각주:2]

그러므로 북한에 정부와 일정한 대립각을 생명으로 하는 NGO는 존립할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북한을

고도화된 관료주의, 주민통제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는 거대 감옥이라고 볼지,

아니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일심단결된 사회로 볼지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에서

시민단체와 국가권력과의 유착을 금기시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 활동해온

남한의 민간단체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단히 심하여,

북한에서는 정권과 주민이 혼연일체라는 말을 믿기는 어렵다.

 

더구나 북한 정권의 수뇌부(?)야말로,

남쪽에서는 가장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므로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 북의 민화협 분들도 남측의 이런 정서를 반영하여,

자신들이 민간의 편에서 민간 통일운동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악착같이 NGO라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이런 주장을 하는 선배가 있다.

 

“북한 민화협 사람들은 공무원이지 통일운동을 한다고 할 수 없어.

남한 통일운동가들은 정부와 싸우면서 감옥도 불사하고 꿋꿋하게 통일운동을 해왔는데,

그런 내공이 민화협의 관료들에게 있을 턱이 있나?

남쪽 통일운동가들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

내공이 없으니 더욱 더 위에서 내려온 방침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거든!

공무원들이 통일운동을 알아?”

 

이런 공격에 대하여, 북한 민화협 분들은 억울한 표정으로 이런 항변을 한다.

 

“남측 분들이 우리의 고난의 행군을 압니까?

90년대, 주석님 사망과 동구권의 몰락, 북에 몰아닥친 엄청난 자연재해로 엄청난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조국이 망하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국 놈들에 맞서,

풀뿌리 캐어 먹으며 자주권을 지키며 투쟁했단 말입니다.

우리는 남측 선생들처럼 정부와 싸우며 민주주의 투쟁을 한 것이 아니지만,

정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논쟁이야 끝이 없을 테고,

문제의 핵심은 남한에서는 민간의 개념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인데 반해

북한에서는 정부와 민간은 서로 돕는 관계라고 보는 차이이다.

 

위상이 어떻든 내가 보기에 북한 민화협 분들은

남측 민간단체들이 북한 사회 내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남쪽 민간단체의 입장을 다 수용해 주지는 않는다.

북쪽 내부에도 사회 질서가 있고, 합의되어 있는 정책방향이 있으며,

남북관계가 자유롭게 교류할 만큼 서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북한 민화협 분들은 비교적 남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남한 민간단체의 요구의 의미도 잘 이해해주는 편이지만

북한 정부의 다른 부처나,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남쪽 민간단체들이 밀가루를 보내려고 할 때,

통일부에서는 적어도 세군데 이상의 영유아 시설에 직접 가서

분배현장을 꼭 확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지원을 승인한다.

남쪽에서는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북한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밀가루를 지원받는 지역의 인민위원회에서 남한에서 보내주는 밀가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려는 순간,

남쪽 단체의 분배 현장 확인 요청 앞에서 뜨악해 한다.

남쪽 민간단체들이 왜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지, 영유아시설을 참관하겠다면 즐겁게 방문을 도와줄 수 있지만,

분배를 확인해야 한다니 ‘손님이 아니라 감시자 아니나?’며 ‘그렇게 못 믿겠으면 뭐 하러 지원은 했는지’ 답답해한다,

 

당연히 분배 현장 방문에 고분고분 협조할리가 없다.

북한 민화협 안내원들은 이 인민위원회 분들을 설득하는데 아주 애를 먹는다.

그럴 때마다 안내원들은 남쪽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해주어야 하느냐는 인민들의 항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민화협 분들로부터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북지원이 실제 북 주민들에게서

이렇게 남쪽을 오해하는 계기가 될까봐 더 전전긍긍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은바 있다.

이런 사례 말고도, 북의 민화협이 우리와 어떤 합의를 하고나서

막상 북한의 내부에서 그 의미를 소통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에서도 이런 사례는 여러번 언급하듯이 말이다.

적어도 아까 그 선배의 말처럼,

북한 민화협이 북한 정부 시책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가끔 남한의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북의 민화협 아무개가 공작원인데, 피고인 누구누구가 그 아무개와 접선하여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식의

주장이 기소내용에 포함될 때가 있다.

통일부의 승인을 다 받고 사후 보고서까지 다 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공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다행히 대부분 민화협 안내원이 공작원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재판결과가 나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북한 민화협 당사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반론을 한다.

 

“우리가 지령을 내린다고요? 오히려 우리를 배후 조종하는 것은 남쪽단체들 아닙니까?

총장선생도 알다시피, 우리 민화협은 남쪽 단체들과 만날 때,

남쪽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우리는 남측의 그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여,

북 내부를 설득하느라 다리품 팔아가며 어렵게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측 민간단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측 민간단체가 우리 북 민화협을 배후조정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틀리는 말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 민간단체가 이렇게 북한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비록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해주기 바란다.

 

 

 


 

  1. 1> NGO 란 서구에서부터 출발한 지역-국가-국제적으로 조직된 <비영리 시민단체>로, 정부의 정책범위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 연대와 공공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인 공식 조직을 의미하며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본문으로]
  2. 2> 이를 자세히 이해하려면 일본제국주의 강점시대의 항일무장투쟁사부터 북 정권의 수립 까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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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