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북에도 우리의 국회와 같은 최고 인민회의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거기는 임기가 몇 년이죠?

그리고 전체 대의원 수는 몇 명인가요?

우리 국회의원처럼 세비를 받나요?

받는다면 우리 나라 원화로 보았을 때 얼마 정도 인가요?  

 

 - 김형민님의 질문입니다

 

 

A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공식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최고 주권기관입니다.

입법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지만

국방위원회 및 최고인민회의, 내각 등의 구성원 선출 및 소환의 권한을 가지는 등

헌법상 더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국가의 최고 주권기관입니다.

따라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공식적인 국가수반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는 5년으로 통상 인구 3만 명당 대의원 1명을 선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2009년 3월 12기 대의원을 선출했는데, 총 687명의 대의원이 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모습. 대의원들이 '대의원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고인민회의는 대개 3∼4월과 12월께 두 차례 열리는 정기회의와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이나 상설회의가 소집하는 임시회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98년 9월 10기회의 출범 이후엔 정기회의가 1년에 한 차례만 열리고 있습니다.

회기는 보통 2~4일입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별도의 세비는 받지 않습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지방인민회의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들은 인구 3만 명에 해당하는 직장, 지역의 대표자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처럼 직업적인 정치인은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모두 자기 직장에서 근무하는 생활인들이라는 것이죠.

1년에 두 번 정기회의에 상정될 의제를 직장, 지역별로 협의하고, 그 결과를 대표하는 방식입니다.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 최고인민회의의 역할을 보완하기 위한 기구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있는데요.

여기에 종사하는 간부들은 당연히 생활비를 받겠지만 액수가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단, 북한주민의 ‘생활비 기준표’[각주:1]에 따르면

당 지도원들이 약 3500원, 교수나 상급군인들이 4000~5000원 정도까지

생활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7월 1일,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직후 북한의 공식환율(1달러당 143원)로 따지면 약 24달러~34달러 가량입니다.

우리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3~4만원 가량이네요.

 

만족스런 답변이 되셨는지요.

우리와 북한은 정치·경제시스템이 너무 다르고 환율차이도 많이 나서 산술적인 비교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하기 위한 보다 많은 기회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1. 1> 북한 주민의 생활비는 국가가 일괄적으로 결정하는데 이에 따라 ‘생활비 기준표’라는 것을 발표해 왔습니다. 북한이 발표한 ‘생활비 기준표’에 따르면 사회주의 북한의 생활비 책정기준에 따라 농민이나 탄광노동자 등 생산직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많게는 50배까지 높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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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지난 달(5월) 25일,

 북한 남포에서 한 농부가 타들어 가는 농작물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황해북도 지역은 60년 만에, 평양지역은 105년 만의 최대 가뭄이라는데...

 최악의 가뭄사태 이후 더해질 식량난이 얼마만큼 규모가 될지 걱정이 됩니다.

올 하반기 대북 인도지원이 꼭 정상화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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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겨레하나는 겨레하나의 북측 사업파트너인 민족화해협의회에 팩스를 한 장 보냈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개선여부와 북측의 상황을 고려하여 미뤄왔던 북측과의 실무접촉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23일 북측은 ‘북남관계가 최악의 전쟁접경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실무접촉과 관련해서는 ‘귀 본부에서 해당기관의 승인을 받은 문건을 보대온 다음 협의하는 것으로 하였으면 한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사업파트너와의 만남 자체가 어려워졌으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측 팩스의 함의는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겨레하나가 읽은 행간의 의미는 첫째, 남측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바뀌지 않는 한 민간교류 자체가 가능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점, 둘째, 통일부가 불허를 남발하고 있으니 실무접촉 성사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조건에서 초청장을 내줄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생각됩니다.  

 

 

2011년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07년에 비해 1/10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그나마도 지난해 북에서 정부의 모니터링 기준을 거의 수용하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원을 했으니 분배모니터링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난 4년 간 통일부의 인도적 지원 반출승인요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졌고, 기준에 맞는 분배계획서, 3군데 이상의 모니터링이 가능한 사전보장확인서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다보니 북은 민간의 인도지원도 남측 정부의 ‘북한 길들이기’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은 지금껏 한 번도 모니터링을 거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사전문건보장서가 오지 않으면 승인을 못해준다’고 버티는 순간 북은 모니터링을 해주고 싶어도 ‘불신에 기초한 인도지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냐’고 되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필연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데는 우리 정부의 책임이 큽니다. 이산가족 상봉도, 인도지원도, 점점 조건을 강화해 마치 ‘북이 수용하지 않아 성사될 수 없다’는 식으로 남북대결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현 정부의 진짜 속심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북녘의 어려운 동포들을 돕고자 하는 순수 인도적 의미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서로간의 어려움을 헤아리면서 차이도 이해되고 더 큰 협력방안도 만들어 질수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마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강요되는 상황이야말로 현 남북관계의 가장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분간, 겨레하나와 북측 파트너간의 만남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겨레하나는 남북관계의 변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촉구하면서, 북녘 동포들에 대한 남녘 이웃들의 마음을 소중히 모아 담겠습니다. 그 마음들이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반드시 다시 열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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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의 '고난의 행군' 과연 나에겐 어떤 의미였던가?

 

북의 ‘고난의 행군’[각주:1] 은 9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북한의 위기상황을 극복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3년간 연속된 대 홍수로 온 나라가 물에 잠기는 등 유래없는 재앙이 몰아닥쳤다.

또 갑작스런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구상무역[각주:2] 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북한 경제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국제무역 결제 방식이 바뀌어 석유와 식량을 수입할 달러를 구할 수 없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기차와 자동차는 멈추었다.

물에 잠긴 광산에서는 더 이상 석탄을 캘 수 없었고,

기름과 원자재 없는 공장은 줄줄이 문들 닫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북의 최고 지도자 김일성 주석의 사망까지 덮쳐,

북한은 아마도, 3일내, 혹은 3주일 내, 그것도 아니면 3개월 내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국제사회에 파다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자신들의 체제에 순응 편입하기를 거부하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욱 봉쇄하고,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각주:3]

당시 상황은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에 맞서 북과 공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장도 멎고, 전기도 끊어지고, 먹을 식량은 없는 나라!

그런 나라가 생존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90년대 중후반 그것이 북한의 실제 모습이었다.

 

조국의 절반이 이렇듯 처참한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 재앙은 함께 극복해야할 뼈아픈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동토의 땅, 북한! 2대째 내려오는 그 독재자의 나라에 가엾은 주민들만 굶어 죽네'라는 느낌이었다.

먼 아프리카 어느 오지의 가난을 바라보는 같은 것이 객관적인 평가였을까?

아니 그보다는 더 냉소적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 정직한 이야기이다.

백만 아사설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회자되면서

97년 나는 잠시 북한 동포돕기운동에 아들 아이의 돌반지를 팔아 성금을 낸 적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북의 가난의 실체에 대해서 구체적 표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아마도 반공반북 교육으로 머릿속에 철저히 무장된

분단의 다른 한쪽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한 핏줄도 이웃도 아니며, 그저 관념 속에 존재하는 이상한 동네,

또 그런 이상한 동네가 과연 실제 하는지 실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감옥같은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재앙에 대하여 아무런 표상을 갖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분단으로 인한 이유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나에게 수해나, 빈곤의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그것은 일부 지역, 일부 계층의 문제였지, 전 국가적 문제인 적은 한번도 없었고,

'나'와 '우리' 에게 당장 닥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에서 ‘빈곤의 문제란

국가적 문제가 아닌 일부 저소득층의 문제’일 수밖에 없었고,

자연재해란 일부 시골에만 해당되는 지극히 예외적인 우발사태에 불과한 문제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적 빈곤’이라는 말 대신에 ‘국가부도 사태’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국가부도 사태를 예감하게 되면 온갖 것을 내주고라도 외자를 끌어들이고,

외자의 요구에 의해 국가적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계층 간의 갈등이 엄청나게 증폭되고,

마치 나라 전체가 외국자본이라는 전당포에 명줄을 저당 잡힌 꼴이 되어도 별수 없이 항복 선언을 한다.

 

또 항복 선언을 할지언정, 그 나라의 브랜드 가치, 외양적 화려함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그 모든 것이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중요한 담보’이므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속이 곪아도 겉은 화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

국가적 경제위기인 국가부도, 그에 대한 자본주의 국제사회가 대처하는 모습의 정석이다.

 

그런데 2001년 내가 본 평양의 남루한 모습, 숨기지 않은 국가적 빈곤!

그것은 그전에 내가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희한한 풍경이었고 설명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북한은 정말 자본주의식의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하지 않은 것일까?

또 북한은 자본주의식의 선택 대신 과연 무엇을 선택했나?

정권 유지인가? 아니면 북한의 말대로 국가적 자주권인가?

 

이후 북한을 드나든 10년간 늘 느껴야 하는 원초적인 질문이다.

평양은 나에게 그렇게 조용한 충격으로 ‘사회주의 자주국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위용을 드러냈다.

 

 

 


  1. 1990년대 중ㆍ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북한이 경제적으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제시된 구호를 말한다. 원래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1938년 말∼1939년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본문으로]
  2. 일정 기간 동안의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이루도록 두 나라가 협정하여 차액 결제를 위한 별도의 자금 지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역 제도 [본문으로]
  3.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은 베트남에 전투비행사를 보내 미군 전투기를 수없이 떨구어주었으며 부상당한 많은 베트남 병사들을 평양 병원에 옮겨 극진히 치료해주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은 그 베트남에게 쌀 지원을 요청했지만 베트남 당국자들에게 외면 당했다. 베트남 정부는 몇 줌 안 되는 쌀을 주면서 ‘미국이 북한에 식량지원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며 이해해달라’고 애청하였다고 한다. 이북의 외교관은 분노의 음성으로 그 쌀을 하노이에 있는 거지들에게나 주라고 하면서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러시아 패망이후 미국이 철저히 북한을 봉쇄한 것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북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브루스 커밍스가 바라본 북한(1)-70년대에는 북한이 더 잘 살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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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처음 마주친 북한 가난의 실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 생생한 충격

 

2001년 8월 1일부터 3일까지 북과의 사업협의를 위해 처음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에 대한 구체적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지는 않다.

기껏해야 ‘북한이 사상의 고향이라고 자랑하는 평양이라면,

사회주의의 위용을 한껏 드러낼 수 있도록 건설되어 있지 않을까?

서울처럼 화려하고, 정신없는 대신 그래도 조용하고 차분한 거리 풍경’ 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내가 본 평양은 썰렁했다.

 

8.15 축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면 시기적으로 보아 도시 꽃단장의 손길이 한창이어야 할 터인데,

그 단계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낡은 건물 보수공사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도로를 보수하거나, 낡은 건물을 보수하고 있는 장면조차

서울에서 흔히 보는 각종 대규모 현대식 기계 장비들은 없었다.

제대로 된 기계 장비 없이, 징이나 망치 하나 들고

벽에 매달려 뚜닥뚜닥 건물 보수를 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서울 변두리나 시골 장터 같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 쯤으로 돌아온 걸까?

이미 오래전 발전을 멎어버린 도시에 온 걸까?

8월 초순이면, 풍요롭고 조금은 늘어질 정도로 여유있는 계절이었지만,

함께 간 우리모두 심란한 느낌들을 지울 수 없었다.

 

줄줄히 늘어서있는 고층 아파트들은

오래된 회백색의 칠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정도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고,

대부분 건물 외벽이 페인트 칠없이 시멘트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외장재를 칠하지 않으면 건물 수명도 짧다는데....’

 

유리가 절대 부족한 듯 비닐로 창을 대충 막아 놓은 곳도 많았다.

평양의 중심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블럭들은 여기저기 깨진 체 방치되어 있었고, 버스들은 심각하게 낡은 편이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문득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TV로 보던 북의 모습이 떠올랐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남쪽 대표단이 탄 차량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을 달리는 장면이었는데,

시골 들판에 스프링쿨러가 돌아갔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감탄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 시골에는 저런 거 없는데, 대단하네?"

 

그 스프링쿨러가 남쪽 취재단을 의식한 장식용이었는지,

아니면 그 당시의 북한 농촌의 진짜 수준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북한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후에 철이 들면서부터 알게 된 사실은

70년대 혹은 80년대 중반까지는 적어도 북한의 경제가 남한보다 앞섰다는 점이다.[각주:1]

 

특히 평양은 사회주의의 위대성을 한껏 과시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잘 건설된 도시라는데,

그 70년대의 위용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만수대 공원'이니, '의사당'이니, '김일성광장'이니, '인민대학습당'이니,

유명한 건물 들은 그 기본 골격이 웅장하고 멋있어, 태초의 품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양 거리 곳곳마다 느껴지는 가난의 모습,

수도 평양의 모습이 이 정도인데,

북한이 겪었을 고난의 행군이 실체가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1. 최초의 평양주재 스웨덴 외교사절인 에릭 코넬 대사는 1975년 북한에 도착했다. 때마침 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북한 당국의 자부심과 기술숭배를 목격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 해 북한에는 서유럽과 일본에서 일체의 공정설비를 포함하여 상당한 양의 외제장비가 수입되었다. 북한은 최고의 병원에 최신식 지멘스 의료장비를 설치했고, ....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진 거대한 고급 건물과 극장들을 갖추었다. 정밀한 중앙통제실에서 컴퓨터로 운용되는 냉난방 · 전기시설을 갖춘 대규모 쇼핑몰들도 들어섰다. 소비에트 블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무역도 양상이 달라져, 1974년부터 79년 사이에는 비 공산권 국가들과의 거래가 동구권 수준으로 증가했다. 코넬은 북한이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거둔 성취에 찬사를 보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많은 주택단지를 건축했고, 모든 사람에게 무상교육과 무료진료를 실시했으며, 1970년대 남한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고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남한에서 보이던 광범위한 궁핍과 무주택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민주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대사로서는 당연히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출처] 브루스 커밍스가 바라본 북한(1)-70년대에는 북한이 더 잘 살았다. (229-23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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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악화에 악화를 거듭하더니 정말 무슨 일이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깊은 우려가 드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조선중앙TV 여자 아나운서가 '혁명무력의 대남 특별행동이 곧 개시될 것'이라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의 통고 내용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4월 23일, 북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 명의로 남측에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고 통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혁명무력 특별행동의 대상으로 ‘이명박 역적패당’과 동아일보, KBS, MBC, YTN 등 ‘보수언론매체’를 열거했습니다. ‘특별작전행동소조’, ‘혁명무력’, ‘특별행동’ 등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나열되고, ‘3~4분보다 짧은 순간에 초토화할 것’이라는 방법까지 제시됐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급기야 사태는 남북대결이 실전으로 번지는 최악의 국면이라도 막아야 한다는데 까지 나아가 버렸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남북화해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북만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탓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오늘의 불안과 위기는 지난 4년, mb 정부의 안보무능과 대북강경 일변도 정책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특히 최근 북의 광명성 3호 발사와 4.15 행사 이후 정부는 새로운 북의 최고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냈으며, 심지어 mb는 ‘중국을 통해 북을 봉쇄한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거침없이 북을 자극해 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화가 위태로운 지금도 '북한의 농지개혁 촉구', '통중봉북(중국과 대화하고 북한을 배제) 시대, 북한 인권 등을 계속 거론하며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헌데 대책없이 북한을 자극해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당자사인 정부는 최소한의 위기관리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이제라도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남북화해나 남북관계 개선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위기관리라도 해야 합니다.

 

 

국민은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 땅의 화해와 평화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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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북한이 오는 4월 15일경 사이에 실용위성인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발표를 두고 미국과 우리 정부는 물론 유엔까지 전 세계가 난리법석입니다.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하는데 미국과 우리 정부는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하네요.


인공위성 발사 로켓(발사체)은
인공위성이 지구의 인력과 서로 균형을 이루어 떨어지지 않는 속도까지 쏘아 올리는 것이 주임무입니다.
공기의 저항을 견디며 대기권 밖까지 위성을 운반하는 것입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원리는 같습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이름그대로
발사한 대륙과 먼 다른 대륙에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탄도 미사일을 말합니다.
사정거리는 대략 5500km 이상 입니다.
가능한 멀리 무기를 운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일단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렸다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공위성 발사 로켓(발사체)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노즈부(nose)에 위성을 탑재하는가 폭약 등 탄두를 탑재하는가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 구조는 동일합니다.
실제 미국이나 러시아에서는 구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조하여
위성발사에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성발사인지 아닌지는 발사 후 궤도 등을 분석해야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998년 광명성 1호, 2009년 광명성 2호를 시험위성으로 발사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미사일 시험발사냐 인공위성이냐’, ‘궤도에 진입했다, 못했다’,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98년 광명성 1호에 대해 미 항공우주국(NASA)이 시험용 위성임을 인정했고,
2009년 광명성 2호에 대해서는 러시아 외무부가 공식논평을 통해 ‘저궤도에 진입했다’고 확인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쏘아 올리겠다고 한 광명성 3호는 실용위성으로써
발사로켓은 ‘은하 3호’, 위성의 종류는 극궤도 지구관측위성이라고 합니다.
극궤도위성은 남극과 북극을 오가는 위성으로 관측, 탐사, 정찰 등에 사용된다고 하네요.


정치적 이슈를 배제한다면
북한의 첨단 과학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접근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의 발사체와 발사기술을 빌려 시도한 나로호 발사가
두 차례나 실패한 것에 비춰 보더라도 무시 못 할 수준입니다.


핵과 항공우주기술이라는 양대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는 것은 국가 주권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두 기술 모두 군사용과 민수용을 어렵지 않게 넘나들 수 있다는 쟁점이 걸려 있습니다.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핵발전소(물론 이 또한 논란이 많습니다)나 의료용으로 사용되지만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핵무기가 됩니다.
첨단 항공우주기술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면 인공위성이 되지만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인공위성 발사를 전문가들에게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결국 문제는 광명성 3호가 인공위성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북한의 우주과학기술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것’이라는 의구심,
북한은 ‘적’이라고 보는데서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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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농협해킹 북한 소행’ 에피소드는
잘 안되는 일만 생기면 ‘이게 다 북한 탓’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북한이 그렇게 뛰어난 기술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IT기술은 어느 정도일까요.


북한의 초기 하드웨어 산업은 남한보다 앞서 출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바세나르협정[각주:1]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386급 컴퓨터조차 수입이 제한되었으니

각종 첨단 기술이나 정보가 북에 전달되었을 리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뒤쳐지게 될 수밖에요. 그럼에도 불구,

최근에는 586(팬티엄)급 PC가 개발, 보급되고 있다고 하네요.


하드웨어 분야에 비해 소프트웨어분야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발전해 있다고 하는데요.

서방세계에서 북한에 OS를 지원하지 않아 자체 개발한 OS(붉은별)를 사용하고 있어요.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 중에는 인공지능, 퍼지이론, 영상처리, 문자인식, 지문인식, 음석인식, 기계번역 등
최신정보기술을 활용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1994년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품대회에서 북한의 지문감식 프로그램이 금메달을 받았고,

1998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북한의 은바둑이 1등을 하기도 했어요.

군사기술과 기초과학기술이 발달되어 있어
각종 제어시스템과 자동화시스템이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각종 군사무기에 들어가는 제어장치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들은 모두 북한이 자체 제작할 정도라고 하네요.


인터넷 보급은 어떨까요.


외부와의 인터넷 접속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트라넷은 2002년 11월부터 지역별로 운영해오던 컴퓨터 네트워크를 전국적인

연결망으로 구축하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인트라넷 가입자수가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이처럼 북한도 정보기술산업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고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니

인터넷 강국인 남한과도 통하는 부분이 많겠죠?


조선콤퓨터센터(KCC)가 삼성 등 남한의 기업들과도 공동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남북관계가 빨리 좋아져서 남북의 IT 기술이 시너지를 낼 날을 기대해 봅니다.



  1. 해체된 코콤(대공산권 수출통제기구)을 대신해 세계평화에 위협이 될만한 나라에 대하여 무기 및 기술 수출금지를 목적으로 1996년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이란, 이라크, 리비아, 북한 등이 규제를 받고 있다. 나토 15개국과 일본, 호주, 러시아 등이 참여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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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나는 수없이 북한을 드나든 몇 안 되는 남한 사람일 것 이다. 한 100번 쯤 될까?


일반 관광이나, 기자로서가 아닌 ‘협력사업자’로서의 방북이었다.
처음에는 3년간은 6.15, 8.15 등 남북공동행사를 준비하기위하여,
그 이후에는 인도적 대북지원단체의 사무총장으로, 인도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화교류를 논의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한달에 서너차례 평양 개성 금강산 등 북한을 찾았다.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를 서로 조정하여 공통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에게 너무 당연한 상식도 상대편에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서로간의 오해가 축적되어, 협력사업이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심정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다보면 상대방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게 되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화가 완전히 단절되고 소통이 먹통되는 순간들도 왕왕 있다.


그럴 때 남쪽 인사들은 북이 남쪽의 실정도 모른 체 너무 많은 댓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협력 등에서 북이 너무 진입단가를 높게 책정해,
남쪽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수를 둔다는 말들이 무성하게 나돈다.
또 사회문화교류에서 북이 남쪽을 외국과 달리 높은 진입장벽을 친다거나,
혹은 제한규정을 강화해서 ‘동포애’ 운운하면서도 오히려 남쪽을 압박하고,
결과적으로 불공정한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 모두 북이 남북교류협력을 하는 근본 이유는 '물질적 성과' 혹은 '댓가'라고 보는 견해에 속한다.



그러나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과 달리 이윤창출을 목표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다.
즉 ‘사회주의적 이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이다.
‘사회주의적 이념’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남북 협력사업에서의 ‘사회주의적 이념’은 때로는 ‘물질적 성과’일수도 있고,
때로는 그들이 말하는 ‘통일전선적 연대의 효과를 고려한 정치적 행위’일수도 있고
또 때로는 ‘역사적 평가와 대중적 시선’의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매 상황마다 그들의 판단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남쪽에서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북은 양파처럼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집단이며,
북의 결정방향에 대해서는 늘 예측불허라는 평가가 더 객관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 북한’ 사람들의 사고체계의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내고, <그 차이를 뛰어넘는 합의점 마련의 방도>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협력사업의 성사는 불가능하며, 더 나아가 남북화해협력의 길은 더 멀고 험란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느낀 분단 60년을 훌쩍 넘으며 <협력사업>을 하게된
남과 북의 여러 풍경들을 스케치하고, 갈무리하며,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던 여러 가지 소회들을 축척하기 위함이다.


아직도 썩 자유롭지 않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이를테면 <주적>인지,
아니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인지
그 애매모호한 헷갈림과 이질감을 염두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뜨거운 동포애적 정을 심장으로 느끼면서,
협력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그 어디메쯤 반드시 기록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동안 북한을 오고갈 때마다
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속의 <북한>과 실제 <북>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남북이 함께 창조해야할 새로운 길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했다.
지금도 그 새로운 길을 어찌어찌 개척해할지 명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에피소드를 적어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어쩌면, 사람들이 훨씬 더 명확하게 나에게 길을 일러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다.


각설하고, 남북관계도 가장 최악인 지금, 시간 있을 때, 그저 기록을 적어보자.
글 전체의 체계라든가, 짜임새라든가 그런 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아마 끝까지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생각하는 대로 두서없이, 메모장을 만들어 두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정리는 나중에! 좀 두서없어도 그게 시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아직도 표현의 자유가 그다지 넓지 않은 상황에서,
미처 쓰지 못한 내 마음자리의 어수선함까지 이글을 읽는 네티즌들은 헤아려주지 않을까?

이글을 읽는 분들의 피드백을 기대하며, 하나씩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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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