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나와 친해진 민화협 김선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아리랑 공연 시절에 자기는 일반 관광객들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내가 좀 얄미워 보였단다.

자기들은 연일 1000명 남짓 쏟아져 들어오는 남측 관광객들을 안내하느라

밥먹을 틈도 없이 정신이 없고 몸살이 날 정도인데,

상황실장이라는 웬 아줌마가 비행기가 도착할 시간이면 순안 공항에 들려 사람들을 쓱 한번 둘러보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하는 일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폼이나 잡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때 나의 속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이 지면을 빌어 하루하루 전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려한다.

나중에 남북교류가 전면화 될 상황에 참고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가을이라는 시기, 하루 300명이상의 관광객을 평양으로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얼핏 생각하면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설텐데,

선착순으로 쭉 비행기를 태워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왕복 비행기 값, 호텔 숙박비, 차랑 비용, 아리랑 공연 입장료 등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주중에 1박2일의 일정을 비우는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평양 관광의 초반부에는 겨레하나의 지역본부가 잘 구성되어 있는 인천이나 울산 등이

신속하게 움직여 대형 비행기를 채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상황은 쉽지 않았다.

 

겨레하나 총 17차의 평양 관광단을 태울 전세 비행기는 이미 예약이 완료였고,

탑승객이 한명이든 100명이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숨이 가빴다.

북한은 대략 12시까지는 이틀 후의 명단이 들어와야 신원 조회 후 초청장 발송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서울에 있는 겨레하나 사무실로 명단과 함께 인적상황 서류접수가 완료되는 시간 자체가 늘 12시를 넘기 마련이었다.

 

지역별, 단체별로 날짜를 미리 찜해놓았기 때문에 각 단체들은 그날 한명이라도 더 인원을 맞추려고 

회원들 독려에 열중해있었지만 단 며칠 만에 수 백 명이 뚝딱 접수되는 것은 아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가고는 싶은데 비용이 없는 사람, 일정조정이 안되는 사람 등

다양한 이유로 차일피일 명단 제출이 깔끔하게 완료되지 않은 채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틀 만에 북한 정부에서 신원조회를 끝내는 일도 촉박한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북한의 재촉이 시작된다.

명단이 늦게 오면 관계기관에서 출입심사를 할 수 없고 심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초청장을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인원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칙과 시간을 지키는 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성화였다.

몇 번 재촉을 해도 소용이 없으면 나중에는 전부 불허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서울로 전화를 걸어 명단을 빨리 보내라고 북의 잔소리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처음 평양에서 오는 전화를 서로 받으려고 아우성치던 서울의 겨레하나 사무실은

나중에는 서로 받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지역에서는 몇 시간만 몇 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고,

평양에서 오는 전화는 지금 ‘당장’ 명단을 보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촉을 해대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런데 평양에서의 내 느낌은

서울에 있는 겨레하나 상근자들이 북한의 분위기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 몇 개 적어 초청장이라고 보내주기만 하면 될 일을 왜 이틀 전에 명단이 올라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듯 했고,

그러다보니 너무 재촉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가 전달되어 왔다.

전화기를 통해 한명이라도 더 조직하려는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이 전해온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초청장 발송은 그저 서류상의 형식적인 절차 문제가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직은 엄연히 군사적 대치상황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신원조회도 하지 않고 평양 거리에 들어 보내는 상황을 방치할 수 있을까?

신원조회를 철저히 해도 자기네 정부를 비판하는 남쪽 관광객의 유인물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아리랑 관광도 중요하지만 테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북한의 국가안보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분단 60년 만에 이루어진 우리민족의 땅, 평양을 관광하는 일이라는 감격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이처럼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설령 몇 사람이 못 오는 한이 있더라도 신원조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울에서도 인식하고 각 단체에 시간을 엄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서울 사무실의 온갖 비난의 눈초리를 감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발휘하여 명단 발송을 악랄하게(?)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무총장님 평양에서 가 있다보니,

잠도 못자고 조직해서 보내는 우리의 심정은 전혀 헤아려 주지 않는다’

이런 심정이 아마도 당시의 우리 상근자들의 속마음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과정이었지만 그때는 초단위로 마음이 정말 초조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분이 북한 입국 금지 명단이므로 평양에서 초청장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서울로 전화를 걸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다.

혹시 탈북자라던가 아니면 반북 활동경력이라도 있나?

알아보니 그분은 오랫동안 재야 통일 원로들을 후원해주신 분이란다.

나는 그 분을 추천한 사람들의 면면을 제시해가며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북으로부터의 반응은

입국 불허 리스트에 있는 사람과 단지 이름만이 같은 것이 아니라 생년월일도 같다며 재논의는 불가하단다.

난감했다.

북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이분을 빼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울과의 장시간의 전화 협의 끝에 이분을 추천해주신 원로 선생님들과 일일이 통화를 하고,

북에서 이름을 알만한 통일 원로 선생님의 강력 보증을 세우고나서야 결국 초청장이 나오긴 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관광 시작 무렵에 날짜별로 주 예약단체를 미리 결정하는데 10월 6일에는 전혀 메인 단체를 발굴하지 못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개별인사 몇 사람만 태운 텅 빈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할지 모른다.

그러면? 그냥 겨레하나가 그날의 비용 적자를 감수하면 되나?

이 아까운 기회를 그렇게 보낸다는 게 말이 되나?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북을 다녀올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평양 직항 공비행기라니.

이것은 자존심 문제였다.

 

또 하나, 나는 실망할 북한 사람들도 떠올랐다.

겨레하나로 온 관광객들은 다른 단체와 달리 모든 사람이 손에 한반도기(단일기)를 흔들면서 입장하였다.

아리랑을 참관하였던 평양 시민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무척 감격하였다.

우리는 그저 관광을 간 것이지만, 그 한반도기 덕분에

평양 시민들은 남쪽에서 온 모든 사람들은 다 통일인사라고 생각했고,

남쪽도 북 못지않게 통일을 열렬히 바라는 줄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며

정말 반가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평양 시민들은 아리랑 공연 못지않게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남쪽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이 큰 이벤트였는데,

그날 하루 한반도기를 든 부대가 입장하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할까?

또 남쪽 관광객을 위해 배치된 수많은 민화협 안내원들, 평양 관광 탑승 차량 기사님들,

양각도 호텔 접대원들을 생각하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어떤 방법이...

 

그때 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이 낸 묘안이 효도관광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통일단체 실무자들의 부모님께 효도관광의 기회를 드리자!

어차피 뜰 비행기였으니 비행기 값 생략하고 아리랑 입장권과 호텔숙식비 정도만 받는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평양에 보내드릴 수 있겠다.

 

10월 6일 관광이면 명단은 4일까지는 제출되어야 한다.

10월 2일 정도에 방침을 결정하고 전국 통일단체 실무자 부모님의 효도 관광 참가자 모집사업에 들어갔다.

남쪽의 통일단체 상근자들이 우리의 이러한 결정에 환호하며

자신의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효도관광 모집사업에 나섰는데,

이 또한 과정에서 녹록치 않은 장애가 발생하고 있었다.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들이 많았고, 더러는 섬에 사시는 분도 있었다.

인적상황이야 자식들이 이래저래 보내주면 되지만 사진을 받아야 하는데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시골에 사시는 노인들이 사진 스캔은 물론 이메일을 보낼 방법이 별로 없다.

갑자기 시골까지 내려가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서 올라오는 사람,

혹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면사무소를 찾아가 직원들에게 부탁하여 자료를 보내주는 사람 등

별별 일들이 다 발생했다.

 

사진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갑자기 보내오는 수많은 사진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잘 가려서 연결시키는 것도

예상치 못한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이래저래 얼기설기 보내오는 전자사진을 보고 누구의 부모님인지,

그 사진을 보낸 실무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초단위로 시간을 재며 사진과 명단이 오긴 했지만 서류작업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마침내 16일 순안공항에서 예견된 상황이 발생했다.

부모님들의 사진과 명단이 서로 바뀌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고,

순안 공항 입국대를 통과할 수 없는 분이 대략 7~8명 정도 생겼다.

원칙대로라면 그분들은 꼼짝 없이 그날 비행기 편으로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북한 안내원들은 이 상황을 수습할 대책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동승한 방문객 중에 신원을 보중해줄 지인을 찾기도 하고,

사진과 얼굴을 일일해 대조하여 바뀌어진 사진을 다시 바로 잡았다.

 

지금이야 여유롭게 이야기하지만 그 상황은 정말 진땀나는 상황이었다.

사실 외국에서 여권사진이 바뀌게 될 경우 입국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도 여기는 평양이고 우리민족의 일이니까,

북한 분들도 문제를 해결해볼 실마리를 찾아 끙끙대고,

우리도 ‘설마...’ 하며 포기 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던가?

민화협의 담당 책임자가 뒷덜미를 만지며 나타났다.

“총장선생, 내 목이 아직도 남아 있소? 이런 식으로 사업하다간 내 목이 몇 개라도 모자라겠습니다.

허허,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지요!”

 

그때는 정말 전쟁이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금단의 땅에 하루 100여명을 관광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통일부는 직원이 모자라 민간단체인 우리가 통일부에 자원봉사자를 보내서 업무처리를 도와야 할 형편이었고,

평양 상황실, 서울 겨레하나 사무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돌아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고, 어쩔수 없이 남북교류초년생인 우리 모두는 이렇게 민간교류를 연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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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남한 관광객을 가득 태운 전세 비행기가 서울과 평양을 날마다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평양을 관광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늘은 그때 평양 관광이 시작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소개하겠다.

 

2005년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겨레하나는 평양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는 민간교류가 무척 활발하던 시절이었고 우리 팀 말고도 많은 대북지원단체들이 호텔마다 북적거렸다.

또 백두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6차 장관급회담의 장소가 평양으로 변경되어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평양에 있었다.

15일 저녁 갑자기 북한 안내원이 능라도 5.1경기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10만이 참여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자고 했다.

 

그때까지 남한 정부가 금기시하던 <아리랑>공연이라 관람해도 좋을지 걱정했지만

VIP석에 앉아있는 정동영 장관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리랑>공연 기간 동안 남측 사람들의 평양 관광을 허용하며,

각 지원단체들에 모집 참가권을 주겠으니 최대한 많이 참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남한 정부의 승인여부를 걱정하는 내게 정동영 장관이 정부차원에서 적극 도와주기로 했으니 걱정 말란다.

 

 

 

그러면 잠시 아리랑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2000년 10월, 대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공연에 왔던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인공위성 발사장면과 ‘우리를 건드리는 자 이 행성 위에 살아남을 자리 없다’는 카드섹션을 보고 기가 질렸다고 했던가?

그때보다 훨씬 다채롭고 부드러워진 내용으로 바뀐 대집단체조 <아리랑>은

10만 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치는 대 집단체조 군무와 카드섹션으로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당시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대화를 중단하고 ‘악의 축’ 발언을 하는 등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아리랑> 준비과정을 대내외에 공개하면서 서방 세계 관광객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즉 북한은 '아리랑' 공연을 통해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 메시지'를 보내려고 의도했던 것 같다.

<아리랑> 관람에 남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참가한다면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의 여파는 더욱 커질 것이다.

자연히 북한은 그때까지 절대 불가하다던 남한 사람들의 평양관광을 한시적으로나마 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무나 신청만 하면 가능한 평양 관광은 남북관계 발전과 민간교류에 있어서 또 한번의 도약이었다.

남쪽에서는 그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던 평양임에도 불구하고,

문턱이 너무 높아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일반 여행사에게 모집권을 줄 수도 있지만

북한은 아직 상시적인 관광이 아니어서 서로간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북과의 민간 교류경험이 많은 지원단체들을 중심으로 이사업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했다.

 

겨레하나로서는 남한 방문객을 엄격히 제안하던 그 시절에

무작위적 관광을 허용한다는 제안도 무척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때마침 아리랑 공연을 한번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어서

로또가 당첨된 심정으로 이 제안을 적극 수용하였다.

 

<아리랑>에 대한 남측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리랑>은 집단주의 사회인 북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일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을 혹사시키는 반인권적 요소가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예술성과 대담한 스케일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리랑>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다양하지만 우리와 화해 협력해야 할 동반자인

북한의 특징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쪽 사람들도 꼭 한번은 보아야할 공연이다.

특히 그동안 남쪽 사람들이 인도지원 물품 분배 현장 확인 차 방북하여

북의 경제적 어려움만을 목격해 왔다면,

아리랑 공연 관광길에서는 북한의 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얼마나 모집해 올수 있겠냐는 북 민화협의 질문에

직항 비행기로 약 15회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당장 20일부터 첫 관광을 시작하잔다.

 

아이쿠.... 그 무슨 번개 불에 콩 구워 먹을 소리를!

우리가 서울에 도착하면 17일 저녁이며 그날부터 대한민국은 이미 추석휴가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 다음날 18일 일요일이 추석이므로 모든 업무는 이미 중단되어 있으며

빨라야 20일이나 되어야 출근과 모든 공적 업무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회의절차와 실무적인 일이 하루 만에 끝날리도 없거니와 더 큰일은 비행기를 구하는 일이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에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과연 비행기가 있을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화를 치는 북한의 심정이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있던 겨레하나 임원들도 직감적으로 이 사업은 무조건 빨리 내질러야 될 사업이라는 느낌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아리랑>의 내용을 둘러싸고 보수언론의 집중 선제공격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아직 남쪽은 그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한명이라도 더 많이 보게 하여 시민들의 입소문으로 평양 관광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대적인 평양 관광, 그것을 가능케 하기위해 북한에 무엇을 요청해야 할까?

그때 불현듯 생각난 것은 평양에 임시 상황실을 개설하고 남북 직통 전화와 팩스선을 설치하는 문제였다.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 명단과 초청장을 주고받는 일,

사전에 차량과 호텔 객실을 배정하고, 확인되지 않은 신원에 대해 남북이 협의하는 등

모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남북의 직접 대화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은 대대적이고 신속한 평양 관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동의해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그날부터 정신없이 준비 작업을 몰아쳤다.

겨레하나 직원 한 명이 아예 아시아나항공에 눌러 앉아 없는 비행기를 내어달라고 생난리를 쳤다.

다행히 그때 장기 예약되어 있던 비행기 한 대가 예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좀처럼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던 전세비행기 계약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진행된 대규모 관광객 유치와 그에 따른 실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수십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전화기 수십 대를 설치했다.

또한 관광 리플렛 제작, 관광객 교육 및 서류정리 등으로 겨레하나 사무실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다.

 

드디어 9월 26일!

겨레하나는 약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한 달동안 계속된 평양역사문화유적과 아리랑 참관 사업의 첫발을 떼었다.

평양에서 제안을 받은 지 10일만이었고,

가운데 추석 연휴를 고려한다면 1주일도 채 안되는 기간에 전광석화 같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후 한 달 넘는 기간에 겨레하나를 비롯하여, 평화자동차, 지원단체들은

만 명이 넘는 인원으로 평양 관광과 아리랑 공연 관람의 붐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양각도호텔에 사무실을 내고

상황실장을 맡아 5명의 상근자와 함께 상주했다.

 

양각도호텔에 도착하여 가지고 간 팩스기를 연결하고, 전화가 개통되는지 점검부터 시작하였다.

그 시간이 아마 9월 26일 오후 1시경이었던 것 같다.

통화연결음 소리가 들리고, “여보세요. 여기는 평양인데요”하는 순간

전화기 저쪽에서 들리는 겨레하나 사무실의 엄청난 환성소리 “ 야 ! 평양이란다. 전화가 된다. 우와!”

서로서로 통화를 해보겠다는 아우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앞으로 닥쳐올 고생길이 구만리 같은데,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전화기에 매달려 천진한 어린애들 마냥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했다.

 

남한 사람들의 대규모 평양 관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언제 다시 그런 평양관광을 갈수 있을까?

 

우선은 금강산 관광재개가 시급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다시 재개된다면 그다지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아리랑 공연에 대한 남쪽의 평가와 관광을 둘러싼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다음번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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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아리랑 공연기간 중에 벌어진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다.

 

북측의 남측 관광 담당 안내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남측의 관광객이 양각도 호텔에 성경책을 뿌렸다는 것이다.

‘성경책?’ 그 두꺼운 성경책을 무슨 수로 뿌렸을까?[각주:1]

성경책을 뿌렸다고 저렇게 난리를 치나?

북측이 종교문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공포분위기가 조성되어 남측 관광객들의 거부감이 커질텐데 어찌해야 하나?

 

막상 문제의 ‘성경책’을 보니, 그건 성경책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증인’ 분들이 들고 다니는 <파수꾼> 형태의 얇은 소책자로 된 유인물이었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것은 외관이 아니라 내용이었다.

포교를 빙자한 반체제 선전물...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한껏 동정하며

‘종교를 탄압하는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고 자유의 남한 품에 안기라’는 반체제, 탈북 선동 유인물이었다.

그 어디에도 종교 본질의 복음과 사랑을 전파하는 아름다운 내용은 없었다.

 

직감적으로 이 유인물이 평양 시민들 손으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등의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남쪽 관광객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북한 정부와 주민들의 단결은 완전 견고하다.

자기 지도자를 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느끼는 평양시민들이 이 유인물을 본다면,

남쪽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할 것 같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평양 시민들은 ‘김정일 장군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에서는 한결같이 열렬한 편이다.

또 남쪽의 분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을 갖고 있지만,

자신들의 체제를 비판하는 시선이나 말들은 설령 농담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정도의 유인물을 본다면 싸늘한 시선은 물론, 심하면 돌팔매를 해대지 않을까?

전체 남측 관광객을 보호하고, 모처럼 활발해지고 있는 남북 민간교류를 매끄럽게 확산시켜야 하는

남쪽의 민간교류 실무 책임자중 한사람으로서 갑자기 임무의 중요성에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남쪽 분들에게 유인물을 돌리지 말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정작 이 유인물을 돌린 범인(?)은 순교하는 자세로 악착같이 유인물을 돌리고야 말 것인데,

어느 가방에 유인물이 들어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손님들의 가방과 객실을 일일이 뒤져볼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영문을 잘 모르는 일반 관광객들에게,

평양에 가니 포교활동을 억압하더라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된다.

그러면서도 유인물 배포는 막아야 한다!!!

유인물이 돌고, 소동이 일어나면 아리랑 참관을 중심으로 한 평양 관광은 일시에 중단될 수 있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할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그날 평양에 들어온 모든 남쪽 관광객을 일일이 살펴보고 밀착 포위하여

더 이상 유인물 배포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즉각 남쪽 관광객의 소속단체 등을 일일이 살펴보며,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에 착수했다.

조금이라도 의아하다 싶으면 남쪽에 그 관광객을 보낸 해당단체에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기도하고,

그러다보니 한 두 사람으로 반경이 좁혀졌다.

 

우리 상황실 6명은 그 분들을 집중 포위하여 잘 보호하였고

평양을 떠나는 순간까지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고 관광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그림. 서영준 화백

 

 

사실 지금도 그분들이 유인물을 뿌린 범인(?) 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더 이상의 유인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모든 남쪽 관광객들은 편안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평양 시민들은 남쪽의 모든 관광객들이 북을 존중하고 남북화해협력을 열어가는

좋은 분들이라는 믿음을 손상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래서 남북관계는 더욱 발전되어 가는 것이지.....

 

남북화해협력을 주업으로 하는 직업이라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군!

그날 들어온 남쪽 관광객을 무사히 서울로 돌려 보내드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 본 일급 안전요원 같다며 박장대소했다. ㅠㅠ !

 

 

 


  1. 참고로 북은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나, 교회가 아닌 곳에서 적극적인 포교활동이 허용되는 나라는 아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서울 사람들은 역시 북한은 자유롭지 않은 곳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은 남한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면서도, 북한의 사상이나, 체제를 칭찬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결국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자신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입장에 관용을 베푸는데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남한이 북의 주체사상에 민감하다면, 북에서는 남한 식 종교활동과 포교에 대해서 민감하다. 북한에서의 종교는 ‘체제와 대립하지 않으며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남쪽에서 온 종교인들 중 일부는 ‘종교를 빙자해 북의 체제를 비난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역설하면서도, 무제한적 포교에 대하여서는 날을 세워 강하게 통제한다. 남한 사람들은 포교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종교의 자유가 과연 제대로 된 자유인지 의아해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지만, 북에서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탄압받는 사람은 없을 뿐만 아니라, 일요일 날 예배보러 교회를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이런데도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주장은 너무 일면적인 생각이 아닐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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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번에는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한 협의 중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겠다.

남과 북의 시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이라 글을 읽는 분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다.

 

2005년 7월부터 몇차례에 걸쳐 있었던 '한국 관광공사'의 실무협의였다.

'관광공사'는 공사 주도의 북한관광을 성사시켜, 한반도 전체의 관광벨트화를 실현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금강산이나 백두산 관광 등 북한의 관광문제는 모두 현대아산에게 밀렸던 터라,

특히 평양 관광 만큼은 관광공사 주도로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름 절박했던 것 같다.

 

관광공사의 입장은 도로안내판 재설치나, 기타 북이 원하는 평양 리모델링을 도와주고,

관광공사의 이름으로 시범관광부터 해보자는 계산이었다.

 

개성에서 두 세번의 실무 접촉 끝에 북에 적정량의 페인트를 지원하고,

전세 비행기 한 대 정도의 대표단이 평양, 묘향산을 방문하는 것으로 대강의 윤곽이 그려졌다.

논의가 비교적 빨리 마무리 되어 합의서에 양쪽이 모두 싸인 만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관광공사는 '평양 리모델링용 페인트를 지원하고 시범 관광을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합의서의 남측 초안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북이 “관광에 합의한다는 내용은 명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전혀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이었다. 이제까지 논의 된 사항이 아닌가?

 

관광공사는 ‘평양 시범관광용’이라는 명분으로 살림집(아파트) 외벽용 페인트를 지원할 수 있다고 누차 이야기했고,

북도 관광공사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논의를 진행시켜 왔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북은 관광공사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과, 합의서에 '관광'이라는 말을 명시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인즉,

북은 남쪽 국민들에게 '평양 관광사업을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시책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조건에서

마치 관광공사와 그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듯 '관광'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고 하였다.

 

평양에 올수는 있으나

페인트를 지원해준 것에 대하여 답례로 오는 것이지

일반 관광객들에게 관광시켜주는 것은 아니란다.

 

관광공사는 난감해 하였다.

북에 페인트를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은 시범관광을 하기위한 것인데,

그 명분을 합의문에 명시할 수 없다면 기금 마련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저런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장기적 관광합의가 아닌 일회성이라는 점,

그저 명분용 문구일 뿐이라고 사정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종일관 대꾸도 없이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는 북!

적어도 30분 이상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내가 '관광'이라는 표현을 '참관'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북은 표정이 단박에 환해지면서 동의한 반면,

이번에는 관광공사 측에서 '참관'이라는 뜻은 동의하나 합의서에 명시할수 없는 표현이라고 '불가'를 주장하였다.

 

다시 침묵의 시간....

 

나는 처음에는 북이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를 단지 유연성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너무 가벼운 판단인 듯 싶었다.

'관광'이라는 문구에 그토록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북의 입장이 나름 이해되었다.

 

'페인트를 지원하고, 평양에 가는 것'의 의미는 정확히 보면 순수한 인도지원이라기 보다는

‘관광을 위한 선 투자 개념’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고,

북은 그 당시의 시점에서 관광공사 방문이 관광개방으로 비추어 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 같다.

 

'북이 얼마간에 페인트를 받고 관광공사의 평양 관광이라는 시장개방정책에 합의해준다? '

<개혁, 개방>이라는 자본주의적 시장개방 정책과도 잇닿아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되니, 단지 유연성의 문제로 보고 합의를 유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관광공사는 결국 북에 페인트 지원을 했고,

얼마 후 2005년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133명의 대표단이 북의 융숭한 대접과 안내를 받으며 평양을 참관(관광)할수 있게 되었다.

 

합의문은 어떻게 작성되었느냐고? 그것은 여기에서 공개하지 않겠다.

나는 남과 북의 엄청나게 예민한 차이를 넘나들며 협력사업을 해야 하는 협력사업자니까!

 

 

그림. 서영준 화백

   

다만 여기서 정작 내가 정말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는 장면을 한가지 더 이야기해야겠다.

 

돈을 들고 북을 지원하겠다는 관광공사는

북을 달래기도 하고, 호소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든 합의서를 작성하려 땀을 뻘뻘 흘리는데,

북은 '관광불가'를 선언한뒤, 남측을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는 장면에 대해서 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북의 태도가 고압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세상에!

돈을 들고 있는 쪽에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이렇게 저자세일수 있을까?

 

그러나 진실은 이런 것이었다.

북은 인도적 지원사업자인 내게도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동족의 어려움에 대하여 함께 해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우리는 고마워합니다.

겨레하나는 댓가성이 아닌 순수한 지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북남협력사업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통일애국사업입니다.

댓가성 거래가 아닌 통일애국사업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우리가 할수 있는 예우는 다 할 작정입니다.'

 

그러니까 북은 관광공사가 '명분'을 주장하는 속사정은 이해하나,

어떻게 하든 이 사업이 통일애국사업으로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시범관광을 위한 댓가성 지원은 용납할 수 없어 관광공사의 입장이 정리될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당신들은 순수한 통일애국사업을 원하는가, 아니면 거래를 원하는가?' 이 질문을 해 놓고는

관광공사의 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튼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기에 이상한 현상이다.

북을 지원해주겠다는 남측에서 북에 이것 저것을 합의해 달라며 아우성을 치거나 화를 내고,

정작 도움을 바라는 북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고....

 

북이 너무한가? 아니면 남이 경박한가? 그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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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