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주차장에서 대북전단보내기 국민연합 회원들이 대북전단 풍선을 날려보내고 있다. 이들은 임진각 망배단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려 했으나 임진각 상인과 문산 주민들이 망배단에 집회신고를 내고 항의하자 자리를 옮겨 풍선을 띄웠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지난주부터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하여 임진각 주변은 초긴장 상태인데,

22일(강화), 25일(김포)에 이어 오늘(파주)도...

보수단체들은 계속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고 있네요.

앞으로도 비공개로 계속 전단살포을 하겠다고도 합니다 T.T

 

정부조차 우려하는 일이고,

지역주민들의 불안과 격렬한 반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마치, 전쟁이라도 해보자는 식으로 이러는 이유가 뭘까요?

 

많은 이들이 추측하는 바대로,

북풍을 조장해서 선거때 보수에 유리한 판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면

이제 그런 전략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전쟁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를 원합니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위험천만한 게임을 당장 그만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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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을 통해서 두 국가가 핵무기 경쟁을 하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두 국가를 A와 B로 놓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경우를 협력(C)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배반(D)로 가정했다.

 

 

A국가와 B국가가 서로 협력하여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기로 한다면 무기 개발에 사용되는 비용이 줄어들어 (3,3)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A국가와 B국가가 서로 배반하여 각자 핵무기 개발에 전력한다면 무기 개발에 사용되는 비용이 증가하여 (2,2)의 이익만을 얻게 된다. 만약 둘 중 한 국가는 핵무기를 포기했지만 다른 한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4,1) 또는 (1,4)의 이익을 얻게 된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국가가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므로 4의 이익을 얻고,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는 1을 얻는 것이다.

 

이 때 A국가의 입장에서는 B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든 그렇지 않든 핵무기 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먼저 B국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즉, B국가는 협력(C)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때 A국가도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 협력(C)하기로 하면 두 국가는 (3,3)의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A국가가 B국가가 핵무기를 포기한 틈을 타서 핵무기 개발을 하기로 배반(D)하면 두 국가는 (4,1)에 상태에 이른다. A국가의 입장에서는 3보다는 4의 이익이 크므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만약 B국가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즉, B국가는 배반(D)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때 A국가만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 협력(C)을 택하면 두 국가는 (1,4)에 이른다. 하지만 A국가도 핵무기를 개발하여 배반(D)을 택하면 두 국가는 (2,2)에 이른다. A국가의 입장에서는 1보다는 2의 이익이 크므로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가들은 핵무기 개발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2,2)의 상태에 이른다. (3,3)이라는 더 좋은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다른 국가가 무슨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고, 근시안적 자기이익만 챙기는 것이 이득인 것이다. 물론 사회 전체, 세계 전체적으로 보면 이는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자세히 보면 상대는 핵무기를 철회했지만 나 혼자 배반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경우가 있고, 상대가 먼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핵무기를 보유해야만 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를 탐욕(greed)라 한다면 후자는 공포(fear)라 할 수 있다. 탐욕 또는 공포가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사실 남이 날 해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는 매우 인간적이다. 그러니 이 경우는 잠시 미뤄두자. 하지만 욕심 때문에 핵무기를 먼저 꺼내드는 상황은 좀 막아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상대방이 협력하는 상황이라면 나 역시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조건을 바꿔주면 된다. 이를 다시 게임이론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아지는데, 이를 사슴사냥게임이라 한다.

 

 

이 게임은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A Discourse on Inequality)>에서 나온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두 명의 사냥꾼이 있는데, 둘이 힘을 합치면 사슴을 사냥할 수 있지만 각자 사냥을 하면 토끼만 잡을 수 있다. 당연히 토끼를 사냥했을 때보다 사슴을 사냥할 때 얻는 이익이 더 크다.

 

B가 협력(C)할 경우 A도 협력(C)하면 (4,4)의 상태에 이른다. 만약 A가 배반(D)한다면 (3,1)의 상태가 된다. A의 입장에서는 4가 3보다 더 이익이므로 협력을 선택해야 한다. A와 B를 바꿔놓아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는 상대방이 협력한다면 나 역시 협력해야 한다. 상대방 협력할 때도 나는 배반하여 이익이 되었던 죄수의 딜레마와 다른 지점이다.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면, 적어도 탐욕에 의해서 전쟁을 일으킬 요인은 사라지고, 핵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핵심은 남이 협력할 땐 나도 협력하는 것이 배반하는 경우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모두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데도 혼자서 핵무기 개발에 열중하는 국가가 있다면 국제적으로 강력한 제약이나 응징을 가하여, 핵무기라는 군사적 우위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보다 더 큰 피해를 입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군비를 축소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국가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따져봐도 배반하는 경우보다 협력하는 경우가 더 많은 이익을 준다고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모두가 협력하여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혼자 제 이익만 챙기기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욕심쟁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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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살펴본 세계평화지수(GPI, Global Peace Index)는 평화를 전쟁이나 충돌이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 폭력이나 폭력으로 인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정의한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를 측정한 것이었다.

 

소극적 평화가 있다면,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도 있을까? 세계평화지수를 발표하고 있는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적극적평화지수(PPI, Positive Peace Index)를 발표하였다.

 

 

우선 적극적 평화에 대해서는 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회적 구조와 사회구성원의 태도를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폭력의 정도나 종류만을 구분하는 소극적 평화만으로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요인을 파악하기 힘들다. 경제평화연구소는 이를 보완하고자 적극적평화지수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소극적 평화를 측정한 세계평화지수보다 적극적평화지수가 양호하다면, 그 사회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평화로운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태도나 관계, 사회의 여러 가지 기관이나 기구들이 평화를 형성하기에 유리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반대라면 현 상태보다 더 불안하고, 위험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적극적평화지수의 측정은 크게 8개 부문에서 이루어진다. 정부의 원활한 기능, 적절한 기업 환경, 평등한 자원 분배, 타인의 권리에 대한 인정, 이웃과의 좋은 관계,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 높은 교육 수준, 낮은 부패 수준이다.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제안했던 학자 존 갈텅(John Galtung)은 더 통합된 사회로 가는데 필요한 예방주의적 해결책이 적극적 평화를 만든다고 보았다. 예방주의적 해결책이란 어떤 결정으로 인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핵개발과 같은 경우 그것이 잘못되었을 경우 입을 피해를 측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은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John Galtung <사진출처. 데일리안>

 

또한 갈텅은 그런 해결책을 추구하는 사회는 서로 간의 협력이 증대되고, 개인과 사회 간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 적극적 평화의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위의 8개 부문은 이를 반영하여 선택된 것이다.

 

세계평화연구소는 6년간의 세계평화지수 자료와 세계 여러 기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8개 부문에서 21개의 지표를 개발하여 2010년을 기준으로 108개 국가에 대해서 적극적평화지수를 측정했다. 지수의 숫자가 낮을수록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역시나 궁금한 것은 순위이다. 적극적평화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는 1.170을 기록한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세계평화지수에서는 1.419로 14위를 기록했었다. 즉, 앞으로 더 평화로운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다. 2위는 노르웨이, 3위는 핀란드, 4위는 덴마크, 5위는 아이슬란드로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 차지했다. 사회복지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북유럽 국가들이 적극적 평화지수에서도 좋은 점수를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9로 26위를 차지했다. 세계평화지수에서는 1.734로 42위를 차지했었다. 순위는 높아졌지만 지수의 숫자는 악화되어서 두 지수의 차이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수를 부문별로 살펴보자면 부패 수준에서 2.89로 가장 최악의 점수를 얻었고, 평등한 자원배분이 1.37로 가장 양호한 점수를 얻었다. 한편 북한은 자료의 부족으로 측정 대상국가에 포함되지 못했다.

 

전반적인 결과를 살펴보면 대체로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 즉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들이 상위를 차지했으며, 민주주의가 잘 발달해있었다. 북미나 서유럽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대체로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 권위주의적 정권이 집권한 나라들은 하위를 차지했다. 이집트, 시리아, 마다가스카르 등을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길은 소득 수준, 교육 수준, 평등, 이웃과의 관계 등과 같이 결국은 인간이 더 인간답게 사는 길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적극적 평화지수가 양호하다는 것은 그런 사회로 번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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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 중 하나이다. 경제학은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인정하는 가치는 오로지 효율뿐이다. 비용은 적게, 효용은 크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효율이다. 만약 평화를 지키는데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용은 적다면, 경제학은 평화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평화는 좀 독특한 재화이다. 경제학에서 일반적인 재화는 경합성과 배재성을 가진다. 경합성이란 내가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맥주 한 병을 마셔버리면, 다른 사람이 먹을 맥주 한 병은 줄어든다. 하지만 지식은 내가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비경합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배재성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소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물건이 그렇다. 하지만 비용을 지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가 그렇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을 구분해서 수신료나 시청료를 받기 어렵다. 물론 요즘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를 구분하는 케이블 방송이 생겼지만 말이다. 이 경우 드라마는 비배재성을 지닌다.

 

평화는 어떠한가? 내가 평화를 누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누리는 평화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평화를 누릴수록 더 많은 평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평화는 비경합성을 지닌다. 또한 평화를 지키기 위한 비용을 지불한 사람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여 차별을 두는 것도 어렵다. 평화를 지키는 수단 중 하나인 국방의 경우를 예로 많이 든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제외하고 국방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평화는 비배재성을 지닌다.

 

 

평화와 같이 비경합성과 비배재성을 지니는 재화를 공공재라 한다. 문제는 공공재의 경우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없는 시장실패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주류경제학은 두 가지 전제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인간은 이기적이다. 둘째, 시장은 효율적이다. 이기적 인간은 모든 결정에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지를 근거로 판단하며, 이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이루어내는 곳이 시장이다.

 

하지만 공공재는 이렇게 공급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이기적이라면 아무도 평화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재화는 시장에서 공급되지 않는다. 즉, 시장에 맡겨놓으면 평화는 달성되기 어렵다.

 

이처럼 시장실패의 상황에 대해 경제학은 주로 두 가지 방법을 내놓는다. 하나는 최대한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드는 것인데, 개인들에게 소유권이나 거래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배출권 거래제이다. 공장마다 일정량의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리고 탄소 배출량이 적어서 배출권이 남는 공장이 배출권이 부족한 공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국가가 해결하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을 싫어하는 주류경제학도 시장실패의 상황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정부 관료들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여 효율적 자원분배에 실패할 수 있다는 정부실패를 덧붙인다.

 

그런데 미국의 정치학자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이 문제를 해결하는 세 번째 방법을 제시하여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오스트롬이 연구한 것은 공유자원으로, 엄밀히 말하면 공공재와 차이가 있지만 역시 시장실패 사례에 해당한다. 그녀는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수많은 공유자원들이 어떻게 파괴되지 않고 관리되었는지를 조사했는데,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자발적인 규제와 협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해법임을 찾아냈고 증명했다. 또한 단 하나의 체계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여러 층위의 체계 속에서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다중심성을 강조했다.

 

유일한 여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평화는 위의 세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으로 달성할 수 있을까? 평화를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권리를 나눠주기는 힘들 것 같으니 첫 번째 방법은 어려워보인다. 두 번째 방법으로 국가가 보장하는 것은 일반적이나 완벽하지 못하다.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은 국가 간에 일어난다. 국가가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는 선택을 하는 존재는 아니란 뜻이다. 여기에 세 번째 방법이 더해지면 어떨까? 국가가 전쟁을 선택하려는 기로에 서있다 해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고, 또 선택권을 갖고 있다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경제학으로 평화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가볍게 짚어 보았다. 앞으로는 평화에 관해 다루고 있는 경제학 연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제학의 연구방법을 고려할 때 평화를 측정하는 지표를 만들거나, 평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의 상관관계를 밝히거나, 평화가 가져다주는 비용과 이익을 비교하거나, 게임이론 등을 통해 평화를 위해 개별주체들이 택해야 할 전략을 무엇인지 등의 내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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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40년 전 오늘은

남과북의 최초의 합의문서'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날입니다.

 

비록 이 성명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死)문서'가 되고 말았지만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통일의 3대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과

이후 남북기본합의서나 6.15공동선언의 내용적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아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흡수통일을 가정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항아리'

남과 북의 적대적 대결관계를 부추기기만하는,

평화와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어긋나는 그야말로 반통일적 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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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저자의 개인적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좋은 성장소설은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모든 아픔과 상처, 고뇌와 함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작품에 담겨 있는 경우, 독자들은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라 알려진 《연을 쫓는 아이》는 성장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 저자의 모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전통이 생생히 전달된다.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그들의 너무도 굴곡진 삶이 그대로 아프게 전해진다. 아울러 이념과 종교, 인종을 떠나 진정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해주고 있다.

 

주인공 아무르가 성장하는 과정, 어른이 되고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잘못을 바로 잡아나가는 용기 있는 모습에서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얻었을 것이다. 또한 하산의 눈물어린 우정과 그의 아들인 소랍이 겪는 아픔은 독자들로 하여금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동시에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까지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가 겹쳐짐을 느낀다. 물론 두 민족의 역사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두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는 결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외세에 의한 고통과 절망, 같은 국가 구성원끼리의 갈등과 피비린내나는 살육, 다시 탈레반의 폭정과 미국의 무차별 폭격 그리고 학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스스로의 인간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고통 받고 있고, 또한 강대국에게 주권을 침해받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되어 오랜 시간 고통받아야 했고, 그 이후 이데올로기 전쟁의 한 복판에서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논리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땅에서 주권의 온전한 행사를 펼치지 못한 채 식민지 국민처럼 살아간다.

 

역사상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반세기가 넘는 외국군의 수도 주둔에 대해 무감각하고,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오늘도 입에 거품을 문다. 스스로 주권을 포기한 국가, 국민, 민족에게 온전한 주권이 제 발로 찾아오진 않는다. 스스로 노예임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행복한 것일까.

 

어처구니없는 종북논쟁이 이어지고, 독재자의 자식이 차기대권을 예약한 것 마냥 설치고 있는 후안무치의 시대에,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고통에 눈감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쩜 속편한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의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통해 감동을 느끼는 행복과 함께 저자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평화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선 안 될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탁월한 문장력과 진솔함으로, 행복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묵직한 감동과 성찰의 시간을 동시에 전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행복이긴 했다.

 

소비가 전부이고, 생존이 진리인 세상에서 우리에게 본디 주어졌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눌 수 있는 따뜻함이 무엇인지, 오래 전 잊고 지냈던 옛 고향의 포근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새삼 생각나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다.

 

하산이 아무르에게 했던 것처럼, 다시 아무르가 소랍에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용기와 사랑. 그 따뜻함이 간절히 그리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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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간성을 위한 싸움

 

 

혹자는 그의 글이 너무 비관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는 너무 회의적이라고.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진보적 미래를 위한 희망보다는, 과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확신을 가져도 될 것인가 끊임없이 묻는 그에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가 선생의 글을 탐독하는 이유다. 사실, 그렇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역사의 진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신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러나, 선생의 글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비관하지만, 절망 속에 침묵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자신의 삶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단절과 불안의 시대에 ‘경계에 서 있는’자로써의 역할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책은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보여주는 행태에 적잖이 실망해, 유심히 읽지 않았던 터라, 그의 글만을 모은 책이 더욱 반가웠다. 가슴 아픈 일이다.

 

선생은 그동안 책들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성과 평화 그리고 공존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의 증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해왔고, 그 덕분인가 어느새 우리들에게도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잘 알려진 대로 ‘이산(離散)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선생과 같은 재일조선인도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이라는 외적인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보자. 과연 우리는? 우리 역시 엄밀한 의미에 디아스포라가 아닐까.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겪은 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갈 곳을 몰라 떠도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여기에 물질적 숭배와 무한경쟁만이 남은 지옥과 같은 세상을 꾸며놓고, 마치 그것이 본래부터 존재했던 삶터 인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리가 감히 선생과 같은 재일조선인을, 탈북자를,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신부들을 또 다른 타인으로 규정짓고 배척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아니다. 생각해보니, 서울과 지방의 기형적 차이,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편 가르기의 논리, 비싼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거주민을 가르는 차별과 무시의 논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비정한 ‘돈’의 논리.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빌어먹을 ‘머조리티와 마이너리티’의 현실이 아닐까.

 

때문에 선생의 글을 다만 ‘우리’와 다른 ‘타자’의 글로써 인식하고 공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감과 소통이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의 거울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선생이 진정 원하는 바일 것이다.

 

선생을 통해 크게 깨우친 것 하나가 있다. 바로 ‘조국’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동안 살아오며 끊임없이 버리고 버리려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찌꺼기가 바로 ‘국가’다. 권력으로서의 국가, 통제와 탄압의 수단으로서의 국가, 얄팍한 애국심을 선동해 기득권의 유지에 복무하는 국가의 개념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와 타자를 나누는 무시무시한 배제의 논리. 그 속엔 국가라는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 국가가 시킨다면,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국가를 위해…. 이렇게 우리는 형체도 없는 괴물을 위해 자신의 행복과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유보한다.

 

선생은 “다수의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듯한 애매한 혈연 공동체적 정서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공공적인 연계로서의 ‘조국’이라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를 계속해감으로써 새로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나에게는 바람직한 ‘조국’”이라 말한다. 지극히 동감이다.

 

일본에선 신자유주의 경쟁 사회의 생존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가치구미(승리조)’라 하고 진 사람은 ‘마케구미(패배조)’라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가치구미가 되기 위해 이웃과 친구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마케구미로 전락시키려 한다. 그렇게 만들고 있는 시스템이, 작동 원리가 무엇인지는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선생은 끊임없이 ‘국민주의’에 저항해왔다. 국민과 비국민으로 갈리는 순간, 이미 그 속에 인권과 평화, 공존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비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사회의 현실은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한다. 지독한 차별과 구분을 없애기 위함이다.

 

선생이 꿈꾸는 세상,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는 것이 지구상의,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꿈만 같은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는 그 날을 간절히 바라본다.

 

“2018년 4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인천공항에 내렸다… 5년 전에 탄생한 현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극적인 전환을 호소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그 결과 남은 에너지는 북한에 원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0년 전에 50퍼센트를 넘었던 비정규직 비율은 한때 70퍼센트 가까이 올라갔으나 새 정부의 정책 덕에 30퍼센트까지 내려갔다… 징병제에서 지원병제로의 전환을 실행에 옮긴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군대를 폐지해서 국경 경비나 재해 구조를 목적으로 한 경찰부대로 대체할 구상을 세워놓고 있었다… 재작년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이 마침내 폐지되고 형법상의 간통죄도 철폐됐다… 정주 외국인 노동자나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코리안 디아스포라들도 이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일상생활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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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악화에 악화를 거듭하더니 정말 무슨 일이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깊은 우려가 드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조선중앙TV 여자 아나운서가 '혁명무력의 대남 특별행동이 곧 개시될 것'이라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의 통고 내용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4월 23일, 북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 명의로 남측에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고 통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혁명무력 특별행동의 대상으로 ‘이명박 역적패당’과 동아일보, KBS, MBC, YTN 등 ‘보수언론매체’를 열거했습니다. ‘특별작전행동소조’, ‘혁명무력’, ‘특별행동’ 등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나열되고, ‘3~4분보다 짧은 순간에 초토화할 것’이라는 방법까지 제시됐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급기야 사태는 남북대결이 실전으로 번지는 최악의 국면이라도 막아야 한다는데 까지 나아가 버렸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남북화해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북만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탓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오늘의 불안과 위기는 지난 4년, mb 정부의 안보무능과 대북강경 일변도 정책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특히 최근 북의 광명성 3호 발사와 4.15 행사 이후 정부는 새로운 북의 최고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냈으며, 심지어 mb는 ‘중국을 통해 북을 봉쇄한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거침없이 북을 자극해 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화가 위태로운 지금도 '북한의 농지개혁 촉구', '통중봉북(중국과 대화하고 북한을 배제) 시대, 북한 인권 등을 계속 거론하며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헌데 대책없이 북한을 자극해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당자사인 정부는 최소한의 위기관리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이제라도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남북화해나 남북관계 개선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위기관리라도 해야 합니다.

 

 

국민은 전쟁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 땅의 화해와 평화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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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걷어내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6·15선언은 북한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우리가 최대한 활용하면서 민족의 활로를 열기 위해 추진했던 평화 만들기 장전이었어요. 평화 만들기를 한다고 해서 평화 지키기, 즉 안보를 게을리 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평화 지키기를 위해 연간 전체 국가 예산의 약 9~10%, 20조 원 이상을 국방비로 쓰면서, 그 돈의 1/40 정도 되는 5000억 원 정도를 남북협력기금으로 만들어 평화 만들기를 추진한 겁니다. 그게 6·15의 패러다임이었어요.”


우리 민족이 워낙 짧은 시간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의 심성이 조금은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흥분하기도 하고, 또 쉽게 쏠리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믿을 것은 나와 가족밖에는 없다’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사람들의 개인적 성향만을 탓할 수 없습니다. 국가, 정부라는 것은 언제나 국민들을 보호하기보다는 탄압하고 착취하고, 심지어 학살해 왔으니까요. 그 누구도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상황이 종식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냉전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일제의 강점, 그리고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단된 우리 민족은 서로 학살을 자행하는 전쟁까지 치르며, 극도의 원한과 분노,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아물 상처는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군사정권을 포함해 역대 정부는 자의든 타의든 북한과의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일정 부분 서로에게 정권 유지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증오하면서도, 일정 부분 협력해 온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1년입니다. 오늘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교체된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2대 통일부장관으로 무척이나 장수한 장관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록이 있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언가 하는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대며, 통일부장관의 임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는 기록 말입니다. 오히려 내외부로부터 “축사 장관”이라는 놀림을 들어야 했습니다. 장관이란 양반이 할 일이 없으니 각종 행사에 축사나 하러 돌아다녔거든요. 참 많이도 돌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정세현 원광대 총장님은 30여 년 동안 공직에 있으며, 남북 관계의 현장을 누볐던 베테랑 중 한 분입니다. 통일부 직원으로는 최초로 통일부장관에 올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각종 남북회담에 주인공으로 활약하셨죠.


특유의 거침없는 그러나 지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발언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 “상식에 기반한” 대북정책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정 총장님은 오랜 시간동안 남북문제를 다뤄온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할 말은 하고,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던 분입니다. 지금 정권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분들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던 분이죠.


그런 총장님의 남북정세, 국제정치 감각과 전망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은 때문에, 비단 남북관계에 관심이 있는 분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상식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정 총장님의 글을 읽다보면 상식이 무엇인지,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감사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형적 보수 세력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진정 보수가 무언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보수란 이름을 더럽히고 있죠. 교회 세력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어 왔다며 오만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눈치 보지 말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데에도, 조직적으로 대형교회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반대 여론을 조성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국가를 이끌어간다고 믿었습니다.


진정한 보수는 정 총장님 정도의 식견과 애국심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총장님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합리적인 분입니다. 이런 분마저 좌파 세력으로 몰아가는 현실. 김구 선생을 빨갱이로 몰아 결국 암살했던 해방정국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극한 지혜와 비전이 담겨 있는 책.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좋은 일에는 초청을 받아야 가지만, 궂은일에는 소문만 듣고도 가는 겁니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정 총장님이 한 말입니다. 음식 쓰레기로 연간 20조 원을 버리는 우리가, 10·4 선언 이행에 14조 원이(그것도 중장기적으로 모두 따졌을 때) 든다고 ‘퍼주기’라고 한다면, 천벌을 받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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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인 동화작가 황선미 님이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동서남북 우리 땅을 아이들에게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우리 땅이 바로 DMZ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DMZ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또한 정확한 것들을 알고 있지 못합니다. 서쪽의 임진강에서 동쪽의 고성까지 이어진 250km의 군사분계선. 여기서 남북으로 각각 2km 물러난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 DMZ입니다. 여기엔 일체의 무장을 할 수 없도록 되어있지만, 사실상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무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가 남긴 가슴 아픈 상처입니다.


휴전선 주위의 군사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54년 DMZ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20km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간인출입통제선, 즉 민통선입니다. 지금은 그 폭이 남북 간의 화해 협력 과정의 결실로 5~10km로 줄었습니다.


이 안에 있는 유일한 학교인 대성동초등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 용이, 하늘이, 수정이, 명우는 졸업을 맞아 16년 뒤에 열어볼 수 있는 타임캡슐, 즉 희망의 단지에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적어 넣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각자 어떤 꿈을 단지 안에 담을까요?


나름대로 오랫동안 북을 공부하고, 또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고민해온 저이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는 DMZ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인데도, 내용이 그만큼 충실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바쁩니다. 학교와 학원, 과외와 방과 후 수업 등등, 도무지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럼에도 시간을 쪼개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할 것입니다. 그 형태와 내용이 무엇이든 말이죠.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끝끝내 자신의 시간을 찾아내어 놀이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현재 우리가 처한 분단 상황이나 북한에 대해 고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 비해 자료는 매우 풍부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아울러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TV나 신문 등 주류 언론들은 북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편파적이고 때론 위험하다싶을 정도로 왜곡된 이야기를 사실인양 소개합니다. 현 정부 들어 이러한 유언비어 혹은 날조된 기사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황선미 작가의 책이 더욱 소중히 다가옵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보니 구체적인 사실이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간략히 소개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지금 남북 관계가 최악인 근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요.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책은 DMZ와 대성동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남북의 분단 그리고 화해와 통일을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함께 전합니다. 아울러 개성공단, 철도연결, 남북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 과정 등 그간의 남북협력 과정을 아이들에게 알려줍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 말이죠.


통일이 되면 북녘의 거지떼들이 몰려와 우리도 가난해질 것이기 때문에, 절대 통일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그 아이들이 그런 슬픈 생각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그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생각들, 이기적인 욕심이 아이들의 마음마저 비뚤어지게 만들어 줍니다.


통일은 행복입니다. 통일은 부담이나 악몽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한 자원과 많은 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뤄지고 있는 분단 상황 그 자체가 악몽일 뿐입니다. 이러한 것을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작가의 역량이자 기획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합니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금씩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임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자와 기획, 편집을 맡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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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