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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북한에 대한 시선은 왜곡되기만 하는가
    이전연재글 2012. 11. 19. 10:55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은 받은 <무산일기>, 그런데 다큐인가 픽션인가

     

    2011년에 개봉한 독립 장편영화 <무산일기>는, 고(故) 전승철 씨를 소재로 하고 있다. 전승철 씨는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북한이탈주민으로 남한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감독은 전승철 씨의 남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125전승철>이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다시 <무산일기>라는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일반 상영관 개봉에 성공했고, 언론과 평단과 관객으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어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영화 <무산일기> 포스터

     

    지독한 경제난으로 사람들이 굶어죽는 북한에서 탈출한 주인공 승철은 남한에서 최하층의 비루한 삶을 이어간다. 주민등록 뒷번호가 125로 시작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정상적인 직업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그는 불법으로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하면서 다른 북한이탈주민이자 브로커인 경철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승철의 삶은 자본주의 남한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답답한 삶이다. 죽을 수 없어 북한을 탈출한 순박한 주인공이 남한 사회에서도 극단적으로 소외되고, 남한에서도 ‘죽을 수 없어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자본주의 남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소재를 통해 잘 묘사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첫 반응. “정말 우리는 탈북자를 이렇게 막 대하고 있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 사람들인데.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북한이라면 아무리 이상해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무산일기>는 어느 면으로 보나 진부한 소재를 다룸에 있어 참신한 소재를 활용하는 전략을 지닌 전형적인 극영화다. 또한 큰 범주에서 정치적인 메시지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정치적인 다큐로 이해하는 이런 상황은 무엇일까?

     

    영화에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경험하는 다양한 일들은, 전승철 씨가 남한에서 실제로 경험했던 사건들이었기에 현실감이 있다. 거기에 적은 제작비로 인한 열악한 제작환경이 만들어주는, 독립영화 특유(?)의 다큐적인 느낌이 긍정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영화는 허구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허구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는 그 지점을 충족시켜주고 있기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엄연한 극영화, 즉 픽션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것을 다큐로 먼저 받아들였던 것일까?

     

    관객들이 영화를 다큐라고 받아들이는 이유에는, 영화의 핵심 소재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것이 크게 한몫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이나 북한이탈주민을 다루는 이야기는 다큐일 것이라는 선입견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북한이탈주민의 삶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남한 사회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회인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다. 다만 가장 어둡고, 왜곡되고, 소외된 남한 사회를 북한이탈주민을 통해 그려보려는 기획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남한 사회의 모순을 그리는 데 남한 사회의 하층민을 등장시켰다면 어땠을까? 기본적인 관심과 이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남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려면 그에 대한 영화적인 설정들이 아주 세밀하게 설계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무산일기>에서 보여지는 극적인 장치들은 활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은 이런 복잡한 설정들을 설계하는 작업에서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전 지식이 관객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가 설정해준 방식대로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관객이 이런 설정을 다큐로 오해까지 할 만큼, 우리에게 사전 지식이 매우 없다는 점이다. <무산일기>를 다시 돌려 보자.

     

    픽션이지만 다큐로 보는 것이 편하다

     

    <무산일기>에서 주인공 승철에 대한 영화적 설정에는 비어 있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영화의 도입부에 승철이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경철의 애인(으로 추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 용변을 보면서 승철을 우습다는 듯이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승철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그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한 번에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설정된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영화적 허구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동일한 장면에서 남한 사람이 들어가 있다면, 그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정신지체이거나 신체적으로 그 어떤 의사표시도 하지 못하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이 장면은 그리 허구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이탈주민은 진짜 저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 장면을 맨 앞에 배치함으로써 이 영화가 완전한 허구라는 점을 오히려 강조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의도였다면 작가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무산일기>의 작가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작가는 남한 사회를 비판하고 싶어서, 그리고 극적인 설정을 위해서 북한이탈주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런데 이상한 결과가 발생했다. 남한 사회에 대한 비판은 사라지고, 영화가 북한이탈주민의 문제로 읽히는 것이다. 작가는,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남한 사회의 모순을 한 번에 체험하고 있을 것으로 설정하는 데 있어 복잡한 설명을 해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북한이탈주민을 세웠다. 그런데 순식간에 북한이탈주민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읽혀버리는 것이다. 다큐적인 느낌을 강조하려고 했는데, 다큐로 읽히는 것. 그도 많이 당황하지 않았을까?

     

    북한, 그 심리적인 거리

     

    이것은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량의 부족이 빚어낸 사태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선입견, 즉 북한은 이상한 곳이고,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일 것이고, 그들은 남한에서도 이상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에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에게 어떤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작용하면서,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주어지는 이야기는 그 어떤 것이라도 다큐일 것이라고 우리들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 때문일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는,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 살고 있는 원시 부족들에 대한 것만큼이나 멀다. 우리는 미디어가 원시 부족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힘들다. 그들이 실제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로 말하면 민속촌 같은 곳에서 외국 방송사들을 대상으로 촬영 협조를 하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 우리는 판단하기 힘들다. 더 정확히 말하지만 판단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과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크기에 그들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체에 그들이 등장할 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큐로 받아들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저 신기함, 이색적인 것을 경험하게 되는 그 상태를 즐길 뿐이다. 북한과 북한이탈주민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상 같은 생활공간 속에 놓여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다. 결과적으로 누군가 그들에 대한 시선을 제공하면 이는 순식간에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극영화를 다큐로 읽고, 어떤 시선이건 제공되는 순간에 사실이 된다. 대중매체와 관련하여 이런 일이 어찌 이곳에서만 벌어지겠냐고 되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지만, 이곳에서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것이 이렇다면 북한에 대한 것은 어떨까?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이제 구경하러 가는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

     

    한 케이블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은 북한에 대한 이와 같은 현상을 더욱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공중파에서 히트를 쳤던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와, 외국인 여성 자리에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을 앉히고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통해 남한과 북한을 동시에 바라본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컨셉이다. 이들은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즉 기자나 학자 혹은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몇 가지 경험을 토대로 대부분의 현상에 대해 손쉽게 직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이들의 직관적인 평가가 오히려 전문가의 그것보다 날카롭고 정확하며, 그로인해 시청자들의 공감 코드를 작동시키는 면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담화를 받아내는 매체의 시선이다.

     

    채널A에서 방송 중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

     

    우선 이들의 평가와 단정은 그와 같은 진솔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공식화되기보다는, 다른 측면에 기대어서 공식화된다. 이를 테면 그들 대부분은 남성 시청자들 눈에 성적 매력이 높은 여성으로 가공되어 등장한다. 복장과 화장도 그와 같은 코드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세팅이 되어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기자, 학자, 전문가라는 직업의 권위가 그들의 텍스트에 대한 신뢰를 강화시켜주는 것처럼, 성적 매력이 다른 방식으로 이들의 텍스트에 대한 권위를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세팅은 이방인 컨셉이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이야기 패널들은 모두 외국인 여성이었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여성이다. 이들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또한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를 우리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이방인이기에 이들의 시선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몇 년 동안이나 남한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담고자 하는 시선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용한 이방인 취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실제로 이들의 텍스트가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는지, 만약 반대로 우리가 다른 어떤 사회에 가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를 공식적으로 평가하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정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고 말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북한을 매우 특별한 곳으로, 북한이탈주민을 그곳에서 온 매우 특별한 이방인으로 설정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곳에서 온 특별한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전제를 또한 매우 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방인의 시선이기에 그들이 제공하는 무엇이 되었건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특별히 비판을 해야 할 느낌을 받지 않은 채 말이다. 사실상 이것은 앞서 <무산일기>를 이야기하면서 등장했던 아마존 밀림의 원시부족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이해의 수준과도 비슷하다.

     

    왜곡은 오래되었다. 아주 낮은 수준에서

     

    북한에 대한 시선의 왜곡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공적인 시선은 반공이데올로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공적으로 생산되고 유포되는 시선은 분단과 체제경쟁이라는 역사적인 배경, 두려움과 애착의 심리, 매 시기 지배세력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도구라는 측면이 전제로 깔린다. 그리고 시선의 대상인 북한과 직접적인 대면이 불가능한 (대면을 의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상황은, 공적인 시선의 생산자들인 남한의 지배세력에게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고, 따라서 비판의 여지가 그리 클 수 없었다고 해도 합당하게 들린다.

     

    사적인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 북한에 대한 사적 경험담이 유행처럼 번져 나간다. 주로 일간지에 연재되는 컨텐츠로, 명사(시인 고은, 지리학자 최장조, 미술사학자 유홍준, 소설가 이호철 등)들의 북한 답사기 형식을 띤 이런 경험담은 북한에 대해 사적인 시선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이 시선은 매우 제한된 범위의 소수 사람들의 특수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들로, 북한을 일종의 판타지의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을 묘사함에 있어 따뜻하고 순박함의 상징인 시골 아낙네로 표현한다든지, 무분별하게 서구화되지 않고 전통문화에 대해 고집스럽게 수호하고 있는 민족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본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것은 일종의 향수(鄕愁)라고도 볼 수 있고, 나아가 근대화 시기 유럽이 비유럽 지역을 향해 탄생시킨 오리엔탈리즘과도 유사하다. 예를 들어 유럽이 보기에 비유럽 지역은 일종의 원시적 순수함을 지닌 신비로운 곳이며, 이를 묘사함에 있어 동정(童貞)의 여성을 일컫는 처녀(處女, virgin)와 연결짓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다. 그리고 남한 입장에서 북한을 오리엔탈리즘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급속하게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전 근대의 전통을 잃어버린 남한이 보기에 북한은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전통이 살아 있는 신비로운 곳인 것이다. 물론 공적인 시선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시선도, 생산할 수 있는 경로와 생산자의 수가 제한되어 있었기에 비판과 검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기는 했다.

     

    왜곡의 수준이 낮았는데 왜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는가

    아니 왜 눈치채려 하지 않았는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공적인 시선과 사적인 시선에서 재미있는 것은, 정보가 독점되고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참 낮은 수준에서 왜곡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낮은 수준의 왜곡을 별 의심 없이 쉽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보의 독점이 약해지고 사회분위기가 바뀐 지금도 그 경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시선이 특정한 의도에서,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가공되어 제공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제공되는 순간 어떤 비판도 없이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입각했던 공적인 시선과 오리엔탈리즘적 성격이 강한 사적인 시선은 사실 조금만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허구성이 금방 탄로 나는 수준에서의 왜곡이다. 반공이데올로기야 워낙 언급이 많이 된 내용이라 그 논리의 허술함을 다시 언급하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이다. 하지만 사적인 시선인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의 허술함도 만만치 않다. 경제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이미 이룩했던 근대화와 산업화의 많은 부분을 어쩔 수 없이 놓쳐버린 것을 두고, 전통문화가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 번만 생각해보면 결정적 비판을 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멘트다.

     

    그런데 이러한 낮은 수준에서의 왜곡된 시선은 무려 50년 넘게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버텨오고 있다. 그렇기에 <무산일기>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반응을 보이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를 평가할 때는 그렇게 냉철한 관객과 평단의 눈이 유독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의 등장에 대해서는 장르적인 평가 대신 정치적인 평가를 하는 등 방향을 잘못 잡고, 심지어 픽션을 다큐로 오해한다. 몇 년을 함께 살아도 이방인이고,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왜’를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사실이 되는데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인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매우 관심이 없는 상태이고, 그런 상태에서 주어지는 것들은 비판이나 검토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며, 여전히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은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 있었건 이방인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현실의 왜곡은 이와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와중에 계속적으로 커지게 되며, 누군가 이와 같은 패턴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면 충분히 이용도 가능하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왜곡된 시선의 책임은 결국 그 시선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수용자에게도 크게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마존 밀림에서 살아가는 원시부족에게 이제는 서서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데, 북한에 대해 아직도 너무나 특이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곳이라고 ‘정해놓고’ 생각하는 것은 좀 너무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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