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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평양을 갈수 있었던 2005년 가을을 기억하시나요?
    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9. 19. 13:45

    남한 관광객을 가득 태운 전세 비행기가 서울과 평양을 날마다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평양을 관광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늘은 그때 평양 관광이 시작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소개하겠다.

     

    2005년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겨레하나는 평양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는 민간교류가 무척 활발하던 시절이었고 우리 팀 말고도 많은 대북지원단체들이 호텔마다 북적거렸다.

    또 백두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6차 장관급회담의 장소가 평양으로 변경되어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평양에 있었다.

    15일 저녁 갑자기 북한 안내원이 능라도 5.1경기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10만이 참여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자고 했다.

     

    그때까지 남한 정부가 금기시하던 <아리랑>공연이라 관람해도 좋을지 걱정했지만

    VIP석에 앉아있는 정동영 장관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리랑>공연 기간 동안 남측 사람들의 평양 관광을 허용하며,

    각 지원단체들에 모집 참가권을 주겠으니 최대한 많이 참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남한 정부의 승인여부를 걱정하는 내게 정동영 장관이 정부차원에서 적극 도와주기로 했으니 걱정 말란다.

     

     

     

    그러면 잠시 아리랑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2000년 10월, 대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공연에 왔던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인공위성 발사장면과 ‘우리를 건드리는 자 이 행성 위에 살아남을 자리 없다’는 카드섹션을 보고 기가 질렸다고 했던가?

    그때보다 훨씬 다채롭고 부드러워진 내용으로 바뀐 대집단체조 <아리랑>은

    10만 명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치는 대 집단체조 군무와 카드섹션으로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

    당시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대화를 중단하고 ‘악의 축’ 발언을 하는 등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아리랑> 준비과정을 대내외에 공개하면서 서방 세계 관광객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즉 북한은 '아리랑' 공연을 통해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 메시지'를 보내려고 의도했던 것 같다.

    <아리랑> 관람에 남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참가한다면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의 여파는 더욱 커질 것이다.

    자연히 북한은 그때까지 절대 불가하다던 남한 사람들의 평양관광을 한시적으로나마 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무나 신청만 하면 가능한 평양 관광은 남북관계 발전과 민간교류에 있어서 또 한번의 도약이었다.

    남쪽에서는 그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던 평양임에도 불구하고,

    문턱이 너무 높아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일반 여행사에게 모집권을 줄 수도 있지만

    북한은 아직 상시적인 관광이 아니어서 서로간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북과의 민간 교류경험이 많은 지원단체들을 중심으로 이사업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했다.

     

    겨레하나로서는 남한 방문객을 엄격히 제안하던 그 시절에

    무작위적 관광을 허용한다는 제안도 무척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때마침 아리랑 공연을 한번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어서

    로또가 당첨된 심정으로 이 제안을 적극 수용하였다.

     

    <아리랑>에 대한 남측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리랑>은 집단주의 사회인 북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일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을 혹사시키는 반인권적 요소가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예술성과 대담한 스케일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리랑>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다양하지만 우리와 화해 협력해야 할 동반자인

    북한의 특징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쪽 사람들도 꼭 한번은 보아야할 공연이다.

    특히 그동안 남쪽 사람들이 인도지원 물품 분배 현장 확인 차 방북하여

    북의 경제적 어려움만을 목격해 왔다면,

    아리랑 공연 관광길에서는 북한의 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얼마나 모집해 올수 있겠냐는 북 민화협의 질문에

    직항 비행기로 약 15회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당장 20일부터 첫 관광을 시작하잔다.

     

    아이쿠.... 그 무슨 번개 불에 콩 구워 먹을 소리를!

    우리가 서울에 도착하면 17일 저녁이며 그날부터 대한민국은 이미 추석휴가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 다음날 18일 일요일이 추석이므로 모든 업무는 이미 중단되어 있으며

    빨라야 20일이나 되어야 출근과 모든 공적 업무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회의절차와 실무적인 일이 하루 만에 끝날리도 없거니와 더 큰일은 비행기를 구하는 일이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에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과연 비행기가 있을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화를 치는 북한의 심정이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있던 겨레하나 임원들도 직감적으로 이 사업은 무조건 빨리 내질러야 될 사업이라는 느낌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아리랑>의 내용을 둘러싸고 보수언론의 집중 선제공격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아직 남쪽은 그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한명이라도 더 많이 보게 하여 시민들의 입소문으로 평양 관광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대적인 평양 관광, 그것을 가능케 하기위해 북한에 무엇을 요청해야 할까?

    그때 불현듯 생각난 것은 평양에 임시 상황실을 개설하고 남북 직통 전화와 팩스선을 설치하는 문제였다.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 명단과 초청장을 주고받는 일,

    사전에 차량과 호텔 객실을 배정하고, 확인되지 않은 신원에 대해 남북이 협의하는 등

    모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남북의 직접 대화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은 대대적이고 신속한 평양 관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동의해주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그날부터 정신없이 준비 작업을 몰아쳤다.

    겨레하나 직원 한 명이 아예 아시아나항공에 눌러 앉아 없는 비행기를 내어달라고 생난리를 쳤다.

    다행히 그때 장기 예약되어 있던 비행기 한 대가 예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좀처럼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던 전세비행기 계약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진행된 대규모 관광객 유치와 그에 따른 실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수십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전화기 수십 대를 설치했다.

    또한 관광 리플렛 제작, 관광객 교육 및 서류정리 등으로 겨레하나 사무실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다.

     

    드디어 9월 26일!

    겨레하나는 약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한 달동안 계속된 평양역사문화유적과 아리랑 참관 사업의 첫발을 떼었다.

    평양에서 제안을 받은 지 10일만이었고,

    가운데 추석 연휴를 고려한다면 1주일도 채 안되는 기간에 전광석화 같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후 한 달 넘는 기간에 겨레하나를 비롯하여, 평화자동차, 지원단체들은

    만 명이 넘는 인원으로 평양 관광과 아리랑 공연 관람의 붐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양각도호텔에 사무실을 내고

    상황실장을 맡아 5명의 상근자와 함께 상주했다.

     

    양각도호텔에 도착하여 가지고 간 팩스기를 연결하고, 전화가 개통되는지 점검부터 시작하였다.

    그 시간이 아마 9월 26일 오후 1시경이었던 것 같다.

    통화연결음 소리가 들리고, “여보세요. 여기는 평양인데요”하는 순간

    전화기 저쪽에서 들리는 겨레하나 사무실의 엄청난 환성소리 “ 야 ! 평양이란다. 전화가 된다. 우와!”

    서로서로 통화를 해보겠다는 아우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앞으로 닥쳐올 고생길이 구만리 같은데,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전화기에 매달려 천진한 어린애들 마냥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했다.

     

    남한 사람들의 대규모 평양 관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언제 다시 그런 평양관광을 갈수 있을까?

     

    우선은 금강산 관광재개가 시급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남북관계가 다시 재개된다면 그다지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아리랑 공연에 대한 남쪽의 평가와 관광을 둘러싼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다음번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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