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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관광기간동안 날마다 일어난 우리들의 전쟁 이야기
    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10. 10. 15:26

    훗날 나와 친해진 민화협 김선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아리랑 공연 시절에 자기는 일반 관광객들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내가 좀 얄미워 보였단다.

    자기들은 연일 1000명 남짓 쏟아져 들어오는 남측 관광객들을 안내하느라

    밥먹을 틈도 없이 정신이 없고 몸살이 날 정도인데,

    상황실장이라는 웬 아줌마가 비행기가 도착할 시간이면 순안 공항에 들려 사람들을 쓱 한번 둘러보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하는 일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폼이나 잡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때 나의 속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이 지면을 빌어 하루하루 전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려한다.

    나중에 남북교류가 전면화 될 상황에 참고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가을이라는 시기, 하루 300명이상의 관광객을 평양으로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얼핏 생각하면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설텐데,

    선착순으로 쭉 비행기를 태워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왕복 비행기 값, 호텔 숙박비, 차랑 비용, 아리랑 공연 입장료 등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주중에 1박2일의 일정을 비우는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평양 관광의 초반부에는 겨레하나의 지역본부가 잘 구성되어 있는 인천이나 울산 등이

    신속하게 움직여 대형 비행기를 채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상황은 쉽지 않았다.

     

    겨레하나 총 17차의 평양 관광단을 태울 전세 비행기는 이미 예약이 완료였고,

    탑승객이 한명이든 100명이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숨이 가빴다.

    북한은 대략 12시까지는 이틀 후의 명단이 들어와야 신원 조회 후 초청장 발송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서울에 있는 겨레하나 사무실로 명단과 함께 인적상황 서류접수가 완료되는 시간 자체가 늘 12시를 넘기 마련이었다.

     

    지역별, 단체별로 날짜를 미리 찜해놓았기 때문에 각 단체들은 그날 한명이라도 더 인원을 맞추려고 

    회원들 독려에 열중해있었지만 단 며칠 만에 수 백 명이 뚝딱 접수되는 것은 아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가고는 싶은데 비용이 없는 사람, 일정조정이 안되는 사람 등

    다양한 이유로 차일피일 명단 제출이 깔끔하게 완료되지 않은 채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틀 만에 북한 정부에서 신원조회를 끝내는 일도 촉박한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북한의 재촉이 시작된다.

    명단이 늦게 오면 관계기관에서 출입심사를 할 수 없고 심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초청장을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인원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규칙과 시간을 지키는 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성화였다.

    몇 번 재촉을 해도 소용이 없으면 나중에는 전부 불허할 수밖에 없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서울로 전화를 걸어 명단을 빨리 보내라고 북의 잔소리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처음 평양에서 오는 전화를 서로 받으려고 아우성치던 서울의 겨레하나 사무실은

    나중에는 서로 받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지역에서는 몇 시간만 몇 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고,

    평양에서 오는 전화는 지금 ‘당장’ 명단을 보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촉을 해대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그림. 서영준 화백

     

    그런데 평양에서의 내 느낌은

    서울에 있는 겨레하나 상근자들이 북한의 분위기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 몇 개 적어 초청장이라고 보내주기만 하면 될 일을 왜 이틀 전에 명단이 올라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듯 했고,

    그러다보니 너무 재촉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가 전달되어 왔다.

    전화기를 통해 한명이라도 더 조직하려는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이 전해온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초청장 발송은 그저 서류상의 형식적인 절차 문제가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직은 엄연히 군사적 대치상황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신원조회도 하지 않고 평양 거리에 들어 보내는 상황을 방치할 수 있을까?

    신원조회를 철저히 해도 자기네 정부를 비판하는 남쪽 관광객의 유인물이 발견되는 상황이다.

    아리랑 관광도 중요하지만 테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북한의 국가안보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분단 60년 만에 이루어진 우리민족의 땅, 평양을 관광하는 일이라는 감격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이처럼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설령 몇 사람이 못 오는 한이 있더라도 신원조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울에서도 인식하고 각 단체에 시간을 엄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서울 사무실의 온갖 비난의 눈초리를 감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발휘하여 명단 발송을 악랄하게(?)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무총장님 평양에서 가 있다보니,

    잠도 못자고 조직해서 보내는 우리의 심정은 전혀 헤아려 주지 않는다’

    이런 심정이 아마도 당시의 우리 상근자들의 속마음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과정이었지만 그때는 초단위로 마음이 정말 초조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분이 북한 입국 금지 명단이므로 평양에서 초청장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서울로 전화를 걸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다.

    혹시 탈북자라던가 아니면 반북 활동경력이라도 있나?

    알아보니 그분은 오랫동안 재야 통일 원로들을 후원해주신 분이란다.

    나는 그 분을 추천한 사람들의 면면을 제시해가며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북으로부터의 반응은

    입국 불허 리스트에 있는 사람과 단지 이름만이 같은 것이 아니라 생년월일도 같다며 재논의는 불가하단다.

    난감했다.

    북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이분을 빼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울과의 장시간의 전화 협의 끝에 이분을 추천해주신 원로 선생님들과 일일이 통화를 하고,

    북에서 이름을 알만한 통일 원로 선생님의 강력 보증을 세우고나서야 결국 초청장이 나오긴 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관광 시작 무렵에 날짜별로 주 예약단체를 미리 결정하는데 10월 6일에는 전혀 메인 단체를 발굴하지 못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개별인사 몇 사람만 태운 텅 빈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할지 모른다.

    그러면? 그냥 겨레하나가 그날의 비용 적자를 감수하면 되나?

    이 아까운 기회를 그렇게 보낸다는 게 말이 되나?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북을 다녀올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평양 직항 공비행기라니.

    이것은 자존심 문제였다.

     

    또 하나, 나는 실망할 북한 사람들도 떠올랐다.

    겨레하나로 온 관광객들은 다른 단체와 달리 모든 사람이 손에 한반도기(단일기)를 흔들면서 입장하였다.

    아리랑을 참관하였던 평양 시민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무척 감격하였다.

    우리는 그저 관광을 간 것이지만, 그 한반도기 덕분에

    평양 시민들은 남쪽에서 온 모든 사람들은 다 통일인사라고 생각했고,

    남쪽도 북 못지않게 통일을 열렬히 바라는 줄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며

    정말 반가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평양 시민들은 아리랑 공연 못지않게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남쪽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이 큰 이벤트였는데,

    그날 하루 한반도기를 든 부대가 입장하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할까?

    또 남쪽 관광객을 위해 배치된 수많은 민화협 안내원들, 평양 관광 탑승 차량 기사님들,

    양각도 호텔 접대원들을 생각하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어떤 방법이...

     

    그때 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이 낸 묘안이 효도관광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통일단체 실무자들의 부모님께 효도관광의 기회를 드리자!

    어차피 뜰 비행기였으니 비행기 값 생략하고 아리랑 입장권과 호텔숙식비 정도만 받는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평양에 보내드릴 수 있겠다.

     

    10월 6일 관광이면 명단은 4일까지는 제출되어야 한다.

    10월 2일 정도에 방침을 결정하고 전국 통일단체 실무자 부모님의 효도 관광 참가자 모집사업에 들어갔다.

    남쪽의 통일단체 상근자들이 우리의 이러한 결정에 환호하며

    자신의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효도관광 모집사업에 나섰는데,

    이 또한 과정에서 녹록치 않은 장애가 발생하고 있었다.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들이 많았고, 더러는 섬에 사시는 분도 있었다.

    인적상황이야 자식들이 이래저래 보내주면 되지만 사진을 받아야 하는데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시골에 사시는 노인들이 사진 스캔은 물론 이메일을 보낼 방법이 별로 없다.

    갑자기 시골까지 내려가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서 올라오는 사람,

    혹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면사무소를 찾아가 직원들에게 부탁하여 자료를 보내주는 사람 등

    별별 일들이 다 발생했다.

     

    사진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갑자기 보내오는 수많은 사진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잘 가려서 연결시키는 것도

    예상치 못한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이래저래 얼기설기 보내오는 전자사진을 보고 누구의 부모님인지,

    그 사진을 보낸 실무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초단위로 시간을 재며 사진과 명단이 오긴 했지만 서류작업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 서영준 화백

     

    마침내 16일 순안공항에서 예견된 상황이 발생했다.

    부모님들의 사진과 명단이 서로 바뀌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고,

    순안 공항 입국대를 통과할 수 없는 분이 대략 7~8명 정도 생겼다.

    원칙대로라면 그분들은 꼼짝 없이 그날 비행기 편으로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북한 안내원들은 이 상황을 수습할 대책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동승한 방문객 중에 신원을 보중해줄 지인을 찾기도 하고,

    사진과 얼굴을 일일해 대조하여 바뀌어진 사진을 다시 바로 잡았다.

     

    지금이야 여유롭게 이야기하지만 그 상황은 정말 진땀나는 상황이었다.

    사실 외국에서 여권사진이 바뀌게 될 경우 입국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도 여기는 평양이고 우리민족의 일이니까,

    북한 분들도 문제를 해결해볼 실마리를 찾아 끙끙대고,

    우리도 ‘설마...’ 하며 포기 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던가?

    민화협의 담당 책임자가 뒷덜미를 만지며 나타났다.

    “총장선생, 내 목이 아직도 남아 있소? 이런 식으로 사업하다간 내 목이 몇 개라도 모자라겠습니다.

    허허,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지요!”

     

    그때는 정말 전쟁이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금단의 땅에 하루 100여명을 관광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통일부는 직원이 모자라 민간단체인 우리가 통일부에 자원봉사자를 보내서 업무처리를 도와야 할 형편이었고,

    평양 상황실, 서울 겨레하나 사무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돌아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고, 어쩔수 없이 남북교류초년생인 우리 모두는 이렇게 민간교류를 연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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