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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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관광기간동안 날마다 일어난 우리들의 전쟁 이야기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10. 10. 15:26
훗날 나와 친해진 민화협 김선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아리랑 공연 시절에 자기는 일반 관광객들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내가 좀 얄미워 보였단다. 자기들은 연일 1000명 남짓 쏟아져 들어오는 남측 관광객들을 안내하느라 밥먹을 틈도 없이 정신이 없고 몸살이 날 정도인데, 상황실장이라는 웬 아줌마가 비행기가 도착할 시간이면 순안 공항에 들려 사람들을 쓱 한번 둘러보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하는 일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폼이나 잡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때 나의 속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이 지면을 빌어 하루하루 전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려한다. 나중에 남북교류가 전면화 될 상황에 참고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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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보면 평생 후회한답니다. 10만이 참여하는 대 집단체조 <아리랑>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9. 25. 18:20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는 나를 아직도 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2005년 9월말부터 11월 초까지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양각도 호텔에 상주하면서 겨레하나 4000명 관광객을 비롯하여 만명이 넘는 남한 관광객을 지원하다 보니 붙여진 별명이다. 북한경험담의 앞부분에 그 당시의 각종 사건 사고 몇 가지를 소개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공연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100년 역사를 형상화한 서사극이다. 민족의 정서와 넋이 담겨있는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민족의 운명사’와 세시풍속을 서사시로 표현한 대집단체조이자 예술공연으로 100년간의 고난과 해방, 북한의 건국,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각각의 내용은 10만 명이 참가하는 카드섹션 및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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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평양을 갈수 있었던 2005년 가을을 기억하시나요?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9. 19. 13:45
남한 관광객을 가득 태운 전세 비행기가 서울과 평양을 날마다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평양을 관광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늘은 그때 평양 관광이 시작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소개하겠다. 2005년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겨레하나는 평양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는 민간교류가 무척 활발하던 시절이었고 우리 팀 말고도 많은 대북지원단체들이 호텔마다 북적거렸다. 또 백두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6차 장관급회담의 장소가 평양으로 변경되어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평양에 있었다. 15일 저녁 갑자기 북한 안내원이 능라도 5.1경기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10만이 참여하는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자고 했다. 그때까지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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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선남선녀와 결혼할 청춘남녀를 찾습니다.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9. 11. 17:34
남과 북의 청춘남녀의 결혼이 가능할까? 2007년도 가을 어느 날, 평양 양각도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부회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남북 중매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정식 제안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였지만, 한번 생각해봄직한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발단은 민화협 여성 안내원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고려대학교 교수님 한 분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였다. 민화협 부회장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북측 민화협과 남측 겨레하나가 결혼 중매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만일 결혼이 성사되어 평양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평양에 아파트를 선물로 준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북한 민화협의 부회장이라면 실제 남북화해협력사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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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의 삶을 다큐로 찍겠다는 꿈은 언제쯤 실현될까?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9. 5. 15:32
내가 겨레하나 운동을 꿈꾸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사업은 남쪽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북한 주민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여 널리 보여주는 것이었다. 각 분야별로 중심인물을 선택하여 그들의 생활을 그려보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좋지 않을까? 노동자, 농민 주부 청소년, 대학생, 종교인, 보건의료인,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삶을 24부작 정도의 다큐로 찍을 수 있을까? 북한에서 촬영이나 방송을 전제로 한 동영상 인터뷰가 무척 어렵다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나이 제안에 의외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의 림선생은 선선히 동의해주었다. “우리는 남측 언론을 전혀 신뢰하지 않습니다. 올 때마다 우리가 온갖 좋은 것을 보여주고 촬영을 보장해주는데, 막상 실제로 보도된 것을 보면 좋은 것은 다 빼고 어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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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설주가 인천에 온 것은 ‘응원단’이 아닌 ‘청년학생협력단’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8. 29. 13:20
2004년 인천에서 개최된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계기로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시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꿈꾸게 되었다. 인천시는 북한 개풍군과 인천을 있는 평화의 연육교를 건설하여, 인천경제 활성화를 모색하려는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한 이벤트로 다음해인 2005년 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초청하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인기가 좋았었고, 그들이 오면 대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에 북한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인천시가 주도하는 인도적 대북지원부터 고민 되었는데, 물론 그 이면에는 인도지원 과정에서 인천시와 북한과의 독자적 파트너쉽을 만들자는 의중이 깔려있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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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북의 민화협 안내원들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8. 22. 12:07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안내원들은 남북민간교류를 위해 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이다. 오늘은 그 분들 중 몇 분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 사람들의 삶의 일면을 소개하고 싶다. 싱글벙글 웃으며 까칠 단장을 성실히 수행한 박선생 안내원 박선생을 처음 본 것은 대기업의 대규모 평양 방북 때였다. 북 민화협 부회장이 방북 대표단 단장의 평양 관광 수행으로 연결하라며 내게 박선생을 소개해주었다. 북 민화협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훌륭한 일꾼이니 남측 대표단 단장이 불편하시지 않도록 잘 보살펴 드릴 것이라는 소개말과 함께였다. 민화협 부회장이 대표단의 단장 안내를 직접 부탁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가지 면에서 의아스러웠다. 한가지는 왜 갑자기 수행을 따로 챙기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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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배후조종하는 세력이 남한 NGO라구요?이전연재글/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경험담 2012. 8. 14. 14:28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을 이것저것 늘어놓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분들은 북측 안내원들이다. 안내원들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분들인데 남쪽 NGO 일꾼들이 이분들을 빼놓고 북한을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쪽에게 북한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코드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북한 민화협에 대한 소개부터 하고 다음 편에 민화협 안내원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민화협의 위상과 관련하여 그분들과 주고받았던 대화가 기억난다. 남: ‘민족화해협의회’가 민간단체인가요 정부 기관인가요? 북: 당연히 민간이지요. 남: 남측에서는 민간단체, 시민단체를 NGO 라고 하는데 그것은 비정부기구라는 뜻이지요. 민화협이 비정부기구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선생들은 공무원인데요? 북: 아니 무슨 말씀을!..